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삐삐 롱스타킹』 리뷰
어른이 되는 일은 그다지 달갑지 않다. 뛰어다니거나 기분대로 행동하면 안 되고 책임져야 할 일도 많다. 점잔 떨기란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이유가 귀찮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더 큰 이유는, 어릴 적 읽은 동화 속 어른들은 항상 못나보였기 때문이다.
"술을 왜 마시나요?"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서지"
"무엇이 부끄러우신데요?"
"술을 마신다는 것이 부끄러워서 그렇단다."
"그런데 아저씨는 왜 많은 별을 가지고 있나요?"
"별을 가지면 부자가 되니까.'
"그럼 부자가 되면 뭘 하죠?"
"누군가 다른 별을 발견하면 그것을 살 수도 있단다. 그럼 점점 더 부자가 되는 것이지."
그 순간 어린 왕자는 이 사람도 술꾼과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린 왕자』에는 온갖 위엄을 떠는 임금님, 허영심쟁이, 술꾼, 별을 세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줄 아는 사업가가 나온다. 어른들은 참 이상하다. 술을 마시고 별을 세면서도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른다. 그러면서 '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난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다'하고 되뇔 뿐이다.
또 어른들은 잘난 체를 하고 권위적이다. 비행사는 양이 장미를 먹어버릴까 봐 걱정하는 어린 왕자에게
“나는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있으니까 자꾸 말 시키지 마.”하고 거드름을 부린다. 뭣이 중헌지도 모르면서...
못난 어른들은 다른 동화에서도 등장한다.
사다리가 없어진 것을 보고는 완전히 어안이 벙벙해졌다. 처음에 경찰들은 밑에서 자기들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삐삐한테 불같이 화를 내며 얼른 사다리를 갖다 놓지 않으면 상상도 못할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될 거라고 엄포를 놓았다.
『삐삐 롱스타킹』에서 학교에 가지 않는 삐삐를 잡으러 온 경찰들은 포르투갈의 수도를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아주 무례하다. 자신을 약 올리는 삐삐에게 겁을 주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사실은 나도 삐삐의 행동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나도 이제 어른의 편이 되었다. 나 같은 어른들이 많았기 때문에 삐삐 롱스타킹은 출간에 어려움을 겪었다. 학교에 가지 않고, 어른들을 골려먹고, 거짓말을 많이 하는 삐삐가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는 신중하게 만들야겠지만, 어른의 입맛에 따라 검열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강하고 자유로우며 주변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삐삐는 어른들에게는 조금 귀찮을지 몰라도 나쁜 아이가 아니다.
어른들은 비행기를 고쳐서 사막을 탈출하는 일이나 별을 세는 일, 학교, 예의 같은 것에 온 신경이 곤두서 있다. 그러고는 자신들이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의 나는 어른이 되면 중요한걸 모조리 잊어버린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을 때마다 나는 절대 이런 어른이 되지 않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했다.(특히 허영심쟁이가 가장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눈을 깜빡 뜨고 보니 가장 되고 싶지 않았던 어른이 되어있다. 모든 걸 다 아는 척 글을 쓰기도 하고 남을 가르치려 들기도 한다. 글을 쓰거나 공부를 할 때는 가족들이 사과를 나눠먹을 때도 방에서 나가지 않는다. 아주 중요한 일이라도 하고 있는 것 마냥. 아주 못난 허영심쟁이 어른이 되었다.
‘자라면서 다른 중요한 일이 생겼기 때문이야’
‘어른에게는 어른의 사정이 있어’
스스로 변호해보기도 하지만, 어린 시절 되고 싶지 않았던 모습이 되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착잡하다.
매년 날이 따뜻해지면 아빠는 쑥을 캐러 가자고 한다. 매년 빠짐없이 하는 말이지만 쑥을 캔 적은 없다. 학교에 가거나 과제를 해야 하니까. 글을 써야 하니까. 일을 해야 하니까.
아주 어릴 적엔 같이 쑥을 캐러 가고는 했다. 그땐 주말마다 아빠와 금정산에 가기도 했다. 산을 오르기 전 솜사탕을 사 먹는 일은 일주일 중 가장 중요한 일과였다. 언니와 서로 색깔이 다른 솜사탕을 한 입씩 교환하는 일도 아주 중요했다. 그 솜사탕 맛을 잊은 채 내가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 쑥을 캐고 꽃을 구경하지 않는 봄이 어떻게 반가울 수 있을까. 취업에 성공하고 돈을 번다고 한들, 솜사탕을 사 먹는 중요한 일을 까먹는 사람은 행복할 수 없다. 삶이 뭔지도 모르는 바보니까.
그날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던 날이라, 토미는 왜 물을 주느냐고 삐삐한테 물었다.
"그거야 네 생각이지. 난 밤새도록 깨어있었어. 오늘 아침에 일어나 꽃들에게 물을 주면 얼마나 재미있을까를 생각하느라고 말이야. 그러니까 비가 조금 내린다고 해서 포기할 수 없어."
매 순간을 즐기고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태도는 당장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취준생인 내가 갖기에는 적절한 마음가짐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글쎄, 미룬다고 해서 이런 마음가짐이 적절한 순간이 올까.
오히려 비행기를 고치고 떨어져 가는 물을 고민하는 사이에 양이 장미를 먹어버릴지도 모른다. 어린 왕자는 아주 상처 받게 되겠지. 비행기를 고치는 틈틈이 양에게 씌울 굴레를 그리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올봄에는 아빠를 따라 쑥을 캐러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