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리 집 다락의 내 자리는 천정이 점점 낮아지다가 가장 낮은 곳, 창을 마주한 앉은뱅이 책상이 있는 곳이다. 내 자리로 가기 위해선 머리를 숙여야 한다. 스스로 겸손해지는 자리인 셈이다. 다락은 퇴근하고 저녁의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장소다. 아내는 자기 자리를 다락에게 뺏겼다며 내게 눈치를 주지만 우리는 서로가 알고 있다. 집에서도 각자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장소가 따로 있고 그 장소는 존중되어야 함을.
집이라는 곳이 가족에게 있어 의미있는 장소가 되려면 각자 보물을 찾듯 자신이 빛날 수 있는 장소를 찾아야 한다. 그곳이 나한테는 다락이었고 아내에게는 창과 높이가 일치한 거실의 소파였다. 아내는 하루의 많은 시간을 소파 위에서 공원을 바라보는 것에 할애했다. 시간과 계절의 변화가 소파 위 자신의 마음 상태와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모종의 사건을 아내는 즐겼고 내가 끼어들 수 없는 본인만의 추억을 만들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앉은뱅이 책상 앞의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만년필로 하루의 일을 고백하는 것이 내게는 가장 소장한 시간이었다. 마치 더러운 일을 마치고 샤워를 하는 기분이랄까. 나를 정화하는 소중한 의식이었다.
그날 밤도 그랬다. 평소와 조금 달랐던 것은 감자전에 막걸리를 한 잔 걸친 탓에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여러 갈래 흩어져 펜을 잡고도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 정도였다.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려 의자 옆 턴테이블에 먼지 앉은 레코드판을 올려놓았다. 듀크 조단의 따뜻한 피아노 소리에 섞인 지직 거리는 소리가 마치 빗소리 같았다. 차분히 가라앉는 마음에 졸음이 섞여 들어왔고 나도 모르는 사이 잠이 들어버렸다.
나는 한 겨울의 도곡리 별채에 있었다. 검은 화목 난로에는 이글이글 장작이 타고 있었고 동그란 창을 바라보고 있는 포도의 뒷모습이 보였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건만 포도는 한 눈에 알아볼 수가 있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포도를 불렀다.
“포도야”
포도가 뒤를 돌아봤다. 동그란 눈이 여전히 예뻤다.
“안녕. 당신이 나를 여기서 처음 포도라고 불러줬는데, 기억나?”
포도의 말이 들렸다. 그럴 수 없음을 알았지만 난 당연한 듯 받아들였다.
“눈 오는 날, 내가 너를 포도나무 아래에서 처음 봤잖아. 그래서 너를 포도라고 이름 붙였지. 왜? 싫었어?”
“내가 당신을 쫓아 두 번이나 환생하면서 겨우 얻은 이름이었는데, 싫을 리가 있어?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어.”
“환생을 두 번이나 했다고? 판타지 드라마처럼 네가 환생을 한다는 거야?”
“응. 당신이 살던 아파트에서 새를 물어간 고양이도, 차 안에 갇혀 있었던 고양이도 모두 나였어. 나는 당신의 원수였고 당신은 나의 은인이었지.”
까맣게 잊고 있던 앵무새 완두가 생각났다. 그러면서 화가 났다기보다는 포도와 나의 묘하게 얽힌 인연의 내막이 궁금해졌다.
포도는 자기 옆에 앉으라는 눈짓을 해왔고 난 화목난로 앞에 포도와 나란히 앉아 포도의 이야기를 들었다. 내 생애에 있어서는 짧았던 시간이었는데, 포도는 세 번의 삶을 살았던 사연 많던 생애였다.
“포도야. 네가 죽고서 나는 네가 얼마나 그리웠는지 몰라. 너도 그런 마음이었다면, 다시 환생해서 내게 올 수도 있었잖아”
“나도 처음에는 그러려고 했어. 병원에서 당신의 손을 잡고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할 때, 난 눈으로 당신에게 말했어. 곧 돌아올 거야. 너무 슬퍼하지 마. 라고”
“영혼이 돼서 당신과 함께 옛집을 돌아보고 내 껍데기에 정성을 다하는 당신의 모습을 보고는 마음이 급해졌지. 빨리 고양이가 되어서 당신에게 돌아가야겠다는 마음뿐이었어. 그러다가 나무를 보게 됐어. 당신이 내 껍데기를 바닥에 눕히고 그 위에 나무로 된 집을 지어준 거야. 노란 가지에 노란 잎이 달린 예쁜 집이었지. 죽은 나만을 위한 집이었어. 내 껍데기에 들어가 보니 집은 생각보다 더 아늑했어. 살아있는 나무도 나를 반겨줬고. 그렇게 지내다보니 시간이 이렇게나 많이 지나버렸네.”
