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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지윤 Jun 17. 2022

사람은 타인에게 안전한 사람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강지윤박사의 치유칼럼] 사람은 타인에게 안전한 사람이 되어주어야합니다




상처의 근원지가 가정이라는 사실은 수없이 많은 매체에서 회자되어 왔습니다.

상처받고 학대하는 부모, 학대받고 자란 자녀가 또다시 학대자가 되는 현실이 비참하고 몹시 슬픈 현실입니다.

가정은 사회에 나가 살아갈 준비를 하는 곳이며, 사회구성원으로 건강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안전한 곳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린시절 가정에서 불안과 생존본능만을 배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인간관계나 연인, 친구, 부부 등의 관계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대처해야하는지 배우지못하고 어른이 되었습니다.


지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보호막이 되어 주어야할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여러 가지 불협화음 속에 이리저리 일그러지고 찢겨졌습니다.

가족이 서로에게 원치 않는 상처를 주고받는 동안에 가족 구성원들은 모두 불안에 떨게 되었습니다.

상처는 불안을 남기고 불안은 눈물을 응고시켜 무의식에 저장시킵니다.

이 불안 때문에 우리 모두는 서로를 불신하고 대인관계에서의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사랑이 아닌 집착을 하게 되고 병적 의존성을 보이게 됩니다.  


안전한 사람,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는 것일까요? 어떤 의미에서보면 인간은 늘 안전한 사람과 안전한 공간을 찾아 허둥대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 안전에 대한 욕구 때문에 사람들은 흔들림없이 견고한 그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나에게 호의를 보이는 사람에게 쉽게 끌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적어도 나에게 호의를 가지고 잘해주는 사람이라면 나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것이다, 라는 환상을 쉽게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찾게 됩니다. 내게 따뜻한 눈빛을 보내거나 친절을 베풀거나 아낌없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을.....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됩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안전한 공간이나 안전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곧 절망하게 됩니다.

  

“저는 늘 불안해요. 혼자 있을 때도 불안하지만 사람들 앞에서는 더 주눅들고 나보다 권위적인 사람 앞에서는 눈도 못 마주치고 두려워해요. 집에 가도 우리 아빠가 너무 무서워요.  언제 호통이 날아올까 늘 불안하고요. 직장에서도 상사가 나무라기라도 하면 사시나무 떨듯 떨어요. 이런 내가 너무 싫어요...... 혼자 있을 때 눈물도 많이 흘리지만 사람들에겐 화가 치밀어요..... 이 세상 어디에도 안전한 곳이 없는 것 같아요.”


마음의 불안을 덜어내려고 나를 찾아오신 분들은 하나같이 이런 내용의 말을 합니다. 그러면 나는 진심을 다해 이렇게 말해 줍니다.

“이곳 상담실은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예요. 오직 당신에게만 집중하여 당신의 말과 태도와 목소리와 당신 전부를 편견없이 온전히 용납하고 공감하는 곳이지요. 이 약속된 한 시간은 세상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당신만의 시간과 공간입니다.....!”

 

상담실에 발걸음을 한다는 것은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선택입니다.

큰 결심을 하고 찾아온 상담실에서조차 이런 안전한 경험을 하지 못한다면 인간관계에서의 안전과 공감을 경험해볼 길이 전무할지도 모릅니다.


세상에 태어나 단 한번이라도 가장 안전한 곳에서 이런 치유적 경험을 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래서 상담자의 첫 번째 윤리가 ‘철저한 비밀보장을 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상처와 고통의 이야기는 감추고 싶어하는 수치스러운 이야기라고 인식합니다. 그것을 털어내고 치유되는 공간은 가장 안전한 곳이어야만 합니다.

값비싼 댓가를 치르고서라도 상담실을 찾는 이유는 세상에 안전한 곳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안전이 보장된다면, 교사와 학생 간에 안전이 보장된다면, 목사와 교인 사이에 안전이 보장 된다면 그리고 그 밖의 모든 관계에서의 안전이 보장된다면 상처받는 사람도 없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상담실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안전하다는 것은 온전한 공감과 지금 그대로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것, 그리고 그 안에 사랑이 흐르는 것을 말합니다.  

