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공략집은 없다
[인생에서 배운 점]
1. 활발한 사람 뒤에는 어두운 점이 많다
2. 말을 아끼고, 험담은 하지 않는다
3. 인간관계는 하루아침에 잘못될 수 있다
4. 말할 때와 침묵할 때를 알아야 한다
5. 사람은 누구나 가면을 쓴다
6. 포기하면 편하지만 발전은 없다
7. 남들은 나에게 관심이 별로 없다
8. 아버지는 힘들어도 울지 않았다
9. 인생에 정답은 없다
살다 보면 '아, 이런 건 학교에서 안 가르쳐주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수학 시간에는 미분적분을 가르쳐도, 정작 '인간관계 미분법'은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게임을 초보자 모드로 플레이하며 직접 몸으로 부딪혀 가며 배워나간다. 마치 공략집 없이 RPG를 플레이하는 것처럼 말이다.
학창시절 우리 반에는 항상 웃고 있고 분위기를 살리는 친구가 있었다. 마치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처럼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그런 친구 말이다. 모두가 그를 부러워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집에서 혼자 있을 때면 깊은 우울감에 빠져있었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의 첫 번째 반전이다. 게임에서 가장 화려해 보이는 캐릭터가 실제로는 가장 낮은 방어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다. 웃음이 많은 사람일수록 그 웃음 뒤에 숨겨진 상처가 클 수 있다. 마치 광대가 무대에서는 웃음을 선사하지만, 분장을 지우고 나면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요즘 누군가가 "난 항상 행복해!"라고 말하면, "아, 그렇구나" 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진짜 괜찮나?'라는 생각을 한다. 물론 정말 행복한 사람도 있겠지만, 때로는 그 밝음이 어둠을 감추기 위한 방패막일 수도 있으니까.
"말은 화살과 같다. 한번 쏘면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속담이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화살보다 더 무서운 게 말이다. 화살은 몸만 찌르지만, 말은 영혼까지 찌르니까.
직장에서 한 번은 동료에 대한 불만을 다른 동료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그저 스트레스 해소용 수다였는데, 며칠 후 그 말이 당사자에게 전해졌다. 마치 전화기 게임처럼 내용은 완전히 왜곡되어서 말이다. 결과는? 어색한 분위기와 팀워크 붕괴. 그때 깨달았다. '아, 말이 이렇게 무서운 거구나.'
요즘은 SNS 시대라 더욱 조심스럽다.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조용히 방을 나가거나 화제를 돌린다. 험담은 마치 바이러스 같아서, 한 번 시작되면 계속 퍼져나가고 결국 모두를 병들게 만든다.
물론 때로는 답답함을 토로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일기를 쓰거나, 정말 믿을 만한 한 명의 친구에게만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항상 "이 말이 상대방에게 들려도 괜찮을까?"라고 자문해본다.
몇 년 전, 10년 넘게 친하게 지낸 친구와 사소한 일로 크게 다툰 적이 있다. 정말 사소한 일이었다. 약속 시간에 대한 의견 차이였는데, 서로 감정이 상해서 말이 거칠어졌다. 그 하루의 말다툼이 10년 우정을 깨뜨렸다.
인간관계는 마치 유리창 같다. 오랜 시간에 걸쳐 조심스럽게 만들어지지만, 한 순간의 실수로 산산조각날 수 있다. 그리고 깨진 유리창은 아무리 붙여도 금이 그대로 남는다.
이 경험 후로는 관계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 가족이든 친구든 연인이든, 절대로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관심을 표현하고, 갈등이 생기면 빨리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자존심보다는 관계를 우선시하는 법을 배웠다.
가끔 친구들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우리 우정 계약서라도 써야 하나?"라고 말한다. 물론 계약서로 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지만, 그만큼 소중히 여긴다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다.
회사에서 상사가 화가 났을 때, 부모님이 스트레스를 받고 계실 때, 친구가 실연으로 힘들어할 때... 이럴 때 "지금 내가 뭔가 말해야 할까, 말까?"라는 고민에 빠진다.
예전에는 "솔직함이 최고야!"라며 무조건 내 생각을 표현했다. 그 결과? 많은 관계에서 상처를 주고받았다. 솔직함도 좋지만, 타이밍이 잘못되면 독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
요즘은 '언어의 온도'를 재는 법을 배웠다. 상대방의 감정 상태, 상황의 심각성, 내 말이 미칠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때로는 말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배려가 될 수 있다는 걸 안다.
특히 SNS에서는 더욱 조심한다. 키보드 워리어가 되기 쉬운 환경에서, 한 번 더 생각하고 글을 쓴다. "이 글이 24시간 후에도 올릴 만한 가치가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SNS를 보면 모든 사람이 행복해 보인다. 맛있는 음식 사진, 여행 인증샷, 성취 자랑... 마치 모두가 완벽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건 각자가 선택한 가면일 뿐이다.
나 역시 가면을 쓴다. 직장에서는 '유능한 직장인' 가면을, 가족 앞에서는 '든든한 가장' 가면을, 친구들 앞에서는 '재미있는 친구' 가면을 쓴다. 때로는 하루에 여러 개의 가면을 갈아가며 쓴다.
