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호모 사피엔스)은 네안데르탈인처럼 10명에서 15명 정도의 작은 무리로 살다가 친화력이 높아지면서 100명이 넘는 큰 규모의 무리로 전환되었다. 뇌가 더 크지 않더라도, 협력을 잘하는 더 큰 규모의 호모 사피엔스 무리가 다른 사람 종 무리를 쉽게 이길 수 있었다.
타인에 대한 감수성을 가진 우리 종은 갈수록 복잡한 방법으로 협력하고 소통했고 이로써 문화적 역량도 새로운 경지로 나아갈 수 있었다. 우리 종은 누구보다 빠르게 혁신할 수 있었고 또 그 혁신을 공유할 수 있었다. 다른 인류는 가망이 없었다.
'호모 사피엔스(조지프 헨릭 저)'는 유인원 중 인간이 최상위 지배종이 된 이유에 대해 전방위적으로 탐구한 책이었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지구의 탄생만큼이나 여러 세대에 걸쳐 누적적으로 이루어진 (아이디어, 학습, 행운, 개인의 통찰) 조합의 완성으로써 문화적 진화가 만든 유일무이한 신종 동물이란 결론을 내었다.
책의 주요 키워드는 '문화 공진화'개념으로서 인간은 힘도 약하고 빠르지도 않고 독성식물을 피할 수 있는 본능조차 발달하지 않았지만, 공동체의 '집단두뇌'를 따르고 빠른 학습(문화) 능력으로 인하여 생존하였고 진화의 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가끔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무리를 따르는 군중심리 내면에는 학습화된 집단두뇌를 따르려는 진화적 맥락이었다는 점에서 소득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인간이 문화적 세계(문화 공진화)로 통하게 한 최초의 관문은 무엇이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 궁금증에서 출발해 검색하다 찾아낸 것이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란 이 책이다.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 저)'에서는 유전자를 자연선택의 기본 단위로 선정하며 설명하는데, 그것은 생존기계(몸)에 유전정보를 잘 전달하는 잠재적 불멸성이기 때문이었다. 책에서 유전자는 이기적 진화를 위해 이타적으로도 행동한다고 결론지었다. 이타적 행동으로 보이는 동물들의 행동 속 유전자의 입장은 미래의 보답을 기대하며 남에게 도움을 주는 행위로써 동물들의 사회적 진화란 의미였다.
나름대로 개념적 정리를 해보자면,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상 강력한 우월종이 된 이유는 생존기계(몸)에 새겨진 이타적 행동(협력)의 선택압이 누적적으로 진화되어 '집단두뇌(공동체)'를 선택함으로써 '문화적 공진화'를 이루어낸 특별함 때문이란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오랜 기간에 걸친 다양한 실험적 연구(개, 여우, 인간 사람)를 걸쳐 호모 사피엔스만이 유일하게 가진 결정적 관문을 초강력 '인지능력(다정함)'이라고 결론을 내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적자생존'의 개념인 경쟁심과 공격성은 사실 많은 리스크를 감수하게 만들기 때문에 진화의 최종적 결론이 아니란 뜻이다.
다른 사람 종과 차별화된 생존 전략이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의 하나인 친화력(다정함)이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완전히 설득되었다.
손짓은 신기한 몸짓이다
사람은 생후 9개월쯤이면, 그러니까 걸음마나 말을 떼기도 전에 이미 손짓을 시작한다. 물론 태어난 직후에도 손짓을 하지만 이 동작이 의미를 띠기 시작하는 것은 9개월이 지나 서다. 어떤 다른 동물도 손짓을 하지 않는다. 손이 있는 동물이라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하면서 일생을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시작되는 관문이 바로 '손짓'이었다.
저자는 아동 마음이론의 권위자 '마이클 토마셀로'와 연구를 시작하면서 10년간 인간과 가장 가까운 종인 침팬지를 실험했다. 침팬지는 남의 마음을 추측하는 능력이 어느 정도 있었을 뿐만 아니라 남이 무엇을 아는지 알고 남이 무엇을 기억하는지 추측하며 그들의 목적과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고 심지어 거짓말도 눈치챘지만, 결정적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었다. 이는 협력적 의사소통(손가락으로 가리켜도 거듭 무시하며 짐작으로 골라잡음)이 힘들다는 이야기다.
우리와 유전자가 99% 유사하지만 침팬지는 똑똑하기는 해도 서로 행동을 맞추고 각기 다른 역할을 맡아 협력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전달하거나 물려줄 능력이 없으며, 심지어는 몇몇 기본적인 요구 이외에는 의사소통조차 할 수 없었다.
협력적 의도를 이해하는 일이 호모 사피엔스의 모든 능력이 발달하기 위한 기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들은 그 능력이 어떻게 진화되었는지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와중에 '개의 인지능력 연구' 즉 반려견의 능력이 오래된 고민을 풀게 해주었다고 한다.(개들은 손짓을 이해했다) 나는 이 부분을 읽을 때 개와 인간의 생존에 있어 아주 중요한 영역에서 중요한 부분을 발견한 연구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이되어 흥분되었다.
