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초, 아직 제대로 된 봄도 오지 않은 것 같은데 을지훈련 예고 공문이 보인다. 훈련부담이 군대만 하겠냐만은 공공기관도 을지훈련이라는 것을 한다. 나이 들어 관공서에 들어온 나는 처음 을지훈련이라는 것을 접했을 때 퍽 당황스러웠다. 지금 속한 5급 단위 사업소에서는 팀원들이 돌아가며 숙직을 서는 것으로 끝나니 고마울만큼 간략하게 가름되지만 4급 단위 부서에서는 꽤 번거로운 일거리였다. 처음 관공서에 들어와 응소자로 참여했을 때는 청사에서 일박을 한다는 것 자체가 좀 얼떨떨했다. 당시 팀장은 평소 업무밖에 모르던 사람으로 각종 실적이나 성과에 부하 직원을 닦달하며 목을 매는 스타일이었다. 그런 사람이 을지훈련이라는 말이 돌자 며칠 전부터 뭔가를 기대하는 눈치더니 당일이 되자 해가 질 무렵부터 무슨 파티처럼 준비하기 시작했다. 00족발집에서 시켜야 한다는 둥 미리 냉장고에 넣어둬야 한다는 둥, 뭔가를 잔뜩 시켜 먹으며 즐길 준비를 하는데 평상시 까칠하던 태도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저녁시간이 되자 부서 탕비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각종 음식들이 한 둘씩 반입되어 테이블에 깔리기 시작했다. 정말 족발부터 만두, 보쌈, 각종 김치와 인당 국수 한 그릇씩, 대략 회식이라고 해도 좋을 가짓수와 양이었다. 아무튼 평소에도 사람사이에서 편치 않은 성향인 나는 아직 낯선 직장상사, 동료들 사이에서 우적우적 뭔가를 씹으며 할 말 없이 자리를 지켰던 불편한 기억이 그 밤의 시작이었다. 이걸 다 먹으면 어디에 몸을 뉘여야 하나, 집에는 몇 시에 보내주나 하며 멍청히 창문을 바라봤다. 창문 너머 밤 풍경이 유독 까맣던 것, 뒤늦게 자리를 찾은 여자 휴게실에서 밤새 뒤척였던 기억, 습습하던 공용 담요촉감 같은 것도 떠오른다. 그리고 한 사람. 나보다 더 그 밤을 불편해 하던 한 사람이 있었다.
같은 팀원이던 그녀는 나랑 같은 나이에 미혼이었는데 누가 봐도 제법 배가 나오기 시작해 임신을 한 눈치였다. 다들 청첩장을 받아둔 터라 그러려니 하던 차였지만 업무에는 촉이 빠른 팀장이 그 쪽으로는 눈치가 없는지 그녀를 응소자에 포함시켜 버렸고 자신과 같은 조에 배치해 청사를 지키도록 일정을 짰다. 그리고 그날, 저녁이 시작되자 종일 불편한 안색의 그녀는 어렵사리 팀장에게 말을 꺼냈다. 몸이 안 좋아 먼저 들어가고 싶다고. 역시나 결과 중심인 팀장은 단호했다. 다들 조별로 청사를 지키는데 이제와 무슨 소리냐, 남아 있어야 한다는 답이었다. 몇 차례 양측 같은 주장이 반복되는 사이, 둘의 목소리와 분위기는 팀원들 모두에게 들릴만한 것으로 바뀌었고 바로 옆 자리던 나는 더 이상 듣고 있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나는 조용히 둘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말을 보탰다. 저, 팀장님 그래도 주임님이 몸이 안 좋으시다는데 그냥 가시라고 하면 안 될까요. 겨우 한 마디 보태봤지만 팀장은 계속해서 “그래도 하시라고요, 다들 배정된 날에 숙직을 하는데 혼자만 빠질 수는 없습니다.“ 를 반복할 뿐이었다. 나는 다시 조용히 돌아와 앉았지만 옆자리 주임이 홀몸이 아니라고 말해주어야 하나, 그러면 실례가 아닐까. 그 두 가지 생각을 반복하며 모니터를 봤던 기억이 더 길다.
그리고 그 밤으로부터 1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팀장은 얼마 전 이사관이 되었고 옆자리 주임은 어쩌면 그 보다 더 까칠할지 모르는 팀장이 되어 어느 부서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리고 올해도 어김없이 을지훈련이 돌아온단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는 사이 을지훈련은 대폭 축소, 생략되었고 직원들 사이 문화와 분위기도 달라졌다. 이제 파티처럼 밤을 즐기는 분위기나 공공연히 알코올을 반입해 모두가 나눠 마시며 공범이 되는 경험 따위는 모두 사라졌다. 급격한 변화를 경험한 탓일까. 나 자신이 아주 옛날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을지훈련의 첫 번째 경험을 적다 보니 어느새 고릿적 옛 사람이 되어 버린 것만 같다. 조금은 아득하고 어딘가 안타까운 기분이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