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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두 번째 환생

by 보통의 건축가



물건을 싣고 그도 실은 커다란 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기에 나도 실려야 하는데, 그와 함께 이 지긋지긋한 아파트를 벗어나야 하는데, 나만 남겨놓고 떠나고 있었다.

달리는 차를 세울 방법은 없었다. 커다란 차는 점점 속도를 내고 있었고 내 짧은 다리와 작은 몸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었다. 이렇게 그를 보내면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집에 있는 모든 것들을 저 차에 싣고 어디론가 떠난다. 다시 돌아올 거라면 작은 차에 그의 몸만 싣고 떠났어야 했다. 이렇게 헤어질 수 없었다. 뭐든 방법을 생각해내야 한다. 그것도 빨리, 눈에서 저 차가 사라지기 전에.

그러다 커다란 차를 굴리는 검고 동그란 물체에 눈이 갔다. 저 크고 무거운 것을 얹고 저렇게 빠르게 구르는 것을 봤을 때 저 밑에 깔리면 아주 납작해질 것 같았다. 독을 먹고 죽을 때보다 더 빠르고 아플 새도 없이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내가 죽어서 영혼이 되는 것 말고는 저 차를 따라잡을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러다 문득, 영혼이 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영혼까지 납작해져서 땅에 들러붙으면 어떡하지? 설사 영혼이 된다고 해도 다시 환생할 수 있는 보장도 없지 않나? 별의 별 걱정이 머리를 복잡하게 했다.

차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빠르게 결정해야 할 순간이었다. 난 구르는 둥근 물체에 몸을 던지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그를 볼 수 없는 세상은 영혼이 사라지거나, 영혼으로 남거나, 다시 환생 하지 못하는 것, 그 어느 것보다 최악이었다.


달리면서 옆을 보고 뒤를 살폈다. 차들이 잔뜩 화가 난 것처럼 무서운 속도로 뒤에서 앞으로 스쳐 지나갔다. 쫓아가는 차보다 큰 차도 있었고 아파트에서 봤던 작은 차들도 있었다. 그 중 네모나게 생긴 큰 차를 점찍었다. 저 정도면 내 숨통을 순식간에 끊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난 달리는 것을 멈추고 뒤 돌아 섰다. 네모나게 생긴 큰 차가 내가 있는 쪽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난 기다리지 않고 오는 차를 향해 달렸다. 차는 내가 달려오는 것을 못 본 듯했다. 속도도 줄이지 않고 곧장 내게 오고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영혼으로 부활하기를 기도하며 구르는 둥근 물체에 몸을 던졌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었다. 난 뒤따라오는 둥근 물체에 두 번째로 깔리기 전에 납작해진 몸에서 벗어났다. 다시 둥둥 떠다니는 작은 구름이 되었다. 일차 목표는 이뤘다. 영혼이 되었으니 이제 움직임은 자유로울 것이었다. 뒤에서 오는 차들이 나를 통과해서 지나쳐 갔다. 그가 탄 차를 찾았는데 보이지 않았다. 벌써 멀리 가버린 모양이었다. 난 조급해져서 위로 올라갔다. 위로 올라갈수록 더 멀리까지 보였다. 오르면서 사방을 살피는데, 멈춰있는 그 차가 보였다.

‘그렇게 멀리가지는 않았네. 다행이야’

전속력으로 차를 향해 날아갔다. 너무 빨리 날아서 그 차를 뚫고 지나쳐 버렸다. 다시 영혼을 돌려 차로 다가갔다. 차창 너머로 그가 보였다. 그는 창밖을 보고 있었는데, 뭐가 즐거운지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야속한 사람. 난 당신을 따라가려고 목숨까지 버렸는데, 뭐가 그리 즐거운 거야?’

