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도시들

내가 지낸 도시들 속에서 울고 웃는 성장일기

by 맑은하늘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2개의 나라와 5개의 도시에 살았다. 그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곳은 태어나고 자란 나의 고향, 도시1이다.


도시1에서 나는 가족들의 사랑을 먹고 파릇파릇 자랐다. 도시의 집에는 나의 영웅들이 많았다. 할머니를 너무 사랑해서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따라 죽을 거라고 어린 꼬마는 노래 불렀다. 아무리 바빠도 저녁은 가족과 함께 드시는 자상한 아빠 옆에 앉아 저녁마다 신나게 재잘거렸다. 맛있는 거 만들어 달라, 또 놀러 나가자고 엄마한테는 떼도 많이 썼다. 항상 어린 막내들을 예뻐해 주던 언니들, 그리고 나의 단짝, 귀여운 내 동생, 또 다른 내편 친척들 모두 사진 속에서는 그 모습 그대로여서 미소가 지어진다. 햇빛 잘 들고 행복 넘치던 도시1에서의 유년시절 집아, 안녕!


어느 날 부모님께서 우리 시대에는 세계를 무대로 살아야 한다며 이민을 결정하셨다. 내편이 많던 도시1을 떠나 내편 하나 없는 다른 나라의 도시2로 이민 갔다. 도시2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세운 코리아타운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평생 한국말만 하고도 살 수 있는 곳이었다. 학교에서는 외국어를 썼지만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기니까 괜찮았다. 역시 집은 편안함을 선물하는 요새다.


도시2에서 한국어만 쓰자 부모님은 곧 한국인은 눈 씻고 찾아보려야 찾을 수 없는 도시3으로 이사하셨다. 이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검은 머리와 검은 눈을 가진 불편함을 느꼈다. 어릴수록 편견이 없어서 다행인 걸까? 시간이 지나며 불편한 횟수도 줄어들어 나도 그들 중 하나가 되어갔다.


이 집은 산 꼭대기에 있어서 동물 친구들이 자주 놀러 왔다. 딱따구리가 영장 옆 야자수를 쪼아 새벽부터 잠을 깨웠다. 밤늦게 집으로 차 타고 가면 이상야릇한 스컹크 방귀 냄새가 어서 오라고 반겨줬다. 우리 집 정원에 놀러 왔던 사슴 가족도, 늑대 가족도 모두 잘 지내니? 동화 같은 도시3 속 우리 집아, 보고 싶다.


어렸던 나는 외국생활하는 동안 생각보다 한국어를 빨리 잊어버렸다. 그래서 도시1로 강제 귀국했다. 한국은 학생들이 너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해서 싫었지만 어찌하랴. 그래도 그립던 친척들을 다시 만날 수 있어 좋았다.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새벽마다 따뜻한 밥을 해주시고 베란다에서 스쿨버스탈 때까지 지켜보며 손을 흔드시던 엄마가 생각난다. 아빠가 밤에는 교복을 다려주셨는데 아직도 아빠의 사랑으로 반짝이던 치마가 기억난다. 온실 안의 화초 같던 시절이다.


대학을 가며 나는 도시4로 떠났다. 부모님 하고는 멀리 떨어졌지만 언니들과 동생하고 같이 살아서 외로운 줄 몰랐다. 가족이 많아 어디 가도 같이 놀 사람이 있는 나는 행운아다. 우리는 기쁠 때는 축하하고 슬플 때는 위로하며 서로를 안전하게 지켜줬다. 이 집에서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원하는 회사에 취직도 하며 행복한 미래를 꿈꿨다.


회사를 다닌다는 것은 다시 내편이 없는 곳에 가는 것과 같다. 마침내 평생토록 나를 보호해 주던 온실을 벗어나 정원에 나아갔다. 때로는 폭풍 속에 넘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가뭄에 메마르기도 했다. 이 모든 시련을 견딜 수 있도록 온기를 나눠준 사람들 덕에 나는 강해져서 회사라는 정원에 뿌리를 내렸다.


20대의 마지막 해에 도시5가 고향인 남자를 만나 가정을 이뤘다. 나는 도시4에서, 남편은 도시5에서 지냈다. 둘째를 낳으며 엄마라는 책임감에 나의 자랑이었던 첫 직장을 관두고 도시5로 이사 왔다. 나의 새로운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에서 온전한 사랑을 나누며 매일 행복을 쌓아갔다. 아이들이 내 인생에 큰 기쁨이지만 나도 빛나고 싶었기에 나는 다시 새 직장을 구했다. 인생이 모두 계획대로 풀리는 것 같았다.


희망에 부풀었던 새 직장은 나에게 황무지와 같았다. 온실에서 정원으로, 정원에서 황무지로 삶의 배경이 바뀌다 보니 혼란스러웠다. 이곳에서 나는 여자이기에, 도시4에서 대학 나왔기에, 지금보다 더 좋은 직장에서 이직해 왔기에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이 주어졌다.


회사에서 내 꿈을 펼칠 수 없다는 좌절감에 나는 점점 시들어갔다. 답답한 미래에 대한 짜증이 아이들에게 전해지는 날들이 이어지자 마침내 나는 꿈의 날개를 스스로 꺾었다. 회사를 관두고 평생을 꿈꿔온 찬란할 미래를 갉아먹으며 혼자 있을 때면 슬픔 속에 살았다. 이때의 슬픔을 떠올리니 주인공들이 꼭 나 같아서 단숨에 읽어 내린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에 나오는 민준의 말이 떠오른다.




내가 이렇게 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그러니 받아들이기. 자책하지 말기. 슬퍼하지 말기. 당당해지기. 나는 몇 년째 이 말들을 중얼거리며 정신승리 중이랍니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134쪽




어둠 뒤에는 빛이 있는 법. 내가 슬픔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남편과 아이들은 언제나 내 주위를 환하게 밝혔다. 그 덕에 내가 스스로 끈 불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나만의 빛을 조금씩 찾아갔다. 내가 좀 쉬어도 괜찮고, 새로운 것을 시작해도 좋다고 응원해 주는 남편이 곁에 있어 다시 희망의 싹을 틔워보려 한다.


나의 10대는 빛났고, 20대는 찬란했으며, 30대는 세상이 만든 틀을 깨고 나를 찾느라 오래 방황했다. 나를 가두었던 성공가도를 스스로 벗어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쩌면 가진 것을 포기하는 것보다 나만의 인생길을 찾는 것은 더 힘들지도 모른다. 도시5가 나에게 새로운 인생을 열어준 기회의 집으로 받아들여지는 날을 그리며 나는 오늘도 앞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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