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닥터케니 Nov 04. 2022

넌 나에게 두근거림을 주었어.

나는 희남이로소이다 - 05

늦은 저녁 수의 집사들과 간호 집사들의 퇴근을 앞둔 시간, 평소와 달리 대기실이 소란스러웠다.


"어머, 저거 뭐야? 너무 귀엽다!"

"우와, 저게 뭐예요? 만화 영화 캐릭터 같아요!"


수술실 앞에 놓인 책상 의자에 자리 잡고 앉아 명상을 하던 나는 시끄러운 소리에 미간을 찌푸렸다. 집사들의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고 아무리 손님이 없어도 그렇지, 이렇게 소란스럽게 직원들끼리 떠드는 건 아니지 않은가! 아프니까 동물병원의 최고참 직원으로서 한마디 해주려고 대기실로 이동하였다.


병원에 남은 네 명의 집사들은 하나같이 대기실의 커다란 유리창 앞에 쪼그려 앉아 그곳에 있는 작은 화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고로 꾸짖을 땐 눈높이를 맞추거나 상대방보다 더 높여야 하는 법, 유리창에 붙은 소파에 올라 집사들에게 엄하게 꾸짖으려는 순간! 내 눈앞에 그 녀석이 나타났다.




'넌... 도대체 뭐야?'


처음 그 녀석을 보았을 때 난 내 눈을 의심했다.

생전 처음 보는 생김새의 그 녀석은 얼마 전에 보았던 갓 태어난 강아지만큼 작았고, 그 작디작은 몸은 금빛 털로 빼곡하게 뒤덮여 있었다. 새까맣고 동그란 과 얇고 둥근 귀는 너무 작아서 도대체 보고 듣는 게 가능한가 싶은 수준이었다. 그런데 눈과 귀보다 더 작은 코는 쉴 새 없이 움찔거리며 유리창 너머 우리의 냄새를 맡으려는 듯 보였다. 아무리 보아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생물체로는 보이지 않았다. 저 녀석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냥 쥐라고 하기엔 너무 이쁘지 않아요? 집에서 탈출했나? 누가 버리고 간 건가?"

"설마 누가 동물 병원 앞이라고 쟤를 버리고 갔을까? 근데 햄스터인가? 기니피그인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집사들도 이 녀석의 정체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거 같았다.


"근데 이제 날이 추워서, 쟤 금방 얼어 죽는 거 아니에요? 밥은 먹었나?"


수의 집사가 이야기하자 간호 집사가 대답했다.


"그러게, 사료라도 좀 줄까? 근데 선생님, 쟤는 뭘 먹어요?"


간호 집사의 질문에 잠시 얼어붙은 수의 집사가 곧 대답했다.


"........ 몰라. 햄스터같이 생겼는데, 병원에 견과류는 없지? 우선 닭고기 캔이나 강아지 사료 같은 거 이것저것 줘볼까?"


수의 집사의 말에 간호 집사 둘이 처치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이것저것 잔뜩 챙겨 온 간호 집사들은 화단으로 나가 그 녀석 앞에 먹을 것을 늘어놓았다. 그곳엔 나의 열렬한 사랑 츄르도 놓여 있었다. 아... 맛있는 츄르... 그러자 그 녀석은 별 경계심 없이 다가가 작은 코를 움찔거리며 냄새를 맡는가 싶더니 다시 유리창으로 다가왔다. 감히 츄르를 거부하다니. 


한참을 넋 놓고 그 녀석을 보고 있던 중 한 간호 집사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어머, 희남이 꼬리털 세운 거 봐!"


간호 집사의 말을 듣고 난 뒤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서야 나는 깨달았다. 어느새 내 꼬리는 화단의 강아지풀 마냥 털이 쭈뼛하게 서 있었고 내 눈은 그 작은 녀석의 모든 움직임을 담기 위해 동그랗게 커져있었다. 


그곳에 있던 수의 집사와 간호 집사들은 조롱을 섞어 비웃으며 유리창이 없었어도 넌 쟤 못 잡았을 거라는 묘격 모독성 발언을 서슴지 않고 해댔다. 하지만 무지한 것들의 발언은 중요치 않았다. 그저 저 녀석이 너무 궁금했다. 아니 갖고 싶었다. 어떤 감촉인지 앞발로 쓰다듬고 싶고 어떤 냄새가 나는지 맡아보고 싶었다. 저 작은 몸을 구석구석 알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을 눈치챈 것인지 그 녀석은 갑자기 화단 모퉁이로 몸을 숨겼다.


'제길.. 유리창만 없었어도...'


그 이후 간호 집사는 이것저것 새로운 먹을 것을 갖다 주었으나 그 녀석은 이제는 관심이 없는 듯 먹을 것에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다 잠깐 한눈을 판 사이 그 녀석은 화단에서 사라졌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금빛의 털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며칠 뒤... 


인포 데스크에 올라앉아 여느 때와 같이 두 눈을 감고 명상을 하던 중이었다. 평소 기침이 심한 말티즈 콩이 보호자가 병원으로 들어와 진료 접수를 마친 뒤 인포 데스크에 기대 서서 원집사와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의도치 않게 그들의 대화를 엿듣던 중 그 녀석에 관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어젯밤에 요 앞에 산책할 때 보니까 쪼그만 노란 쥐 한 마리가 죽어있던데, 오늘 보니까 없어졌네요?"


"어머, 정말요? 며칠 전에 이 앞 화단에......."


그들이 대화는 이어졌지만 왜인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서 나는 자리를 옮겼다. 그렇게 그 녀석은 나에게 두근거림을 주고 떠났다. 


작가의 이전글 이 아이 보호소 출신인데, 혹시 몇 살인지 아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