그래도 그를 다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창을 지나서 그의 눈앞까지 다가갔다. 그는 당연히 나를 볼 수 없었다. 난 그의 볼에 영혼이라도 비비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음에 안타까웠다. 그의 어깨에 앉아(물론 앉은 흉내를 낸 것이지만) 그의 시선에 내 영혼의 눈을 맞췄다. 혹여 그의 눈과 연결된 통로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어서. 하지만 그의 초점은 내가 아닌 넓고 깊어 보이는 물에 맞춰져 있었고 내가 그의 시선을 따라갔을 때, 나도 모르는 진저리에 영혼을 부르르 떨었다. 물은 보는 것만으로도 끔찍하게 싫었다. 물의 건너편에는 내가 있던 아파트와 닮은 모양의 집들이 끝도 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저렇게나 많은 집들이 있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한편으론 의문이 생겼다. 왜 사람들은 집을 저렇게 높고 크게 지어 모여 사는 것일까? 그들의 삶을 그동안 쭉 지켜본 바로는 굳이 모여 살 까닭이 없어 보였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서로 알지 못하는 듯 했고 서로의 일에 상관하지 않았으며, 때로는 서로 싸우기 까지 했다. 그리고 죄 없는 고양이를 미워하고 쫒아내려 했다. 그렇게 커다란 집인데도 살고 있는 그들 외에 다른 어떤 것도 받아들이기를 꺼려했다. 참 못난 것이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상념에 잠겨있는 동안 차는 어느새 구불한 길에 들어섰다. 차는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내 달리기 속도만큼 느려지다가 어느 건물 앞에 드디어 멈춰 섰다. 난 처음에 이 건물이 그의 집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건물이 너무 작았다. 물론 내 몸집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큰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봐왔던 집의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그 건물의 맞은 편 건물에서 누군가가 나왔다. 머리가 하얗게 센 늙은 남자였는데, 그의 손을 맞잡고는 웃으며 말했다.

“잘 왔어요. 조소장님. 이렇게 불러도 되죠?”

“당연하죠.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님”

늙은 남자가 그의 팔을 붙들고 건물의 여기저기를 안내하는 동안, 사람들은 차에 있던 물건들을 꺼내서 건물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난 이 건물이 그의 집이라는 것을 눈치 챘다. 그리고 크게 감탄을 했다.

‘아~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분명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특별함이 그에게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정말 다행이야.’

사람들이 큰 집에 모여 사는 까닭에 대해 이 집에 도착하기 전 나름 결론을 내렸었다. 사람들이 나약해서 그런 것이라고. 스스로 약하다고 생각하기에 높고 커다란 것을 만들고 그 안에 숨어 사는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차에 이 집을 봤으니 어떻겠는가?

그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나약하지 않음이 분명했다. 세상에 맞설 힘이 있으니 저렇게 작은 집에 살 작정을 하지 않았겠는가 말이다. 그를 나의 집으로 삼으려 한 결심은 틀리지 않았다.

든든했다.


커다란 차에 쌓인 물건들이 옮겨지는 동안 난 천천히 그의 집을 구경하기로 했다. 일단 전체를 조망하기 위해서 위로 올라갔다. 날이 청명해서 영혼이 부셨다. 그렇게 많이 올라가지 않았는데, 사방이 막힘이 없었다. 파란 하늘 아래로 낮은 산이 둘러싸고 있었고 아래에는 드문드문 작은 집들이 보였다. 그의 집 앞은 넓은 들판이었다. 집 뒤편은 낮은 산과 접해 있었다. 그의 집과 늙은 남자의 집은 인접해 있었는데, 꽤 넓은 마당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가 바쁘게 이리저리 움직이는 게 보였다. 그는 두 개의 건물을 왔다 갔다 했는데, 차의 짐들이 두 개의 건물로 나눠져 들어갔다. 아마도 두 건물 모두 그의 집 같았다. 오~ 건물 두 개가 모두 그의 집이라니. 큰 집에 많은 사람이 사는 것을 보다가 한 사람이 두 개의 집에 산다는 게 마냥 신기했다.


그의 집 주변에 있는 다른 집들을 세어 봤다. 몇 개 없었다. 좀 더 멀리까지 살펴봐도 채 열 개가 되지 않았다. 집이 많지 않다는 건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고 그만큼 고양이의 숫자도 적을 것이었다. 내가 들어갈 고양이의 몸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래로 내려가 집집마다 살펴보기로 했다. 그의 집 주변을 쭉 돌아본 결과, 마당에 강아지를 키우는 집이 서너 집 있었고 고양이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큰일이었다. 내가 들어갈 몸을 찾지 못하면, 영혼인 채로 그를 바라만 보며 살아야 한다. 그는 나란 고양이는 있는 줄도 모르고 살겠지.


