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진정한 겸손이 아닐까?
20230610 – 경희대학교 명예교수 김상국
매체의 발달은 매우 좋은 것이다. 물론 잘못된 소식이 전달되고, 특히 어떤 특별한 목적을 가진 선동가의 발언 등이 필요 이상으로 확산되는 폐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 관점으로 볼 때 매스컴의 역기능보다는 순기능이 훨씬 더 크다고 생각한다. 그것에 대한 명백한 증거가 있다. 독재국가들이 가장 힘들여 노력하는 것이 바로 언론탄압이기 때문이다.
언론탄압의 전형적인 국가가 김정은의 북한과 시진핑의 중국 그리고 푸틴의 러시아다. 하나 더 추가한다면 스스로 먼저 굽히고 들어가는 일본 언론도 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우리나라의 어떤 사람들이 대한민국이 ‘언론통제국’이라고 국제언론재판소에 소를 제기했다는 말을 듣고 실소(失笑)를 한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처럼 현직 대통령을 능멸하고 (양쪽 모두), 엉터리 기사, 거짓 기사, 수준 낮은 기사(‘아니면 말고 스타일의 기사’)를 써도 독자들이나 관계기관들로부터 제소당하지 않은 나라는 아마 전 세계에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다.
오늘은 어느 특정 기사보다는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 관해 얘기할까 한다. 세상에는 많은 전문분야가 있다. 그리고 그 분야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우리는 ‘전문가’라고 부른다. 또한, 그런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의견을 말하면 일반적인 사람은 경청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일 것이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이런 너무나 당연한 상식적인 행태가 무너지는 것 같아 심히 우려스럽고 걱정이 된다. 가장 가까운 최근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지금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오염수 바다 방류문제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우리나라에서도 두 정당이 폐수 방류문제가 정말로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고, 조사단을 파견한 모양이다. 그러나 귀국 후 두 정당 대표자의 발언이 한쪽은 “안전하다.” “다른 쪽은 아니다.”라고 주장하였다. 같은 일에 대해서, 같은 시간에 본 사람들이 어떻게 이리 정반대일 수 있을까?
마치 500여 년 전 조선에서 ‘일본의 도요도미 히데요시가 우리나라를 침범할 것 같으니, 사람을 파견하여 조사해 보라.’는 왕명을 받고 일본에 조사관을 파견한 적이 있었다. 역사책에 나오는 얘기이니 모두 다 알 것이다. 그러나 동일한 사실을 본 두 사람은 사실을 보고하기보다는 자기가 소속된 붕당의 의견을 반영하여 전혀 반대되는 의견을 내놓았다. 한 사람은 “눈빛이 흉흉하여 곧 조선을 침범할 것 같습니다.”라고 보고하였고, 다른 보고자는 “얼굴이 생쥐 같은 좀상이어서 도저히 침략전쟁을 할 만한 인물이 아닙니다.”라고 보고하였다.
그러나 몇 년 후 일본은 조선을 침략하였다. 이 임진왜란으로 우리 국토는 얼마나 큰 피해를 보았으며, 우리 불쌍한 민초들은 얼마나 그 고생이 컸었던가? 만약 그때 두 사람이 정확한 사실에 근거한 의견을 내고, 우리도 준비하였다면 엄청난 고통의 상당 부분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도 마찬가지다. 오염수를 방류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원자력의 반감기가 짧게는 몇 분짜리도 있지만,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몇천 년 또는 몇만 년의 반감주기를 갖는 방사성 물질들이다. 그래서 이런 장기간에 걸친 방사선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땅을 깊게 파서 보관하거나, 지하 동굴, 소금광산 또는 지하갱도에 묻는 것이다. 아니면 큰돈을 들여 폭격을 받아도 파괴되지 않을 튼튼한 용기에 담아 차곡차곡 쌓아 보관하기도 한다.
내가 과거에 원자력 프로젝트를 여러 건 할 때 미국 네바다주 폐기물 보관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유카마운틴(Yucca Mt.)이라는 큰 산에 수십 미터 높이에 수십 킬로미터 길이의 갱도를 건설하고, 사용 후 핵연료를 보관하는 시설을 보고, 그만 기(氣)가 질린 적이 있었다.
일본은 사실 핵폐기물 내지 오염수를 이미 방치 내지 방류하고 있었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에서 나온 오염된 토양을 대형 『비닐』 자루에 담아 건물 안도 아닌 밖, 노천에 비를 맞는 장소에 쌓아 두고 있었다. 사고가 난 원자로를 처리한 오염수도 이미 시내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다만 일본 정부는 그런 짓을 공공연히 하고 싶어 오염수 방류문제를 제기하였을 뿐이다.
