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멋진 청소 도구

by lee nam



계절이 바뀔 때마다 우리는 창문을 열고 묵은 먼지를 털어내며 대청소를 한다. 하지만 정작 가장 많은 오물이 쌓이는 마음의 구석은 좀처럼 들여다보지 못한 채 살아간다. 일상이라는 바다를 항해하며 우리는 미처 소화하지 못한 서운함, 해결되지 않은 불안, 그리고 이름 모를 슬픔들을 마음의 지하실에 차곡차곡 쌓아둔다. 보이지 않는 곳에 밀어 넣었다고 해서 그것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습기를 머금은 곰팡이처럼 소리 없이 번져나가 어느 날 문득 삶의 의욕을 갉아먹기도 한다. 글쓰기는 바로 그 어둡고 눅눅한 마음의 지하실에 등불을 들고 들어가 구석구석을 닦아내는 가장 정직한 청소 도구다.

청소의 시작은 물건을 꺼내놓는 일에서 비롯되듯, 마음의 청소 또한 내면의 감정들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배설'에서 시작된다. 흰 종이 위에 펜을 대는 순간, 머릿속을 부유하던 실체 없는 괴물들은 비로소 '단어'라는 형체를 입고 눈앞에 나타난다. 막연했던 분노는 구체적인 상황의 묘사가 되고, 가슴을 짓누르던 슬픔은 한 문장의 고백으로 치환된다. 마음 안에 있을 때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해 보이던 문제들도 글로 옮겨놓고 나면 생각보다 작고 초라한 모습일 때가 많다. 문장을 잇달아 써 내려가는 과정은 내 안의 찌꺼기들을 하나씩 걸러내어 밖으로 방출하는 정화의 의례와 같다.

글쓰기가 가진 진정한 힘은 '객관화'라는 빗자루질에 있다. 내가 쓴 글을 다시 읽는 행위는 타인의 삶을 관찰하듯 나를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게 한다. "나는 지금 힘들다"라고 쓰는 순간, 나는 힘듦에 침잠해 있는 당사자인 동시에 그 상태를 관찰하는 목격자가 된다. 이러한 거리 두기는 마음 구석에 들러붙어 좀처럼 떨어지지 않던 집착과 편견의 때를 벗겨낸다. 주관적인 감정의 늪에서 벗어나 이성적인 시선으로 삶의 지도를 다시 그릴 때, 우리는 비로소 무엇이 나를 진정으로 괴롭혔는지, 그리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를 명확히 깨닫게 된다.

마음의 구석에는 오랫동안 방치되어 딱딱하게 굳어버린 기억의 얼룩들이 있다.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 혹은 내가 타인에게 준 상처들이 화석처럼 굳어 마음의 통로를 막고 있다. 글쓰기는 이 굳어버린 얼룩 위에 따뜻한 이해의 물을 붓고 부드럽게 문지르는 과정이다. 그때의 상황을 다시 복기하며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가다 보면, 미처 보지 못했던 상대방의 사정과 나의 미숙함이 서서히 드러난다. 용서할 수 없었던 일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일'로 이해의 영역에 들어올 때, 마음의 결은 비로소 매끄러워진다. 글쓰기는 과거의 상처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새로운 의미의 결을 덧입혀 아름다운 무늬로 만드는 작업이다.

청소의 끝은 비워진 자리에 맑은 공기를 채우고 정돈하는 것이다. 내면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글로 쏟아내고 나면, 그 빈자리에는 묘한 해방감과 함께 고요한 평화가 찾아온다. 정돈된 문장들은 어질러진 방을 정리한 뒤 맛보는 상쾌함과 닮아 있다. 뒤엉켜 있던 생각들이 논리적인 문단으로 배열되고, 갈팡질팡하던 마음이 마침표 하나로 매듭지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다. 깨끗하게 비워진 마음의 도화지에는 이제 절망이 아닌 희망의 단어들을 채워 넣을 수 있는 여백이 생긴다. 이 여백이야말로 글쓰기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고귀한 선물이다.

글쓰기로 마음을 대청소한 뒤 책상을 정리하며 일어설 때, 세상은 이전과 조금 달라 보인다. 창밖의 나무는 더 푸르고, 불어오는 바람은 더 선선하게 느껴진다. 내 안의 먼지를 털어냈기에 세상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맑아진 덕분이다. 비록 삶은 끊임없이 새로운 먼지를 만들어내고 또다시 마음은 어지러워지겠지만, 이제는 두렵지 않다. 나에게는 언제든 펼칠 수 있는 종이 및 펜이라는 든든한 청소 도구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무거운 마음을 이끌고 책상 앞에 앉아 첫 문장을 긋는다. 나를 사랑하고 삶을 경건하게 대하는 가장 정직한 방법, 그것은 바로 멈추지 않고 나를 써 내려가는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손톱과 발톱을 깎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