물건을 다 옮겼는지 차는 떠났고 그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창을 통해 안을 보니 그는 분주해 보였다. 이곳저곳을 다니며 물건들을 옮기고 있었는데, 집 안에는 그 외에 두 사람이 더 있었다. 그를 따르는 암컷과 자식으로 보였다. 아파트에서 떠날 때 잠깐 봤던 기억이 났다. 그 둘을 면밀히 관찰했다. 나중에 그와 함께 살려면 그 둘의 역할이 중요할 것이었다. 그녀는 그의 움직임과는 뭔가 달랐다. 그가 상자를 들고 옮기는 것을 보면 어수선하고 어설펐다. 반면에 그녀는 움직임이 기민했다. 쓸데없는 동작이 없었고 계획적으로 보였다. 아이의 행동은 그와 닮아 있었다. 그들의 일에 도움이 되지 않는 듯, 그녀는 아이에게 주의를 주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차분했고 주의를 듣는 아이의 표정에도 그늘은 보이지 않았다. 그도 물건을 옮기면서 그녀에게 묻고 지시를 따르는 것을 보면, 이 가족의 주도권은 확실히 그녀에게 있는 듯했다. 그와 함께 하려면 그녀의 눈에 들어야 함이 분명해 보였다.

사람이 사는 집을 들여다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밖과는 확실히 달랐다. 바닥은 나무로 되어 있었고 벽과 천정은 온통 하얀색이었다. 차에 실려 있던 물건 들이 집 여기저기에 놓여 있었는데, 그 중 눈에 띄는 것이 넓고 평평한 물건이었다. 그 위에는 폭신하고 따뜻해 보이는 것이 깔려 있었다. 아이가 방에 달려 들어오더니 그 위로 폴짝 뛰어 올라갔다. 그러더니 천정을 보고 누웠다.

‘아~ 저기에서 사람들이 잠을 자는 모양이네. 따뜻하겠다.’

얼음 같이 차갑고 딱딱한 바닥에서만 자던 나는 그것이 제일 부러웠다. 내가 그와 함께 살게 되면 내게도 저런 것이 생기게 될까? 부디 꼭 그렇기를 소원했다. 그렇게 되려면 일단은 고양이의 몸이 필요했다. 해도 저물고 주위가 온통 깜깜해지니 걱정은 더 커져갔다.


창으로 노랗고 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셋이 모여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내가 먹던 밥과는 많이 달랐다. 일단 그릇이 한 개가 아니라 여러 개였고 종류도 다 달랐다. 기다란 막대기로 그것들을 집어서 입에 넣고 씹으면서 동시에 얘기를 했다. 그 얘기에 웃으면서 음식을 씹고 씹으면서 또 얘기했다. 즐거워 보였다. 나도 저기에 끼여서 음식을 할짝거리다가 얘기에 끼어들고 싶었다.

밥을 먹고는 또 뭔가를 나르고 치우다가 지쳤는지 아까 봤던 넓고 평평하고 폭신한 곳에 몸을 뉘였다. 바닥에 깔려 있는 것만큼 두툼하고 폭신한 것을 몸 위에 덥더니 곧 불빛이 사라졌다. 고단했을 것이었다.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쉴 새 없이 움직였으니, 하루에 반 이상은 잠을 자야하는 내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하루를 보낸 것이다. 깜깜한 밤을 두려워하지 않고 저렇게 편하게 잠이 드는 가족을 보면서 나도 조금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려보기로 했다. 세상에는 사람만큼 고양이도 많으니, 언젠가는 적당한 고양이가 꼭 나타나리라.


그 기회는 의외로 빨리 주어졌다. 꽤 늦은 밤이었다. 영혼의 눈을 감고 고요 속에서 쉬고 있었다. 멀리서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소리가 조금 이상했다. 뚝뚝 끊기고 소리가 일정치 않은 것이 가다가 서다가를 반복하고 있는 것 같았다. 불안함을 불러내는 소리였다. ‘침입자일까?’

