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지 않습니다.)
올해는 집에서 혼자 노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달걀과 커피도 열심히 저어보고 어몽어스에서 정치도 배워봤다. 킹덤, 기묘한 이야기, 퀸스 갬빗을 섭렵하고 왓챠와 웨이브에도 서성거려보지만 이제는 영화를 보는 시간보다 고르는 시간이 더 길다.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살아가기란 정말 어렵다.
연말 약속을 취소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고 있는 책임감 있는 모범시민들을 위해 게임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한 편의 영화 같은 게임이니 늦은 밤 야식을 먹으며 넷플릭스를 보듯이 편하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을 되돌리는 칼(Carl) Last day of June은 타임루프 게임이다. 사고로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칼(Carl)은 아내의 죽음을 되돌리기 위해 과거를 바꾸려고 한다. 타임루프물은 주로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주인공 마코토나 ‘어바웃타임’의 주인공 팀처럼 시간을 돌리는 주체만이 과거의 행동을 바꿀 수 있다. 그런데 Last day of June은 특이하게도 칼이 아닌 마을 이웃들이 과거의 행동을 바꿀 수 있다. 칼이 사고가 일어났던 날로 시간을 되돌리면, 마을 이웃들은 새로운 하루를 보낼 수 있다. 플레이어는 마을 이웃들로 플레이를 하면서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이웃들의 행동은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이전과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나머지 이웃들의 행동에 따라 다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사고를 유발했던 행동이 다른 이웃의 도움으로 사고를 일으키지 않기도 하고, 사고를 막을 수 있는 행동이었음에도 다른 이웃에게 영향을 주어 사고를 일으키기도 한다. 마치 퍼즐을 맞추듯이 이리 끼우고 저리 끼워보며 사고를 막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인터페이스가 보이지 않아 영화의 한 장면같다. 주인공 한 명으로 플레이하는 것보다 복잡해 보이지만 난이도는 쉬운 편이다. 별도의 설명 없이 직관적으로 플레이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게임을 이해하기까지 헤맬 수는 있으나 일단 적응하고 나면 크게 골머리 앓는 부분은 없다. 게임머리가 다소 떨어지는 필자도 공략법을 찾아보지 않고 깰 수 있을 정도였다.
조작도 간단하다. 마을을 돌아다니고 사물과 상호작용하는 정도이기 때문에 정교한 컨트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게임을 진행하는데 흐름이 끊기지 않아 스토리에 몰입할 수 있다. 더불어 게임 화면에 인터페이스가 없고 엔딩이 한 가지뿐이기 때문에 마치 영화를 감상하는 기분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다.
그래픽도 게임을 감상하는데 한몫한다. 수채화로 그린 듯한 그래픽은 Last day of June의 매력이다. 특히 빛 표현이 뛰어난데, 창가로 드는 볕과 나뭇잎 사이로 내려오는 햇살, 호수에 비친 노을을 마주치면 게임을 하는 것도 잊은 채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된다. 가슴 시린 러브스토리에 따뜻한 그래픽이 더해져 더욱 감성을 자극한다.
개발자는 감정을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게임 난이도를 쉽게 만들고 그래픽에 많은 신경을 쓴 것은 이야기의 흐름을 깨지 않으며 플레이어의 감성을 한껏 끌어올리기 위함일 것이다. 난이도와 조작이 쉬워지면 게임플레이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 줄어들기는 하지만 스토리가 부족함을 대신 채워줄 수 있다. 게임플레이와 서사의 균형에는 정답이 없고, 플레이어가 많이 개입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해서 무조건 훌륭한 게임이 아니다. 스토리 중심적인 게임은 때로 재미가 없다며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지만, 민트초코가 맛이 없다고 해서 잘못된 음식이라고 할 수는 없듯이, 감정 전달을 위해 게임플레이의 비중을 줄였다고 해서 잘못 만들어졌다고 할 수는 없다. 단지 취향의 문제이다. 게임의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새로운 시도를 환영하는 편이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무게를 두고 만든 스토리에서도 호불호가 갈린다는 것이다. 엔딩을 보고 눈물을 흘릴 만큼 감동을 받은 사람이 있는 반면 진부하다는 의견도 더러 있다. 뛰어난 그래픽과 음악, 서정적인 연출 덕에 플레이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감성적으로 만들지만, 스토리 자체는 다른 타임루프물과 차별성이 없다. 심지어 짧은 플레이타임 안에 무리하게 마을 이웃들의 서사를 집어넣어 주인공의 감정에 온전히 몰입하기 어렵다. 게임플레이에서 오는 부족함을 스토리가 만족스럽게 메꾸어주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게임을 조작하고 풀어 나가는 것에서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라면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게임플레이보다는 스토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더 맞을 것이다. 절절한 러브스토리에 눈물을 흘려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할만하다. 단, 타임루프물을 많이 접해본 사람이라면 진부하다고 느낄 수 있으니 잘 알아보고 구매하기를 바란다. 감성적인 그래픽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나 영화를 감상하듯이 한 발짝 떨어져 차분히 게임을 즐기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영상의 비중이 크고 다소 늘어지지만 게임에서마저 스트레스받거나 애쓰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런 점이 오히려 장점일지도 모른다.
어떤 취향이든 일단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이 무심한 리뷰를 너무 신경 쓰지 말고 게임이 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플레이해보기를 권한다. 어쩌면 필자가 미처 보지 못한 매력을 발견하거나 감동을 받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