안전하지 않은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아무리 사랑한다고 말해도 안전하지 않은 관계 안에서는 진실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사랑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화려한 보석과 꽃을 바치며 사랑한다고 말한다해도 말과 행동에 폭력이 난무한다면 그런 관계 속에서 사랑이 자리잡을 수 없습니다.


폭력이란, 상대가 원하지않는 행위를 계속 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헤어지자고 말한 옛연인을 계속 쫓아다니며 사랑해서 못떠난다고 하는 행위는 최악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그 혹은 그녀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입니다. 그가 혹은 그녀가 헤어지자고 하면 받아들이는 것이 훌륭한 태도입니다. 이별이 아무리 이해 안되고 슬퍼도 상대를 위해 견디고 쿨하게 떠나보내주는 것이 진정성 느껴지는 사랑이며 자신의 사랑에 대한 예의입니다.


그러다 세월이 많이 흐른 어느날, 그사람과 운명적으로 다시 만나 결혼한 커플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별을 고한 상대에게 매달리는 행위는 두사람 모두를 위협하고 안전한 느낌을 모두 앗아가는 최악의 모습이 됩니다.


사랑해서 붙잡는다고 하는 행위에, 상대는 스토킹 당하는 듯한 공포를 느끼게 되고 온갖 오해를 해서 공포를 키우게 됩니다. 그러니 지금 이별을 원하는 상대를, 눈물이 나더라도, 편히 놓아보내주세요. 그러면 당신에게 더 좋은 인연이 생기고 행복해질 것입니다.


안전이별이 걱정되어 남자를 못 사귀겠다고 하는 여성들을 많이 만납니다.

모든 이별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귀던 상대가 헤어지자고 한다고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서로의 가치관이나 성격이 맞지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쿨한 이별을 못하는 사람은 자존감이 낮고 불건강하며 안전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상대에게 공포감을 줍니다. 그 내면에서 분노가 품어져 나오기 때문입니다.


원가족 안에서 안전감을 경험한 사람은 결혼하여 새로운 가족체계를 만들어 나갈 때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늘 불안한 가정환경을 경험한 사람이 결혼해서 바로 안전한 환경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불안한지, 무엇이 불안한지, 부모님과 자신의 관계가 늘 안전하다고 느꼈는지, 그 안에서 사랑을 충분히 경험했는지 체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 오래도록 노출되어 있었다고 생각된다면 그것을 깊이 통찰하고 치유한 후에 결혼해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가정 안에서 배우자와 자녀에게 안전감을 선물로 줄 수 있습니다.  


깨어진 가정들은 모두 이런 안전이 보장되지 못한 가정들입니다. 부부는 한쪽만 노력하면 너무 힘겹습니다. 둘이 모두 자각하고 치유되고 불안으로부터 벗어나야합니다. 안전이 보장된 곳이 오직 천국뿐이라면, 우리 모두는 죽어서만이 안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분명히 천국은 완전한 안전감이 보장된 곳입니다! 그러나 불안하다고 모두 지금 당장 천국으로 갈 수는 없습니다.  

지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흉악하고 끔찍한 사건 사고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가정이 안전한 공간이 될 수 있다면 우리 모두는 안전감을 가지고 불안해하지 않으며 자신감있는 태도로 고난의 삶조차도 긍정적으로 살아낼 것입니다.


가정이 안전해지려면 가족 구성원들 모두가 상처를 치유받고 공감적 태도로 서로를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 자신이 먼저 불안을 벗어나 안전을 확보해야 우리의 자녀들에게 안전한 공간과 시간을 물려줄 수 있습니다.

안전한 곳이 세상 단 한 곳 정도는 있어야 긴장하지 않고 편안하게 쉴 수 있지 않을까요? 그 편안한 휴식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삶의 의지와 에너지를 충전하게 될 것입니다.   


나 자신부터, 모든 개인 개인이 모든 타인들에게 안전한 사람이 되어주어야합니다.

그래야 정상적인 관계가 형성되고 우리 모두는 안전하고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목회상담협회 감독 / 심리상담학 박사

*치유와 따뜻한 동행 www.kclat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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