이렇게 인적도 없는 외진 곳에서 살겠다는 용기에 박수를 쳤지만 아무래도 위험해 보이는 건 사실이었다. 사람들이 그렇게 큰 집에서 모여 사는 이유가 뭐겠는가? 세상의 위험에 홀로 맞서기 두려워서 아니겠는가? 내가 이 가족을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자국 소리가 내가 있는 담 밖에서 멈췄다.

‘담을 넘으려는 걸까?’

그러다 다시 발자국 소리가 이어졌다. 도대체 누구일까 궁금해서 담을 지나 길 쪽으로 나왔다. 길에 구부정하고 노쇠해 보이는 남자가 비틀거리며 걷고 있는 것이 보였다. 휘청거리며 몇 발자국을 걷다가 서다가 다시 걷기를 반복했다.

‘아~ 저래서 발자국 소리가 일정하지 않은 거였네’

모습만 봐서는 위협이 될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사람이 위태로워 보였다. 일단은 안심이었다. 그를 유심히 살펴보니 그의 양손에 뭔가가 들려있었다. 너무 어두워서 정체를 알 수는 없었지만 비틀거려도 놓지 않는 것을 보면 뭔가 중요한 물건인 듯했다. 궁금해져서 좀 더 다가가기로 했다. 가까워지니 들려 있는 것이 물건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헉! 뭐지?’

동족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들렸다.

아~ 고양이였다.

‘아니, 이 사람은 한밤중에 왜 고양이를 양손에 들고 있는 거야?’

갑자기 나를 죽였던 경비가 떠올랐다.

‘이 사람도 아파트의 경비처럼 이 동네를 지키는 사람인가?’

그렇다고 보기에는 사람이 너무 부실했다. 어디가 아프니 비틀거리는 걸 텐데, 자기 자신도 지키지 못할 거 같은 사람이 경비일리 없었다. 나는 고양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어린 새끼들이었다. 둘을 비교해서 보니 많이 닮아 있었다. 한 마리는 얼굴과 몸통은 황갈색인데, 발과 배는 하얀색이었다. 다른 한 마리의 얼굴에는 황갈색 바탕에 하얀 점이 박혀 있었다. 몸집과 생김이 비슷한 것을 보면 한배에서 나온 새끼들이라 짐작이 됐다. 나는 그 사람의 뒤를 따라갔다. 새끼들에게 무슨 짓을 할지 확인하지 않고 덜컥 몸에 들어갔다가 낭패를 볼까 싶어서였다. 그는 둥글게 생긴 건물 앞에 서더니 숨이 찼는지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낮은 담에 달린 나무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봤을 때 건물이 이상했다. 창문도 없고 건물은 전체가 다 검은색이었다. 뭔가 불길하게 생긴 집이었다. 조금 위로 올라가보기로 했다. 영혼을 띄워 위에서 내려다보니 그 검은 집 앞에 작은 마당이 있었다. 높은 나무의 그늘이 마당에 검게 드리워져 있었고 마당을 비춰주는 빛이 하나도 없어 마당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영혼이라는 존재 덕분일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무섭지는 않았기에 마당으로 내려가 보기로 했다. 마당의 흙바닥 가까이 까지 내려가니 사방의 사물이 조금씩 보였다. 마당에 비틀거리던 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검은 집의 문틈 사이로 노란 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면 그는 집 안으로 들어간 것이 분명했다. 마당을 천천히 돌았다. 그러다 고양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위쪽이 열려있는 철망 안 구석에 둘이 꼭 붙어 앉아 있었다. 둘 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것을 보면 겁을 먹은 것이 분명했다. 둘의 얼굴을 정면에서 똑바로 바라보니 닮았음에도 생김의 차이가 보였다. 얼굴에 하얀 반점이 있는 아이는 얼굴 폭이 다소 좁고 눈과 눈 사이가 조금 넓었다. 썩 예쁜 얼굴은 아니었다. 반면에 얼굴 전체가 황갈색인 아이는 눈과 코, 입이 아주 균형 잡혀 있었다. 독약을 먹고 죽기 전의 내 모습보다 더 예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외모가 완벽했다.


‘그래. 너로 정했다’

지금 그 남자가 이 곳에 없을 때 빨리 도망치는 편이 이 아이들에게도 좋을 것이다. 그 남자가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르는데, 그냥 기다리고 있다가 죽을 수도 있다. 더 깊게 생각할 것도 없이 예쁘게 생긴 아이에게 영혼을 깊숙이 박아 넣었다.


