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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샘 Jul 12. 2024

《한국교회, 기본소득을 말하다》 리뷰

논문1. 김회권 - <기본소득의 두 토대 : 자연법과 구약성서>


이 논문의 요점은 기본소득의 연원이 "자연권 사상"이고 그 원형이 성서의 구약성서의 "땅 신학"이라는 것입니다.


이 논문에서 자연권 사상이란 주로

"미경작 상태의 토지는 인류의 공유재산이고, 누구도 땅 자체를 독점할 권리를 지녀서는 안 되므로, 토지소유 기회를 빼앗긴 사람에게는 마땅히 보상이 있어야 한다"라는 의미입니다(54).


구약의 "땅 신학"이란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살 땅을 선물로 공여받았으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자신의 땅을 나눠 받은 자유농민이고, 땅은 하나님의 것이며, 땅에서 얻은 소출의 십일조를 통하여 사회부조를 해야 하고, 하나님께 받은 땅은 타인에게 일정기간 빌려줄 수 있을 뿐 영속적인 의미의 매매는 불가능하고, 그렇게 취득한 토지를 영속적으로 상속할 수는 없고, 땅의 소출은 경작에 참여 못한 객, 고아, 과부, 레위인도 향유해야 한다"라는 의미입니다(57-59). 이러한 땅 신학은 레위기 25:23, 이사야 5:1-7, 신명기 15:7-11 등에서 도출된 것입니다.


저자는 "구약성서는 이스라엘 자유농민의 생존을 경제의 최우선적 과제로 설정한다"(63),  "기본소득은 신명기 15:11을 가장포괄적으로 적용한 장치다"(70)라고 보고 있습니다.


평가

1. 자연권 사상은 상속세나 토지보유세를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삼는 근거가 됩니다.


2. 하나님이 토지소유자이고, 사람은 소작인으로서 경작권을 받았을 뿐이라는 성서의 땅신학은 기독교인들이 자연권 사상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줍니다.


3. 이 논문은 기독교인들이 토지공공성에 대해 인식할 수 있게 하는 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4. 아울러 구약의 땅 신학은 친북용공좌파 낙인을 피하면서 기본소득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주는 방편이 될 수 있습니다.


5. 진정한 기독교인이라면 기본소득의 지지자로 설득하는 일이 용이할 것입니다.


6. 성경말씀을 토대로 교회 내의 십일조나 상속세로 기본소득의 재원을 만드는 것도 가능합니다. 다만 기존교회를 그렇게 변화시키는 것보다 새로 만드는 것이 더 쉬울 것입니다.




논문 2. 정용한 - <기본소득의 관점에서 바라본 "일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살후3:10)을 위한 성찰>


이 논문의 목적은 살후3:10(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에 대한 오해를 푸는 것입니다.


본문 뒤의 세계란 문학감상방법의 반영론, 표현론이라고 보시면 되고, 본문 안의 세계는 내재적 관점, 본문 앞의 세계는 효용론입니다.


저자는 이 세 가지 관점으로 살후 3:10을 분석합니다. 본문 뒤의 세계 챕터에서는 "로마제국의 절대다수가 최저생계의 경계선상에 놓여있었고 그건 교회 내도 마찬가지였는데 로마당국에는 빈민구제 제도가 미비했던 반면 교회는 이 분야에서 앞서 나가고 있었다"(83-90)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본문 안의 세계 챕터에서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무절제하게 살면서 일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의 선택과 결정이 교회 안에서 갖게 된 오해와 경제적 후원에 기인했다"는 내용이 주입니다(98-99).


본문 앞의 세계 챕터에서는 일하지 않고 기본소득을 받을 사람들에 대해 변호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일하지 않는 것은 노동시장과 사회구조의 문제일 수 있고 고전적인 의미에서 게으른 사람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는 것이 말하고자 하는 바인 것 같습니다.


평가

1. 저자의 의도가 숨겨져 있어서 추론을 필요로 합니다.


2. 데살로니가 후서는 34번 각주에서도 보듯이 바울의 친서가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에 따라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3. 요점은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일하지 않는 사람을 굶길 것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 일할 것을 요구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교회는 일하지 않는 이 사람에게 경제적 원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노동하지 않는 사람에게 어떠한 보상도 주어져선 안된다"는 것은 살후 3:10의 진의가 아닙니다(102).


4. 저자는 반로마적이었던 교회가 "경제적 돌봄이 체계화되었을 때 예루살렘 교회가 부흥했다"(95)라고 보고 있습니다. 반자본주의적인 기본소득 네트워크도 경제적 돌봄이 체계화된다면 대중에게 퍼져나갈 수 있으리라 기대해 봅니다.


5. 살후3:10은 기본소득에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이 근거로 인용하는 거의 유일한 본문입니다. 이 논문의 정보들은 그 근거를 반증하는데 쓰일 수 있습니다.