처음에는 이런 내 모습이 가짜 같아서 불편했다. '진짜 나는 누구지?'라는 정체성의 혼란이 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가면도 나의 일부라는 것을. 상황에 맞게 적절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하나의 능력이라는 것을.
중요한 것은 가면에 얼굴이 붙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집에 혼자 있을 때만큼은 모든 가면을 벗고, 진짜 나와 마주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래야 가면이 나를 지배하지 않고, 내가 가면을 선택할 수 있다.
게임에서 보스를 못 깨면 어떻게 할까? 포기하고 다른 게임을 하거나, 계속 도전해서 결국 클리어하거나. 인생도 마찬가지다.
몇 년 전,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 몇 주는 재밌었지만, 점점 어려워지면서 포기하고 싶었다. '굳이 이걸 배워야 하나? 이미 내 삶도 바쁜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친구가 해준 말이 기억난다. "포기하는 순간, 너는 3주 전의 너로 돌아가. 하지만 계속하면, 3개월 후의 너는 지금과 완전히 달라질 거야." 그 말에 동기부여를 받아 계속했고, 지금은 그 언어로 간단한 대화가 가능하다.
포기는 달콤하다. 당장의 스트레스와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 달콤함은 중독성이 있다. 한 번 포기하면 다음번에도 포기하기 쉬워진다.
요즘은 '포기 vs 계속하기'의 기준을 세웠다. 1) 이것이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인가? 2) 지금의 어려움이 일시적인가? 3) 포기했을 때 후회할 것 같은가? 이 세 질문에 모두 '예스'라면 계속한다.
20대 초반에는 항상 남들의 시선을 의식했다. '내 옷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까?', '내가 한 말이 바보 같지 않을까?', '사람들이 내 실수를 기억하고 있을까?' 이런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깨달은 건,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에게 그렇게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모두가 자신의 삶으로 바쁘고, 자신의 걱정거리로 머리가 가득하다.
한 번은 프레젠테이션에서 크게 실수를 했다. 그 순간에는 '세상이 끝났다'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일주일 후, 동료들에게 슬쩍 물어보니 대부분 기억도 못 했다. 심지어 내가 실수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깨달음은 자유를 가져다줬다. 남들의 평가에 덜 민감해지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기본적인 예의와 배려는 필요하지만, 과도한 자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지금도 가끔 남의 시선이 신경 쓰일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지금 이 순간 나를 보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리고 그들이 내일도 이걸 기억할까?"라고 자문한다. 대부분 답은 '거의 없다'이다.
우리 아버지 세대는 '남자는 울면 안 된다'는 교육을 받고 자랐다. 힘들어도, 아파도, 슬퍼도 참는 것이 미덕이라고 배웠다. 아버지도 그랬다. 사업이 어려워도, 건강이 나빠져도, 절대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다.
어렸을 때는 그런 아버지가 강해 보였다. '우와, 우리 아빠는 정말 강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 강함 뒤에 얼마나 많은 아픔과 외로움이 숨어있었는지를.
몇 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처음으로 아버지가 우는 모습을 봤다. 그제야 아버지도 결국 사람이구나, 감정이 있는 평범한 인간이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들을 혼자 짊어지고 사셨을지 가슴이 아팠다.
요즘은 아버지와 대화할 때 감정적인 이야기도 나눈다. 물론 아직도 어색해하시지만, 조금씩 마음을 여시는 것 같다. 나 역시 아버지 세대의 '강함'을 배우면서도, 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법도 배우고 있다.
학교 다닐 때는 모든 문제에 정답이 있었다. 1+1=2이고, 수도는 서울이고, 광합성은 이산화탄소와 물로 이루어진다. 명확하고 확실했다.
하지만 인생에서는 다르다. '몇 살에 결혼해야 할까?',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까?', '아이는 언제 가져야 할까?' 이런 질문들에는 정답이 없다. 각자의 상황, 가치관, 우선순위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
예전에는 이게 답답했다. '정답'을 찾아서 인터넷을 뒤지고, 책을 읽고,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하지만 얻은 건 더 많은 혼란뿐이었다.
지금은 받아들였다. 정답이 없다는 게 정답이라는 것을. 대신 '내게 맞는 답'을 찾는 법을 배웠다. 시행착오를 통해,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며, 나만의 게임 공략법을 만들어가고 있다.
인생 공략집을 정리하고 보니, 인생이라는 게임의 진짜 재미를 알 것 같다. 정해진 스토리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내가 직접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거다. 때로는 실패하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반전을 만나고, 때로는 뜻밖의 보상을 얻는다.
완벽한 공략집은 없다. 각자가 자신만의 공략법을 찾아가야 한다.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고 계속 플레이하는 것이다. 게임오버는 없다. 계속하는 한 계속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
그리고 때로는 혼자서, 때로는 함께 플레이하며 이 긴 여행을 즐기는 것이다. 결국 인생이라는 게임의 최종 목표는 '승리'가 아니라 '즐거움'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