지독한 냄새로 눈이 번쩍 뜨였다. 고양이가 아닌 다른 동물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것도 한 두 마리가 아닌 십 수 마리의 동물냄새였다. 똥과 오줌 냄새와 체취, 피 냄새가 섞여 있는 최악의 냄새였다. 고양이들이 왜 그렇게 겁을 먹고 있었는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극도의 공포가 몰려왔다. 두 번의 죽음을 경험했던 덕분일까? 죽음이 풍기는 음습한 기운이 몸을 떨게 했다. 공포로 얼어붙은 몸을 부르르 떨고는 내 발과 몸을 살폈다. 일단 고양이로 환생한 것은 성공한 것 같았다. 옆에 있는 고양이를 발로 흔들었다. 그 고양이가 얼굴을 내 쪽으로 돌렸는데, 얼굴에 흰색 반점이 있었다.

‘아~ 다행이다. 원하던 몸에 들어 왔군.’

반점 있는 고양이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우린 여기서 빨리 도망쳐야 돼”

반점 있는 고양이는 내 머리를 살짝 핥더니 달래 듯 얘기했다.

“나도 이 냄새 때문에 무서워 죽겠어. 그런데 그 사람이 우리를 구해준 것은 사실이잖아. 우리가 그 빈집에 계속 있었더라면 아마도 굶어서 죽었을 거야. 고맙게도 그 사람은 우리에게 먹을 걸 줬어. 그리고 좀 우악스럽기는 해도 우리를 자기가 사는 곳에 데려왔고. 그 사람은 우리가 가여워서 보살피려는 의도일 거야. 조금만 기다려보면 어떨까.”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지금의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나는 네가 아는 고양이가 아니야 라고 고백한다고 믿어줄 리도 없고 지금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기에, 나도 알고 있다는 듯 그의 머리에 볼을 비비고는 얘기했다.

“나도 그렇게 믿고 싶어. 그런데 넌 이 냄새를 못 맞는 거야? 아니면 모른 척 하는 거야? 피 냄새가 나잖아. 우리 종족의 냄새는 아니지만 한두 마리의 냄새가 아니야. 여기서 여러 마리가 피를 흘렸다는 거잖아. 너무 불길해. 난 지금 여기서 나갈 거야. 넌 어떻게 할래?”

반점의 고양이는 고민에 빠진 듯했다. 내가 연이어 재촉하자 결정한 듯 몸을 일으켰다.

“그래. 나도 따라 갈게”

난 우선 철망의 높이를 가늠했다. 한 번에 뛰어넘기에는 너무 높았다. 그래도 다행인건 아파트에 살 때 저런 철망을 넘어 본 경험이 있다는 것이었다. 최대한 높이 뛰어서 철망을 잡고 조금씩 타고 오르면 넘을 수 있었다. 반점의 고양이에게 뒤에서 나를 따라오라고 얘기하고 내가 먼저 뛰어 철망에 매달렸다. 그리고 발톱을 최대한 세워 철망을 잡고 조금씩 올라갔다. 철망을 넘어가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반점의 고양이는 경험 있는 나보다 더 수월하게 해냈다.

철망을 벗어나긴 했는데, 마당을 둘러싼 높은 담이 문제였다. 담은 발톱이 박히지 않아 타고 오를 수 없었다. 다른 경로를 찾아야 했다. 마당 주변을 살피는데, 집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서 확인해 보니 집이 검은 색이었던 이유가 검은 망이 뒤 덮고 있어서였다. 저 정도면 잡고 오늘 수 있을 거 같았다. 이번에도 내가 앞장섰다. 검은 망은 철망보다 더 촘촘해서 잡고 오르기가 수월했다. 대신 너무 높았다. 철망의 몇 배 높이를 오르니 아찔했다. 두 번 영혼으로 지내다보니 올라가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한 거 아닌가 싶었다. 집의 꼭대기에 다다르니 근처의 집들이 보였다. 조금 떨어진 곳에 그의 집이 보였다. 휘청거리던 남자를 따라올 때는 몰랐는데, 생각보다 가까웠다. 위험한 사람이 그와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

‘내가 그의 옆에 있어야할 이유가 또 하나 생겼네. 내가 그를 지켜줘야 해“

반점의 고양이와 지붕에 앉아 다음 계획을 논의했다. 아무래도 세상 경험이 많은 내가 얘기를 먼저 꺼냈다.

