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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케니 Sep 12. 2022

병원 냥이의 조건-1

나는 희남이로소이다 - 02


병원 냥이가 되려면 필수적인 요건들이 있다. 이러한 요건을 완벽하게 충족시킨 고양이만이 진정한 병원 냥이로서의 업무와 권한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곳 아프니까 동물병원에는 나를 포함하여 현재 3명의 고양이 직원이 있다. 나와 노랭이 그리고 얼룩이. 하지만 나를 제외하곤 아무도 필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해 반쪽짜리 병원 냥이에 지나지 않는다. 



우선 병원 냥이로서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요건은 바로 참을성이다. 무조건 참아야 한다. 제 아무리 인간이 실수로 눈을 찌르고 내 수염을 뽑으려 해도 절대 화를 내선 안된다. 화를 내는 순간 모든 비난은 나에게 향한다. 나는 공격받았을 뿐이고 자칫하다간 소중한 눈을 잃었을지도 모르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고 정당방위를 주장해봤자 소용없다. 이곳 집사들에게 나의 억울함은 통하지 않는다.  


지금은 함께하지 못하지만 예전에 이쁜이라는 직원이 있었다. 생긴 것 답게 성격이 순하지 않았던 이 녀석은 오래전 허리를 크게 다쳐 뒷다리를 못 쓰는 채로 이곳 아프니까 동물병원으로 오게 되었다.  


“하반신이 완전 마비되었네요. CT나 MRI를 찍고 수술을 하는 게 좋겠어요. 약물 치료를 시도해 볼 순 있지만 수술보단 회복 가능성이 낮아요.”  


“아무래도 비용이 부담돼서요. 수술 말고 약물로 치료하면서 이곳 아프니까 동물병원에서 이쁜이를 좀 맡아주실 수 없을까요?” 


평소 보호자와 친분이 있던 원장 집사는 이를 거절하지 못하였고 그 이후 이쁜이는 보호자를 다시 볼 수 없었다. 이렇게 아프니까 동물병원의 새 직원이 된 이쁜이는 원장 집사 때문에 자신의 보호자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는지 그 이후로 항상 심술궂은 표정으로 병원을 돌아다니며 사고 치기 일쑤였다. 다행히 병원 집사들의 정성 어린 치료로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으나 마음의 상처 때문인지 특히 원장 집사를 볼 때의 표정은 더욱 심술궂은 듯하였다. 


그러던 햇살 좋은 어느 날 결국 이 녀석이 사고를 치고 말았다. 병원 대기실 소파에서 햇볕을 받으며 식빵을 굽고 있는 이쁜이에게 한 어른 인간이 다가가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이야기했다.  


“서현아! 와서 이 고양이 좀 봐봐. 엄청 심술궂게 생겼어.” 


누가 봐도 무례한 상황이었지만 이쁜이는 군말 없이 그저 눈을 감은 채 식빵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서현이로 추정되는 작은 인간이 이쁜이에게 다가가 쪼그려 앉았고 앳된 목소리로 이쁜이의 이름을 부르며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 순간 감았던 눈을 번쩍 뜬 이쁜이는 번개 같은 스피드로 어린 인간의 이마에 왼손 펀치를 날렸다.  


“어머! 서현아! 괜찮아?”  


깜짝 놀란 어른 인간의 큰 소리에 일순간 병원은 정적에 빠졌고 주변 보호자들이 서현이에게 몰려들었다. 그러자 서현이는 울음을 터뜨렸고 때마침 진료실에서 상담 중이던 원장 집사도 나와 무슨 일인지 상황 설명을 듣고 어른 인간과 서현이에게 연거푸 사과를 해댔다. 그 일로 한동안 우리는 대기실 출입 금지의 형벌에 처해졌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예리한 눈썰미의 내가 판단컨대 분명 어린 인간은 아프지 않았다. 그저 약간 놀랐을 뿐이다. 하지만 어른 인간이 깜짝 놀라 지르는 소리와 낯선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괜찮냐고 호들갑 떠는 바람에 어린 인간이 더욱 놀라 운 것이 분명했다. 일이 마무리된 후 이쁜이와의 대화를 통해 아이를 해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는 것을 전해 들었다. 그 증거로 서현이의 얼굴엔 발톱 자국이 나지 않았다. 발바닥 도톰살로 경고만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어떤 경우에도 폭력은 용서받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으니. 그래서 병원 냥이에게 참을성은 매우 중요한 항목이다. (계속)


[사진 02-1: 이쁜이 심술궂은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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