개와 사람 아기 모두 눈을 마주치고 다정한 목소리를 낼 때 더 주의를 집중하는 듯했다. 심지어 둘 다 목소리의 방향까지 이용할 줄 알았다. 사람 아기는 첫돌 무렵이면 목소리의 방향을 인식하고, 낱말이 특정물건과 행동을 가리킨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일부 개가 새로운 낱말이 주어졌을 때 시행착오 없이 바로 그 의미를 유추해 내는 이유일 수도 있다.
우리는 농경인이 새끼 늑대를 주워와 길들여 사랑스러운 개가 되었다고 흔히 믿고 진화작용 원리를 토대로 이해하지만 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고생해서 얻은 고기 상당 부분을 데려온 늑대와 나눠 먹었으리란 이야기 보다,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는 친화력 좋은 늑대가 사람이 버린 막대한 쓰레기와 똥(사람이 조리한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좋은 식사거리)을 먹는 청소부 늑대에게 인간이 관대해졌을 것이라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 즉, 늑대 스스로의 친화력(사회적 기술)이 사람과 새로운 방식으로 소통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개가 가축화되는 과정에서 개의 인지능력 진화를 유발한 어떤 일이 발생했을 거라는 가설을 세우고여우 개체군 실험으로 검증에 들어갔고 인간의 '자기 가축화'이론을 밝혀내기에 이른다.
인간의 자기 가축화 가설은 보노보와 개의 경우처럼 관용적일수록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얻는 보상이 커졌을 것으로 예측이 가능하고, 이 가설은 감정반응을 억제하고 관용을 베푸는 친화력 강한 선택압으로 작용할 때 큰 이익으로 보상된다는 계산에 이르게 되었다.
또한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자제력과 감정조절 능력이 결합되어 고유의 사회적 인지능력이 만들어 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인지능력의 누적적 진화가 '문화 공진화'개념까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자기 가축화는 친화력(다정함)이 핵심 키워드다. 자기 가축화는 우리 주변에 있는 개, 고양이, 닭, 염소 등 다양하지만 자기 가축화만을 보았을 때 인간만이 매우 성공적이었다. 연산능력이 더 좋은 큰 용량의 뇌를 가진 인간은 뇌가 커지면 신경세포의 수가 같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경우, 이미 큰 뇌를 지니고 문화를 발전시킨 '사람 종' 조상이 이 자연선택에 성공했다. 자기 가축화는 다른 동물 종들에게서도 일어났을 수 있지만, 자기 가축화 과정이 시작될 때부터 극도의 자제력을 지녔던 것은 우리 종뿐이었다. 자기 가축화 과정을 겪으며 감정반응을 더욱 억제함으로써 신중하게 판단하고 해동하는 우리의 능력이 한층 더 강화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친화력(다정함)이 강력한 선택압으로 작용할 정도의 큰 이익이 될 때 외모 변화뿐만 아니라 인지능력까지 진화시킨다는 점이다. 인간의 '자기 가축화'로 인한 신체적 특징이 있다는 점도 재미있었다. 늑대가 사람과 살게 되면서 털색이 바뀌고 치아가 바뀐 것처럼, 인간(호모 사피엔스)이 침팬지나 보노보와 다른 점은 바로 하얀 공막을 가진 유일한 종이란 점이었다. 연구진은 네안데르탈인을 비롯한 다른 사람 종들은 하얀 공막을 가지지 못했을 거라 추측했다.
인간만이 하얀 공막 덕분에 시선을 조금만 움직여도 무엇을 보는지 알아차릴 수 있게 진화되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눈 맞춤에 의존해 살아가고 협력적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눈이 마음의 창이라는 말이 따뜻한 이유는 사랑의 호르몬 옥시토신의 증가를 유발한다. 다정하게 느끼는 것이다.
침팬지와 보노보를 비롯한 모든 다른 영장류는 색소가 공막을 짙게 만들어 홍채와 뒤섞여 보인다. 이 경우 홍채와 공막의 색 대비가 낮아져 그들이 무엇을 보는지 또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아채기 어려워진다.
우리는 공막이 하얀 유일한 영장류다. 게다가 눈의 형태도 아몬드 모양이어서 공막이 더 눈에 띄는 까닭에 시선을 조금만 움직여도 무엇을 보는지 알아차릴 수 있게 되어 있다. 우리의 눈도 다른 종들처럼 위장형이었으나 어느 시점부터 광고형으로 바뀌었다.
목마른 여행길에서 시원한 생수를 들이켠 기분이 든 독서였다. 다만 인간의 진화에 있어 수많은 전쟁과 폭력에 대한 이유도 인간의 '자기 가축화'로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이 마음에 찌꺼기처럼 남는다. 자기 가축화의 토대 위에서 인간만이 가속화된 인지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인간은 자신과 같은 구성원들에게는 친화력을 보이지만, 외부인을 비인간화하는 능력도 겸비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누군가가 위협으로 느껴질 때 우리의 정신 신경망에서 제거할 능력도 발휘한다. 다정함, 협력,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던 우리 종 고유의 메커니즘이 닫히면 악행도 서슴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러한 사례는 대중매체 보도를 통해 하루에도 수십 번을 확인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와 같은 다른 사람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면(비인간화=동물) 폭력과 전쟁이 가능해진다. 인간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을 혐오하는 '쓰레기, 기생충, 오물덩어리' 등으로 표현될 때 위험한 행동이 동반되는 것이 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