논문3. 김유준 - <루터와 칼뱅의 경제사상으로 보는 기본소득>


이 논문의 요점은 종교개혁자인 루터와 칼뱅 모두 희년 사상에 따라 개인의 재산(특히 토지)소유권을 일부 제한하고 불로소득을 환수하여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토지세를 바탕으로 하는 기본소득 재원마련의 토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루터의 경제사상을 엿보기 위해 몇 가지 어록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보존하는데 쓰고 남는 것은 우리의 이웃에게 속한 것이다."(122) "토지 매매는 돈의 본성에 속하지 않고, 토지를 담보로 지대수익을 노리는 사람은 강도다", "지대 수익은 공동체 모두가 누려야 한다"(132)


루터는 불로소득에 대한 환수방법으로 십일조를 강조했습니다(133-134). 세율은 20%까지도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134-135).


칼뱅은 토지사용의 대가는 사회가 공유하고 노동과 자연사용의 다가는 개인이 사유하는 "지공주의"적 경제사상을 갖고 있었습니다(137).


칼뱅의 경제에 대한 신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137-142).

- 교회의 재산은 전부 빈민을 위한 것이다

- 교회 수입의 최소 50%는 가난한 자를 위해 써야 한다.

- 토지의 지대를 독점적으로 사유한 자들은 약탈을 하고 있는 것이다.

- 땅, 물 같은 천연자연물은 독점할 수 없다.

- 부자는 빈자의 공복이다.

- 하나님의 복은 공동체를 위해 공유되어야 한다

- 기독교인은 세상의 합법 이상의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


루터와 칼뱅의 이러한 희년 사상은 기본소득 재원 마련에 대한 논의 가운데 토지세에 대한 근거가 됩니다.


평가

1. 이 논문은 희년은 기원전 고대 유대의 법이지만, 부의 양극화를 막고 가난한 자들을 돌보기 위한 근거로서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1500년대에 소환되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의의가 있습니다.


2. 소유권, 특히 토지소유권이 우리의 인식 속에 지금과 같이 절대화된 것은 최근의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오히려 서양인들에게는 희년법에 의해 토지공개념이 뿌리 박혀 있습니다.


3. 한국엔 칼뱅의 후예인 장로교가 많은데 칼뱅 입장에서 보면 미흡한 점이 많아 보입니다.




논문4. 곽호철 -<기독교윤리의 시각에서 본 기본소득의 필요성과 방향성>


이 논문은 두 가지 질문에 답합니다. 1. 기본소득이 왜 필요한가? 2. 기본소득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첫 번째 질문에 대하여 그 이유는 기독교의 타자중심성에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가난한 사람을 위해 개인의 소유권을 제한해던 교부들의 글을 인용하며 절대적 소유권을 주장하는 이론들은 기독교 신앙과 양립불가함을 논증합니다(160-164).


물론 가난한 자들에게만 선택적으로 하는 것이 좋지 않냐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세 가지 점에서 선별복지보다 기본소득이 가난한 자들을 돕는데 더 유익하기 때문에 성서에 다 적합하다고 말합니다(166-168). 그 세 가지는 1. 수혜 사각지대가 없다는 것

2. 낙인이 동반되지 않고 덜 굴욕적이라는 것

3. 노동의욕을 감소시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하여, 우선 저자는 3개의 기본소득의 방향을 제시합니다(169-172).


(1) 성장지향형 : 경제성장을 위해 최소한의 기본소득이 주어집니다.


(2) 롤스식 : 기본소득의 총량을 제일 크게 할 수 있는 세율을 고릅니다.


(3) 마르크스식 : 생산량 감소와 기본소득 감소를 감수하고 서라도 공동체 구성원에게 최대한의 자유시간과 최소한의 노동강도를 보장합니다.


저자는 레비나스의 타자윤리학을 바탕으로, 개인의 실질적 자유를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2)와 (3) 사이에서 (3)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183). 저자는 이 방향을 평등지향형 기본소득 수준이라고 부릅니다.


평가

1. 기본소득의 목적에 대해 떠올리고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줍니다. 저자는 불평등의 해소와 이를 통한 실질적 자유의 증진을 그 목적으로 보고 있습니다만,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2. 이 논문은 기본소득이 도입되더라도 기본소득 운동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를 알려줍니다. 제가 보기에 AI와 로봇이 상용화되면 대부분의 나라에서 기본소득이 도입될 것 같습니다. 그건 기본소득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담론 형성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거나 대중이 권력을 잃으면 (1)의 형태가 될 수 있습니다. 그걸 가장 잘 보여줬던 것이 설국열차의 단백질바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우리의 싸움은 (2)에서 (3) 사이가 아니라 (1)과 (2) 사이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3. 이른바 기독교인들이 절대적 소유권 사상을 더 많이 지지한다는 것은 이들이 성경을 잘 모르거나 알고도 거부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들을 설득해서 기본소득 운동에 참여하게 하기보다는 새로운 교회를 세워서 종교심을 가지고 있는 비기독교인을 포섭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운동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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