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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 Jun 07. 2021

전쟁 같은 사랑

잠시 제정신이 아니었나 보다...

    원래 계획은 졸업 후 '인테리어'를 배우려고 했다. 주거학을 배워 보니 너무 흥미 있는 분야였다.  부모님의 지원은 대학까지였기 때문에 졸업 후 학원에 등록해 배우려고  알바를 했다. 무슨 학습지 학생들을 모집하는 거였다. 그곳에서 결혼할 사람을 만날 줄이야....

  난 말재간이 없어 실적이  나지 않았다. 남편은  말을 잘했고 외모로 볼 때 결혼한 아저씨인 줄만 알았다. 이상형과는 거리가 멀어 맘 편히 대했고  밥을 잘 먹기에 밥을 덜어주고 하다 보니 숟가락에 밥풀이 붙듯 정이라도 들러붙었나....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때가 있나 보다.  지금은 잘하지 않는 생각이지만, 만약 내가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더랬다. 모든 게 내가 선택한 거고 그에 따른 결과인 것을. 서로가 제정신이 아니었던게지. 콩깍지가 씌었으니 뵈는 게 있었을라고. 그래서 정이 무섭다는 건가보다


 영수라도 잘해 놓을걸... 공부를 잘했으면 가고 싶은 학교, 과 선택했겠지... 과외해서 용돈도 벌었을 테고...  갑자기 나 자신이 초라하고 마음이 먹먹해졌다. 공부보다 책 읽고 글 쓰고 공상하기에 빠졌던 것이 후회되었다. 부모님께 대학원 보낸다 생각하시라고 떼를 쓰고 싶은 마음도 잠시 들었으나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버진 얼른 시집보내길 원하셨고, 고생 고생하신 엄마에게 손 벌리기란 쥐구멍 들어 가는 거 같았으니까.... 그런데 인테리어 공부를 더 하겠다는  생각은 온 데 간데 없어지고 사랑에 빠져' 반대 결혼 극복 프로젝트'로 돌입하게 된 것이다. (나중에 남편이 개업하며 매장 인테리어를 내게 맡기면서 반쪽의 꿈은 풀 수 있었지만.)


    난  사실 결혼보다 독립이 하고 싶었다.  부모님이 인정하는 독립은 결혼뿐이므로 결혼 밖에는 길이 없었다. 지금이야 오피스텔이 잘 되어 있고 혼자 독립해서 사는 골드미스도 많지만 그때는 어림 반푼 어치도 없었던 거 같다. 그리고 다들 결혼이 당연한 수순처럼 여기기도 했다. 스스로 독립할 능력도 없고, 내 가정을 꿈꾸기도 했고 독립의 '독'자 소리를 낼 용기가 일도 없었다.  난 맏딸 콤플렉스가 있어서 부모님 말씀에 불순종해 본 적이 없었다. 옷 조차도 내가 좋아하는 옷보다 부모님이 좋아하는 스타일로 입었으니까.

      

   그런데 엄청난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했다. 한 번도 그래 본 적 없던 딸이 그러니 부모님으로선 충격이 아닐 수 없으셨을 거다. 인물이나 키가 훤칠한 것도 아니고 직장이 번듯한 것도 아니고 부자도 아니고 집안이 좋은 것도 아니고 부모님 보시기엔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드시는 것이 없으셨던 거다. 부모님으로서는  충분히 그러실 수 있었기에 죄송하단 말씀밖에 드릴 수 없었다.


     " 이 사람은 마음이 편해요, 날 배신하지 않을 사람 예요. 지금 비록 이래도 사막에 갖다 놔도 살 사람이에요."

내가 외친다한들 부모 마음 차지 않는데 귀에 들어 올리 만무였다.


      결국 난 부모님 뜻을 거역치 못해 이별을 고했고 일방적으로 헤어져 그를 피해 숨으면 끝날 줄 알았다.

  남편은 이사한 주소를 어찌 알아낸 건지 마치 형사처럼 퇴근하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우린 다시 만났다. 다시 만나니 이젠 부모님도 막을 방도가 없겠다 싶으신 건지 결혼을 막진 않으셨다. 드라마 한 편 같은 스토리가 있지마는 다 쓰기에는 분량이 넘친다. 나이 들어 보니 부끄러운 것도 있고 내 사랑을 미화하기도 쑥스럽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은 하나밖에 없는 사위이고 딸 보다 더 의지 하신다.  남편은 해결사다. 발도 넓고 오지랖이다. 시댁, 친정, 친구들, 문제가 생기면 콜이다. 때로 난 그게 싫었지만  누군가 도울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할 일이란 걸 깨달았다. 그래서 곁에 사람이 많은지도 모른다. 난 그에 비해 깍쟁이다.  내가 참는다지만 그가 품어 주는 것도 많다. 그래서 고맙다.



     함께 울고 웃던 추억과 시간의 공유, 견뎌온 세월의 무게 그것이 사랑보다 무서운 부부의 끈끈한  정이 되는 거 같다. 난 좀 허당인 데가 있어서 늘 완벽하고 꼼꼼하고 정확한 남편에게 자존심 상할 때가 있었다. 그래서  허술한 모습을 보일 때 처음엔 너무나 고소했다. '거봐~~~ 당신도 실수하잖아. 나만 그런 게 아냐'

  그런데 어느 날은 그 모습이 훅~~ 짠하게 다가왔다. 이 사람이 늙어가나.... 뒷모습이 안쓰러워지고 달리 보였다.   이젠 서로가 안쓰럽게 여기고 함께 가는 삶의 동료며 동지애로 산다.


    전쟁 같던 사랑이든,  잔잔한 사랑이든  어떤 형태든 내 곁에 바로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이 소중하다고 느껴진다. 내가 아플 때 물 한잔 떠 주고 지나온 옛이야기 나누며 손 잡아 줄 이가 있어 감사하다.

그래서 흔히 쓰는 말이 있다,


    있을 때 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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