황금회화나무가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었다. 그리고 나무이름이 포도나무가 되었던 것도 얘기를 듣고 보니 당연한 것이 되었다.
“당신이 이 집과 함께 하는 동안, 나 역시 이 나무와 함께 할 거야”
난 양수리를 너무나 사랑해서 떠날 마음이 없다. 그렇기에 이 집은 나와 오래 함께 할 테지만, 포도를 다시 만나고 이 집에 계속 있어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
“혹시나 당신이 이 집을 떠나 새 집이 생겼을 때, 혹시 낯선 고양이가 찾아와 당신의 발에 볼을 비빈다면 그게 나일 거야.”
“그때, 포도야 라고 다시 불러주면 돼.”
화목난로의 장작불이 꺼져 갈 때쯤, 포도도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나는 다락의 노란 불빛이 눈꺼풀 아래로 스며들어와 잠에서 깨었다.
아쉬움의 짧은 한 숨을 토했다.
‘포도를 몇 년 만에 다시 본 거지?’
내 기억 속의 포도가 꿈을 찾아온 것인지, 정말로 포도의 영혼이 내 꿈을 빌어 나를 보러 온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아무래도 좋았다. 포도를 다시 보고 얘기까지 나눌 수 있었으니.
꿈에서 봤던 포도를 놓치지 않으려고 난 책상 앞에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 펜을 들어 크로키 하듯 시를 써 내려갔다.
그는 나의 집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그곳이 집이라면
그는 나의 집이다
길모퉁이에서 반기는
밥 짓는 냄새
반쯤 열어둔 그의 마음에
눈을 깜빡여 노크를 하고
안심의 신호를 건너
그에게 돌아간다
머리를 비비고 가르릉 소리에
밀린 집세를 타박하지 않고
그는 늘 문을 열어 두었다
다행이다 얘기해 주는
그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한지
그는 나의 집
그의 마당에
뿌리를 내린다
시 안에 나는 포도였다. 포도의 마음이 집 앞 모퉁이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포도가 다락으로 나를 찾아와줬던 그날 이후 포도의 잔상은 오래 남았다. 정원의 포도나무를 바라보는 것도 예사 같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내가 동네 길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집으로 오는 골목 초입에 5층짜리 모텔이 있다. 아마도 양수리에서 제일 큰 모텔이지 않을까 싶은데, 모텔의 뒤쪽으로 꽤 넓은 주차장이 자리했다. 주차장은 공원길과 마주하고 있었고 울타리 삼은 벚나무와 산수유나무가 길에 늘어서 있었다. 늘어선 나무들 중간 즈음에 모텔에서 사용하는 작은 컨테이너가 하나 있었는데, 그 위에 늠름하게 앉아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고양이가 있었다. 아내는 그 고양이가 마치 무슨 장군 같았다고 했다.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도도하게 아래를 내려다보는 모습이 기특해 보이기까지 했는데, 얼마 전부터 컨테이너 위가 텅 비어있더란다.
“나도 그 고양이 봤어. 아마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겠지”
내가 무심하게 말을 던졌는데, 아내는 걱정스러운 낯빛으로 말을 받았다.
“그런 거 같은데... 그게 아무래도 자의로 옮긴 거 같지는 않아. 그 고양이를 괴롭히던 다른 고양이들을 봤거든. 두 마리가 함께 고양이를 앙칼지게 몰아세우더라고”
“어? 그런 거였어? 영역싸움을 했나보네. 그 놈 보기 좋았는데, 어디로 갔을까...”
포도를 떠나보내고 우리 부부는 동네의 길고양이에게 부쩍 관심이 많아졌다. 고양이 사료를 현관 신발장 안에 넣어두고 집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를 보게 되면 사료와 물을 챙겨줬다. 딱 거기까지였다. 포도를 잃은 상실감이 반려의 의지를 꺾어 버려서 우린 경계를 설정하고 그 안으로 고양이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다. 그런 상태라 컨테이너 위의 고양이가 걱정은 됐어도 그 이상의 마음을 쓰는 것을 접었다.
그런데 그 걱정거리가 경계를 넘어 들어오려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양수리 집은 30평 작은 땅에 총 4개 층이 쌓여있는 일종의 협소주택이었다. 1층은 2대의 차를 댈 수 있는 주차장과 작은 응접 공간이 있고 응접 공간에 붙어 포도나무가 자리한 정원이 있다. 응접실은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만든 공간이었다. 공원길에 붙은 우리 집이 동네의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고 건축 상담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때를 가리지 않고 얘기를 나눌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1층 응접실은 항상 열어 두었다. 냉장고에는 작은 생수병과 맥주를 채워뒀고 평상을 설치해서 다리쉼을 할 수 있는 곳도 마련했다. 아내와 나는 가끔 술 한 잔이 생각날 때면, 응접실에 내려와 새우깡에 맥주를 홀짝거렸다. 도곡리 집의 별채 같았다고 할까, 응접실이 아닌 어느 주점에 마주 앉아 데이트를 하는 느낌이라 우린 소량의 술에도 얼굴이 불콰해지고는 했다.