“우리는 여기서 헤어지는 편이 좋겠어.”

반점의 고양이는 깜짝 놀라서 쳐다보며 울듯이 얘기했다.

“아니, 왜 헤어져? 지금은 우리 둘이 꼭 붙어 있어야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겠어?”

“그렇지 않아. 생각해봐. 우리 둘이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사람의 도움 없이는 먹을 것도, 잠잘 곳도 우리 스스로 해결하지 못해. 안 그래? 우리도 빈집에서 쫄쫄 굶고 있었다며. 좀 억울한 측면이 있지만 이 세상은 사람들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어. 사람들의 눈 밖에 나서는 살 수가 없어. 그러니 우리는 어떻게든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아야 돼.”

반점의 고양이는 나의 혜안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물었다.

“거기까지는 나도 동의해. 그런데 왜 우리가 헤어져야 하는 건데?”

“사람들은 무리지어 떠도는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아. 내가 경험해본... 아니다. 여하튼 우리는 먹을 것과 쉴 곳이 필요해. 그건 동의하지? 그런데, 우리 둘이 함께 있으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저 아이들은 서로 의지하고 사니 사람이 개입하지 않는 편이 좋겠어, 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아니면, 혼자 있는 고양이었으면 나와 함께 살 수도 있을 텐데 둘이라 영 부담스럽네,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그러니까 둘이 함께 있는 것보다 단독으로 먹을 것과 집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쪽이 훨씬 유리할 거야”

반점의 고양이는 완벽하게 동의하지 못했다. 당연했다. 세상을 구경한 지 이게 겨우 한두 달 뿐인데, 어떻게 사람들의 습성을 알 수 있을까. 모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 것이 우리를 위한 최선의 선택임을 난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그가 있는 집 쪽을 가리키며, 반점의 고양이에게 분명하게 얘기했다.

“난 이쪽으로 갈 거야. 넌 반대쪽이 좋겠어. 길로는 가지 말고 집에서 집으로 이동해. 길에는 차라는 것이 지나다녀서 매우 위험하니까. 집을 잘 관찰하고 거기에 사는 사람이 너한테 잘해줄 수 있는지 확인하고 다가가. 너에게 밥을 준다면, 반은 성공한 거야. 밥을 먹고 다른 집으로 이동하지 말고 며칠을 버텨봐. 그랬을 때, 그 사람이 싫어하는 내색을 하지 않고 계속 밥을 준다면 거의 성공한 거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게 이름을 붙여 불러준다면 완벽하게 너를 받아들이는 거지. 그러면 그곳이 너의 집이 되는 거야”

반점의 고양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신기하다는 듯 나를 바라 봤다.

“넌 이런 걸 어떻게 아는 거야? 나랑 늘 함께 있었고 똑같이 먹고 자고 했는데”

“꿈에서 알게 된 거야. 그러니까 자꾸 묻지 말고. 그 사람이 집에서 나오기 전에 빨리 움직여야 돼. 잘 살아. 난 간다.”

난 뒤도 안돌아보고 먼저 지붕에서 내려갔다. 한 번에 뛰어 내리기에는 너무 높아서 올라올 때처럼 검은 망을 잡고 내려갔다.

길에 내려 선 나는 그의 집 쪽을 향해 전력으로 달렸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반점의 고양이에게 얘기했던 것은 그에게 다가가기 위한 나의 전략이기도 했다. 일단 오늘은 모두가 잠든 밤이니 나도 쉬면서 그에게 다가갈 방법을 고민해 보기로 했다. 그가 잠든 집 옆의 작은 집에는 창 앞으로 낮은 나무 바닥이 있었다. 그 아래 빈공간이 쉴만해 보였다. 자리를 잡고 보니 꽤 아늑했다. 스르르 눈이 감겼다. 그의 집 안에서 자는 첫 잠이었다.


그와 대면할 기회를 잡는 건 쉽지 않았다.