나는 서울대 핵공학과 서균렬 교수를 잘 안다. 그분은 MIT를 나온 뛰어난 인재일 뿐 아니라 웨스팅하우스에서 선임연구원을 지냈고, ‘원자력 국제 포럼’ 우리나라 대표였으며, 국제적으로도 잘 알려진 석학이다. 오죽했으면 프랑스 전력청 객원 연구원이기도 하였다. 그런 그가 일본 핵 오염수의 바다 방류가 심각한 문제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사실 며칠 전) 방송을 보니 어느 젊은 ‘변호사’가 방송에 나와 “후쿠시마 원전이 절대로 위험하지 않다. 서균렬 교수는 ‘해양학자’도 아닌데 왜 해류가 순환되어 우리나라로 올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엄청 높은 목소리로 항변하는 것을 보고 참 아연실색 하였다.
우선 첫째, 그렇게 열을 내는 그 사람 자체가 ‘변호사’다. 본인 스스로가 해양학자가 아니다. 둘째, 거의 대부분의 원자력 발전소는 여러 이유에서 바닷가에 짓는다.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소 영광, 울진, 고리 등이 모두 바닷가에 있고, 문제의 후쿠시마 원전도 바닷가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원자력 발전소를 지을 때는 해류의 움직임, 그 지역의 지진 가능성, 문제 발생 시의 해수 오염 가능성 그리고 피해 예방법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한 후 발전소를 건설한다. 환 태평양화산대에 속하는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도 똑같은 가능성을 고려하고 건설한 원전이다. 리히터 지진 진도 9에도 견딜 수 있고, 원자력 냉각수 안전장치도 3중으로 해서 건설한 발전소다.
그러나 이번 후쿠시마 지진은 진도 9.3이었고, 3중 안정장치 중 두 개가 이미 고장 난 상태였다. 오랫동안 무사고에 나태해진 도쿄전력이 안전검사를 하지 않아 3개 중 두 개가 고장 난 상태에서 원전을 운영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 후쿠시마 사고는 물론 자연재해에 의해 사고가 발생했지만 『인재에 의한 사고』에 가깝다고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원전사고를 보면서 일본 내 지각 있는 인사들이 “왜 이렇게 일본이 과거의 일본이 아니고, 나태해지고 책임감 없는 일본이 되었는가?”라는 개탄의 소리를 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이번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안전검토를 위해 우리나라에서 조사단을 파견한 행위는 매우 잘한 일이다. 그러나 허점이 너무 많다. 첫째, 왜 두 팀을 보냈는가? 최소한 세팀을 보냈어야 했다. 임진왜란 때 엄청난 실수를 했었고, 이번에 파견된 두 팀도 똑같은 행동을 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이미 충분히 예견된 결과였다.
나는 이번 파견단의 성격을 보고, 그 보고서의 결과에 큰 관심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 결과가 너무 빤히 보였기 때문이다. 또 예상한 그대로 보고서가 나왔다. 즉 파견된 각 팀은 원하는 결과를 『미리』 정해놓고, 발표의 신빙성을 『높이는 척』하기 위해 파견단을 보냈을 뿐이다.
잘은 모르지만, 일본에서도 적극적인 협조는 분명히 안 했을 것이다. 안전하다는 브리핑 정도(가지 않아도 이미 발표된 자료를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는 내용)를 듣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왔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후쿠시마 원전 현장방문을 하고, 직접 오염의 정도도 파악해 보고, 현재의 처리 상태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왔다면 그분들께 미리 사과를 드린다. 그러나 일본은 아예 현장방문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기사도 나왔다. 이처럼 중요한 사안을 조사하기 위하 방문이라면, 방문 전에 당연히 세부 일정을 상세히 체크하고 가야 하지 않았을까?
내가 안타까운 것은 이번 후쿠시마 원전 문제 만이 아니다. 웬일인지 언제부터인가(짐작은 가지만 여기서는 말하지 않겠다.) 그 분야의 전문가도 아닌 사람이 자기 주장을 할만한 위치에 서기만 하면 모두가 전문가처럼 말하는 것이다.
그분께 명확히 말하겠다. 후쿠시마에서 나온 방류수는 곧바로 북태평양으로 흘러가고, 우리나라에 가장 소비가 많은 명태와 어류, 게 등은 바로 그 북태평양에서 잡아 온다. 그리고 얼마 전 후쿠시마 원전수가 안전하다고, 일본 TV 방송에 나와 원전수를 마시던 어느 정치인과 개그맨이 원자력 오염으로 사망하였다.
다음의 첫 번째 사진은 독일 킬 대학 해양연구소에서 만든 사진이고, 두 번째 사진은 미국 NOAA에서 만든 이미지 맵이다. NOAA(National Oceanic and Atmospheric Administration)는 ‘미국해양대기청’이다. 아마 그 젊은 변호사보다는 바다와 기후에 대해 더 잘 아는 기관이 아닐까 유추해 본다.
모든 사람이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 그리고 전문가일 필요도 없다. 그러나 제한적인 능력을 갖출 수밖에 없는 우리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자세는 바로 『겸손』이다.
여기서 겸손이란 내가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그 분야 전문가가 말할 때 경청하는 자세다. 그리고 조금 이해되지 않더라도 그 전문가의 견해를 받아들이거나, 최소한 거들먹거리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큰소리를 치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