어느 쌀쌀했던 밤이었다. 술 한 잔이 간절했던 나는 아내를 꼬드겨 응접실로 내려갔다. 쌀쌀한 밤에는 맥주보다 소주가 어울리기에 편의점 어묵과 떡볶이를 놓고 소주를 마셨다. 한 병을 다 비워갈 때 즈음, 소변을 보려고 화장실을 들어갔더니 그 안에 노란 털뭉치가 앉아 있었다. 오줌이 쏙 들어갈 만큼 놀라서 비명을 질렀더니 아내가 화장실로 뛰어 들어왔다.
“저거.... 뭐야?”
털뭉치가 꿈틀거렸다. 그리고 아주 작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불을 켜고 가까이 가보니 비쩍 마른 고양이었다. 힘이 없는 듯 축 늘어져 있었고 다리 쪽에 찢긴 상처가 나있었다.
“얘는 언제부터 여기 있었던 거지? 아니, 대체 어디서 온 아이야?”
“어? 이 고양이, 며칠 전에 내가 얘기했던 컨테이너 위 고양이 같아요.”
너무 말라서 처음엔 알아보지 못했는데 생김새와 털 색깔을 살펴보니 그 아이가 맞았다. 어떻게 지냈는지, 오래 굶은 듯했고 다리의 상처는 덧나 있었다. 당당하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내가 물과 사료를 챙겨오고 나는 소독약과 담요를 가져왔다. 굳이 역할을 분담하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러웠다. 화장실 구석에 쉴 자리를 만들어주고 상처를 소독했다. 아이는 저항할 힘마저도 남아 있지 않은 듯했다. 날이 밝으면 병원에 데려가기로 하고 불을 꺼주고 조용히 나왔다.
악연이라 생각했던 동물병원을 다시 찾았다. 상처를 살핀 원장은 날카로운 것에 찢긴 상처 같다고 했다. 감정이 안 좋았던 탓일까?
“그건 저도 알겠는데요. 그 날카로운 게 뭔가가 궁금한 거죠. 혹시 같은 고양이와 다투다 생긴 상처 아닐까요?”
원장은 머쓱해져서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얼버무렸다. 먹는 약과 연고를 처방받고는 얼른 집으로 돌아왔다. 일주일 동안 아내와 나는 번갈아가며 화장실을 병실 삼은 고양이를 보살폈다. 상처는 아물고 있었고 살도 조금씩 붙고 있었다. 우리는 화장실과 응접실 문을 조금 열어 두었다. 떠나고 싶을 때 언제든 갈 수 있는 선택지를 주고 싶기도 했지만 더 이상 우리 안으로 들어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양수리에 첫 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고양이가 화장실을 벗어나 응접실에 눌러 앉은 지 한 달 정도 됐을 때였다. 아내와 첫 눈을 기념하기 위해 와인 한 병을 들고 응접실로 내려왔다. 포도를 만나던 날처럼 함박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응접실 창밖의 포도나무에는 눈이 소복하게 쌓여 반짝거렸다. 평상에 마주 앉아 내리는 눈을 안주 삼아 와인을 마시는데, 어느새 고양이가 평상 위로 올라와 아내와 내 사이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머리를 내 무릅에 슬쩍 비비고는 그르릉 소리를 냈다. 난 아내에게 다락에서 꾸었던 꿈 이야기를 들려줬다.
“포도는 그렇게 몇 번의 환생을 하며, 기어코 우리에게 왔대. 우연히 우리에게 다가온 인연은 우연이 아닐지도 몰라. 이 아이도 우리에게 오기위해 기막힌 사건을 겪고 기필코 다다른 것인지도 몰라. 포도의 세 번째 환생이라 생각하고 우리가 이 아이의 집이 되어주면 안될까?”
아내는 말없이 빙긋 웃었다. 우린 건배를 했고, 포도는 우리의 무릎 사이에서 조용히 잠이 들었다.
다시 우리에게 왔던 포도는 응접실에 살다가 어느 날 아지랑이처럼 사라져버렸다. 봄의 생기가 넘치던 공원으로 놀러나간 포도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공원을 뒤져봐도 보이지 않았다. 서운했지만 슬퍼하지 않기로 했다.
포도는 또 다시 다른 포도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세 번째 포도에게 집이 되어 주고 있다. 비가 오면 우리 집 계단에서 비를 피하던 검은 고양이였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나를 반겨주는 그 아이에게서 포도를 보았다.
내가 사는 동안, 나는 고양이에게 기꺼이 집이 되어줄 것이다.
누군가의 집을 그리는 건축가인 내가,
스스로 집이 된다는 건 엄청 보람된 일일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