그는 아침 일찍 나가서 저녁 늦게 돌아왔다. 아침에 우연을 가장해 그의 눈에 띄어 볼까 생각해봤지만 좋은 방법은 아닌 듯했다. 먹이를 구하러 나가는 그에게 아침의 마음은 무거울 것이었다.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그의 눈에 띄어야 했다. 그의 집에 숨어 이틀을 보내고 그날 밤 드디어 기회가 찾아 왔다. 함박눈이 고요를 데리고 땅으로 내려앉고 있었다. 미세한 바람에 눈송이는 몸을 이리저리 떨었고 난 그 모습이 재미있어 몸을 날려 눈송이를 잡았다. 발에 잡힌 눈을 핥고 또 뛰어서 잡고. 한참을 그렇게 놀고 있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난 소리를 내지 않고 담벼락 옆의 나무 뒤에 숨었다. 나무의 그림자가 나를 숨겨 줄 것이었다. 문 쪽을 바라보니 그가 서 있었다. 눈을 처음 보기라도 한 듯이 하늘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드디어 그와 대면할 때가 되었다. 난 조용히 나무 그늘에서 빗겨 섰다. 그에게 먼저 다가가기 보다는 그가 나를 발견해 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는 하늘과 땅을 번갈아 보다가 마당을 둘러봤다. 그러다 드디어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놀란 것이 분명했다. 자~ 이제 내가 무대에 등장할 타이밍이었다. 난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그의 얼굴은 놀라움에서 미소로 변해갔고 내가 그의 발에 볼을 비비자 환하게 웃었다. 그는 집을 바라보고 누군가를 불렀다. 그러자 그의 여자가 급하게 문을 열고 나왔다. 나는 일단 나무 뒤로 후퇴했다. 그녀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어서였다. 둘이서 나를 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더니 그가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 이 장면은 예상에 없던 건데. 그냥 들어간 거야?’

허탈해 하고 있을 때 그가 뭔가를 들고 다시 나왔다. 밥그릇이었다. 아~ 반은 성공한 셈이었다.

내가 허겁지겁 밥 먹는 것을 지켜보던 둘은 다 먹은 걸 확인하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들어가면서 연신 뒤를 돌아 나를 봤다. 아까운 것을 두고 가는 표정이었다. 나는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이 마당도 그의 집이니 그가 나를 받아들일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기만 하면 될 것이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세상이 온통 하얗게 빛나서 눈이 부셨다. 그리고 그의 환한 얼굴이 나를 또 눈부시게 했다. 그는 자기 집 마당에 그대로 있는 나를 반가워하는 표정이었다. 좋아하는 그의 모습에 안심이 됐다. 그가 그릇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을 들고 돌아와 작은 집 안에 넣어 두고 나왔다. 문을 조금 열어 둔 채였다. 내게 집으로 들어가도 좋다는 신호 같았다. 나는 열려 있는 문보다 내게 열린 그의 마음이 고마웠다. 나는 은신처인 나무판 밑에서 나와 열어 둔 문으로 들어갔다. 사람이 사는 집에 들어서는 최초의 순간이었다. 집 안에는 나무냄새, 곰팡이냄새, 탄내가 났다. 그리고 아주 미약하지만 그의 냄새도 묻어 있었다. 음식은 따뜻했다. 그의 따뜻한 마음을 먹는다는 생각에 천천히 맛을 음미했다. 처음 먹어보는 황홀한 맛이었다. 그가 준 두 번째 밥을 비우며, 앞으로도 밥이 그치지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제발 그가 내게 이름을 붙여주고 불러주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기다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가 문을 활짝 열고 들어와 내가 웅크리고 있는 자리로 몸을 굽혀왔다. 그리고 손을 뻗쳐와 내 머리를 가만히 만져 주었다. 그는 고개를 숙여 나와 눈을 맞췄고 그때 우리의 통로는 다시 연결되었다. 나직한 그의 음성이 들렸다.

“포도야 우리와 함께 살아줄래?”

난 대답 대신 그의 손을 핥았다. 간절히 바랐던 그의 손이었고 그의 손이 얼마나 무겁게 다가왔는지 알았기에 고마웠다.

“앞으로 네 이름은 포도야.”

난 내 이름을 되뇌었다. 두 번의 환생 끝에 얻은 이름이었다.

“포도”


그가 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마침내 나의 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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