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고음악도시는 왜 슬로건으로 멈추는가

- 축제의 에너지는 왜 일상이 되지 못했는가

by 토양지기 Soil Keeper

1998년, 춘천전국리코더페스티벌이 시작되었다.

나는 2000년과 2001년, 두 시즌 동안 이 축제의 기획자였다.

축제는 해마다 성장했다. 관객들은 환호했다. 이 성공의 기억이 모여 훗날 '고음악 도시 춘천'이라는 이름의 씨앗이 되었다.

28년이 지난 지금, 평일 저녁거리를 걸으면 고요하다.

"고음악 도시"는 남았다. 그런데 시민들의 일상에서 그 음악은 들리지 않는다.

왜 이 이름은 정체성이 아니라, 슬로건에 머물러 있는가.


부족했던 것은 시간이 아니라 등장방식이다

한 장르가 도시의 문화가 되기에 춘천이 가진 시간은 충분했다.

그동안 고음악은 축제 기간마다 시민을 만났다. 이 음악은 늘 같은 방식으로 등장했다.

행사가 열릴 때는 또렷해지고, 행사가 끝나면 다시 조용해진다.

기억은 남았다. 하지만 생활의 리듬으로는 남지 않았다.


이 음악은 없었던 적이 없다

춘천에서 고음악이 완전히 사라진 적은 없다.

축제 무대에서 전문 연주자들은 해마다 시민을 만났다. 초등학교 음악실에서는 아이들이 리코더를 배웠다. 예술센터에서는 어르신들이 연습했다. 어느 연주자는 오랜 시간 시민들과 만나며 이 음악을 나눴다.

소리는 들려오고 있었다. 노력도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 흐름들은 서로 닿지 못한 채, 고립된 섬으로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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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 활동들을 도시 전체의 생활문화로 엮어내려는 움직임은 없었다.

시민들은 여전히 '듣는 사람'에 머물러 있었다. 교육은 교육대로, 축제는 축제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따로.


축제가 열릴 때와 일상 사이

축제가 열릴 때마다, 이 음악은 도시를 채웠다.

그리고 축제가 끝나면, 다시 빠져나갔다. 물이 차올랐다가 빠지듯.

28년 동안 반복된 것은 짧게 채워지고, 길게 비는 시간이었다.

고음악은 춘천에 계속 있었다. 무대에서, 교실에서, 연습실에서.

다만 그 소리들은 서로 닿지 못했다. 흩어진 채로 각자의 자리에서 울렸다.

만약 이 소리들이 연결되었다면. 축제장을 벗어나 골목까지, 무대 위를 넘어 일상까지 이어졌다면.

그랬다면 "고음악 도시"는 슬로건이 아니라, 도시의 일부가 되어 있을 것이다.


소비하는 도시와 향유하는 도시 사이

슬로건은 편리하다. 짧고 분명하며, 성과로 묶기 쉽다. 그런데 도시의 생활은 바뀌지는 않는다.

정체성은 그 보다 천천히 온다. 공간에 남고, 평일의 선택 속에 스며들면서.

퇴근길 골목에서 리코더 소리가 들리고, 주말 오후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고음악 공연을 찾는 풍경.

그런 일상의 접촉 없이 축제만 화려하다면, 그 도시는 문화를 향유하지 않는다. 소비하고 있다.

특별한 날에만 찾는 '박제된 문화'라면, 아직 도시의 일부가 아니다.


들려주기를 멈추고 연결을 시작해야 할 때

전문연주자의 무대를 보러 가는 것과, 시민이 직접 악기를 배우며 즐긴다는 것 사이.

이 거리가 좁혀지지 않으면, 그 문화는 '관객'으로만 남는다.

이 음악은 멀리서 크게 울릴 때보다, 가까이에서 자주 만날 때 남는다.

28년이 지난 지금, 춘천의 일상 풍경은 아직 그 쌓임을 갖추지 못했다.


그때는 그렇게 믿었다

2000년 여름, 축제장에서 관객들의 박수를 들을 때마다 생각했다. 이 도시가 달라질 거라고.

해마다 관객이 늘고, 언론이 주목하고, 예산이 커졌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 음악이 춘천 사람들의 생활이 되리라 믿었다.

2026년 평일 저녁, 거리는 여전히 고요하다.

지난 세월 동안 고음악은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을 다했다. 축제는 자리 잡았고, 교육은 계속되었고, 연주자들은 무대에 섰다.

하지만 이것들을 생활문화로 엮어내지는 못했다. 들려주는 것에만 집중했다.

춘천만의 잘못이 아니다. 거의 모든 축제 도시가 같은 방식으로 움직여왔다.


슬로건은 말로 남고, 정체성은 삶으로 남는다.

지금 어딘가에서는 누군가 이 음악과 함께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노력들이 하나의 흐름이 되지 못했다면, 그동안 '고음악 도시 춘천'이 만들어온 것은 축제였을까, 문화였을까. 삶으로 남으려면, 필요한 것은 더 큰 무대가 아니라, 더 잦은 마주침이어야 한다.

이제 묻는다. 무엇을 기준으로 도시를 읽어야 할까.


[Director's Note|디렉터 노트]

춘천의 국제고음악제는 실패한 축제가 아닙니다. 누구보다 오래 지속되어 온 축제입니다.

그럼에도 일상이 달라지지 않았다면, 이제 고민할 지점은 열정의 양이 아니라 노력이 향하는 방향입니다.

슬로건은 말로 남고, 정체성은 삶 속의 선택으로 남습니다.

이어지는 시즌1 마지막 편(10편)에서는 소나기가 아닌 보슬비로, 효율이 아닌 '쌓임'으로 도시를 읽는 기준을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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