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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랑 쿤데라 Jul 27. 2024

문해력은 욕망과 허영심에 가려지고

한 두어 해 전 유튜브 채널 <뇌부자들>의 영상에서 꽤나 인상 깊게 보았던 내용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알면 알수록 별로다’ 뭐 이런 말이었는데, 이 문장은 꽤나 상대적이므로 타당성을 논하기보다는, 저런 생각으로 살면 덜 괴롭겠구나 싶었다. 공감이 가기도 했고.


저 말을 딱 들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나를 제외한 타인들만을 별로인 대상의 후보군으로 여겼지, 생각이 내가 별로이기도 할 수도 있다는 쪽으로 가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꽤나 자존감 같은 게 높은 편인 것 같기도 하고, 요 근래 몇 년 동안 내 성격과 생활양식 자체가 좀  뭐 그런 쪽으로 흘러왔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꿈 따위 없던 생에 그나마 소소한 목표들이 생겨났고, 마냥 꽤나 해맑게만 살아가고 있던 요즘 문득문득 세상에 분명히 퍼져있는 고통들이 나를 톡 톡 건드려온다. 나의 고통은 아니다. 진정한 관심이란 무얼까? ‘사람은 피상적으로 꽤나 모순된 존재이다.’, ‘사람은 누구나 알면 알수록 별로다.’ 이런 문장들을 이제 나는 스스로를 통해 이해하게 된다. 편지를 꽤나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았다. 이제야 보이는 것. 그 편지는 아마 너의 마지막 인사였던 것 같다. 나는 전혀 몰랐다. 너는 나와 함께였던 그 시절에, 이젠 내가 주변의 많은 이들과 같은 공간 안에 머무를 때 그러하듯, 가볍지만 밀도 있는 절망을 느꼈을 것 같다. 수치스럽거나 후회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는 왜 내가 노력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세상에 진실한 관심이라는 게 있을까. 그럼에도, 너 이후로 내 관심을 끄는 대상은 아직 없다. 나는 나를 속이고 살아가고 있나. 건강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운가? 모르겠다. 돌아가고 싶나? 그렇진 않은 것 같다. 내가 이겨내지 못한 것은 아마도 인간의 한계 그 언저리에 있던 것이라고 믿고 싶고, 또한 내 무관심이다.


진짜 이상한 관계였다. 꽉 찬 허공 같은......

누군가가 가끔씩 나를 기억해 주기만을 바라는 일이 내게도 생길 줄이야.


이런 개똥 같은 글 쓰는 거 오랜만이고 꽤나 마음에 안 들기도 하는데, 개는 똥 안 싸면 아마 죽잖아......




청진(聽診)의 기억

 

 이은규

 


누가, 두 귀를 잘라 걸어 놓았을까


유리창 너머 금속성의 귀

노을을 흘리며 허공을 듣고 있는 것은 청진기였다

의료에 쓰이기보다 헤드셋에 가까운


당신을 듣기 위해 항상 열어두었던 내 귀

채집된 음을 기억의 서랍 속에 숨겨놓은 날이 길다

귀는 깊어 가장 슬픈 기관일 거라는 문장


말더듬이였던 당신

마음을 따라가지 못한 말들이 몸을 떠도는 거라는 소견이 있었다

함께 받은 처방은

구름의 운율에 따라 문장 읽기를 하라는 것

혹은 가슴에 귀를 대고 기다려주기


청진, 듣는 것으로 보다

모든 병은 마음이 몸에게 보내는 안부

말더듬이를 앓는 건 그가 아니라 마음이었으므로,

말에 지칠 때마다

당신은 구름이 잘 들리는 내 방 창문을 두드렸다

문장 읽기를 하다 당신의 가슴에 귀를 묻으면

금세 꿈꾸는 숨소리, 차라리 음악이었고


어느 의사가 병명을 알 수 없는 환자가 안타까워 체내의 음에 귀 기울인데서 시작되었다는 청진의 기억


이제 당신은 멀리 있고

청진할 수 있는 날이 다시 오지 않을 것이므로

내 두 귀는 고요한 서랍이다


그때의 구름만 내재율로 흐르는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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