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습작 2장

비밀의 책

by 송도원

소년은 그림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소녀의 말대로였다. 분명 같은 잿빛이었지만, 매일 보았던 이 잿빛 세상의 그 어떤 풍경과도 달랐다. 분명 멈춰있는 그림인데도,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강렬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는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강렬한 명암으로 그려진 태양을 가만히 쓸어보았다. 종이의 질감 외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손끝이 따뜻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너도 느껴지는 거지?"


소년의 반응을 본 소녀의 얼굴이 더욱 환하게 빛났다. 소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소녀는 신이 나서 책의 다른 페이지를 넘겼다.


"여기 이것도 봐봐."


이번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나뭇잎들로 빽빽한 숲 그림이었다. 그림자는 깊었고, 나뭇잎 한 장 한 장의 질감이 살아있는 듯했다. 소년은 그림을 보자, 자신의 심장 박동이 왠지 모르게 더욱 활기차지는 것을 느꼈다.


"이걸 보고 있으면 온몸에 힘이 넘치는 것 같아. 겨울을 이겨내고 봄에 돋아나는 새싹처럼, 차가운 땅을 뚫고 솟아나는 강한 기운 말이야."


소녀는 또 다른 페이지를 넘겼다. 끝없이 펼쳐진 빙원, 그리고 그 위에 펼쳐진 텅 빈 하늘이 그려진 그림이었다. 이전의 두 그림과는 달리, 소년은 들떴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이 그림은 고요해. 마음속 아주 깊은 곳까지 잔잔해지는 그런 기분. 하지만 나쁜 느낌은 아니지?"

소녀의 물음에 소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은 세 개의 그림을 차례로 다시 바라보았다. 뜨거움, 싱그러움, 그리고 고요함. 이 잿빛의 세상에서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강력하고 선명한 감각들이었다.


"엄마 아빠는 이 책이 그냥 지어낸 옛날이야기라고 했어."


소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펼쳤다. 그곳에는 낡고 희미하지만 분명한 형태를 가진, 세상의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어쩌면 이건 우리 세상의 옛 모습이 아닐까?" 소녀는 지도의 동쪽 끝, 사막이 그려진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조금 전 보았던, 해가 떠오르는 그림과 번갈아 보았다.


"봐. 이 그림 구석에는 '동쪽 사막'이라고 쓰여 있어. 만약 지금은 잿빛뿐인 저 동쪽 사막이, 아주 오래전에는 이 그림처럼 심장이 뛰는 듯한 풍경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어서 소녀는 남쪽의 숲과 북쪽의 얼음 대지를 차례로 가리키며, 숲과 빙원의 그림과 연결 지었다.


"남쪽 숲은 이렇게 생명이 넘실거리고, 북쪽 빙원은 이렇게 고요하고 깊은 느낌을 품고 있었다면? 이 책은 동화책이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린 진짜 세상의 모습을 기록한 역사책인 거야."


소년의 눈은 이제 그림이 아닌, 지도를 향해 고정되었다. 막연했던 느낌들이 구체적인 장소와 연결되기 시작했다. 소녀의 가설은 허무맹랑했지만, 이상하게도 심장을 뛰게 하는 힘이 있었다.


소녀는 책을 덮고, 창밖의 잿빛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소년을 돌아보며, 그 어느 때보다 반짝이는 눈으로 물었다.


"상상만 해도 멋지지 않아? 이 책이 정말 진짜라면? 정말 이 그림들처럼 심장이 뛰는 풍경을 직접 볼 수 있는 거라면? 우리가 지금 이 책에서 느낀 이 자그마한 기분을 정말로 살아있는 세상 속에서 더 생생히 느낄 수 있다면... 정말 멋지지 않을까?"


소녀의 목소리에는 불확실한 꿈에 대한 동경과, 그 꿈이 진짜이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대감이 함께 담겨 있었다. 그 기대감은 고스란히 소년의 심장으로 옮겨와, 소년의 안에서 거대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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