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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Sep 19. 2024

일요일에 떠나는 여행(11화)

일요일 하루만 하루종일 같이 있게 되었다.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는 나는 안전하게 혼자 있을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출근하면 퇴근할 때까지 일체 연락을 하지 않았고, 집에 볼 일이 있을 때에는 내가 원했던 대로 해주었다. 미리 문자를 했었다. 만약 내가 보지 않고 있으면 전화를 했었다. 어떤 볼일로 언제 집에 온다고, 지금 간다고, 어디쯤 와 있다고, 도착 시간까지 알려주었다. 나를 방해할 수 있는 요소들을 차단하고 나니 한결 나의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쉬웠다. 나의 감정들을 자극하지 않고 평온하게 보낼 수 있는 게 가장 중요했었다. 


그가 퇴근하고 나면 저녁을 먹을 동안에도 나는 별 이야기를 하지 않았었다. 주로 그가 먼저 말을 꺼내었다.

"뭐 했어요?"

예전의 나는 먼저 미주알고주알 혼자 신나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이야기 즉 대화 자체를 내가 먼저 기피하기 시작했었다. 간단하게 하나만 갖다 붙여서 뭐 했다, 그렇게 넘어갔다. 텔레비전을 켜놓은 상태로 있다가 슬그머니 일어나서는 안방으로 들어왔었다. 같이 생활했었던 안방이 나 혼자 쓰는 방으로 점차 변모해 갔었다. 문 하나 사이로 벽이 파도처럼 넘실대었다. 

문을 닫고 나 혼자 있는 시간들이 편했다. 몇 시간이 지루하지 않고 잘 흘러갔다. 씻고 편하게 잠을 잘 잤었다.


그런 나날들이 좋았다. 나를 위한 시간들이었고, 나를 위한 준비된 메뉴들이 만족스러웠었다. 음감을 느끼고, 가사를 음미하고, 궁금해했던 것들을 찾아보는 시간들이 나를 채워가고 있었다.


그러나 일요일은 좀 어려웠다. 함께 있는 시간들이 부담스러웠다. 부담스럽지 않고 편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이 되었다. 그가 아침이 되어가는 늦은 새벽에 마라톤을 하러 나갔다가 그곳에서 회원들과 아침 식사를 하고 집에 오면 거의 오전 9시 30분쯤이 된다. 잠깐 소파에 앉아서 쉬다가 늦게 씻는다. 한여름 비지땀이 흐르지 않는 한, 그는 바로 잘 씻지 않는다. 텔레비전을 켜놓고 소파에 네로황제처럼 한 다리를 세우고 몸을 비스듬히 기대어서 잠시 보다가 이내 스르륵 눈을 감고 잠을 자버린다. 깨우지 않는 한 그렇게 자고 일어나서 씻는다. 점심식사는 대개 외식을 했었다. 식사를 하고 들어오면 또 텔레비전 앞에서 시간을 때운다. 그러다가 저녁식사를 하고 또 텔레비전 앞에서 시간을 때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지 않을 때는 그가 경조사가 있을 때 모임의 체육행사가 있을 때 그런 날은 바깥에서 보낸다. 


나는 그런 일요일을 다르게 보내고 싶었다. 그는 일요일 아침 마라톤 하는 것을 좋아한다. 마라톤 후에 아침식사로 한식뷔페식당에서 회원들과 잡담하는 것을 즐긴다. 그런 즐거움을 굳이 빼앗고 싶지는 않았다. 그동안 이런저런 갈등이 있었고 조절도 해보았고 나의 불만을 그가 접수해 주어서 그런 날은 나가지 않고 그냥 집에서 무료하게 보내었다. 오히려 서로 퉁퉁 부어서 아주 지독한 미운 일요일로 흘러갔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정오 12시까지는 그가 원하는 시간대로 그가 원하는 것을 하도록 하고, 정오 12시 이후부터는 바깥에 나가서 재미있게 즐겁게 시간을 보내자고 제안을 했었다. 1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는 곳,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근교 도시로 가서 우리가 안 가 본 곳에 가서 시간을 보내자고 했었다. 그도 내 제안을 마음에 들어 했었다. 


일요일 오후의 시간. 나만의 반차를 준비하기 시작했었다.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을 생각해 보았다. 꽤 많았다. 1시간 정도의 운전 그리고 처음 가본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은 어떨까? 새로움이라는 게 설렘을 가져다주었다. 국화꽃 축제가 있는 수목원에 가서 산책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이 왔다. 날씨가 아주 좋았다. 기분이 좋아지는 일요일 아침이 반가웠다. 그도 상기된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와서는 재빨리 씻었다. 새빨간 가디건을 입은 나, 가죽재킷으로 멋짐을 뽐낸 그, 둘만의 공간을 향해 출발했다. 수목원 앞에는 가을 나들이 온 사람들로 붐볐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놀라웠다. 수목원은 경치가 아주 좋았다. 누구의 방해도 없이 호적한 공기 좋은 수목원을 걷는 그 길이 두 사람의 마음을 평화롭게 해 주었다. 호흡을 맞추면서 천천히 둘러보며 걷는 그 길이 사람의 마음을 반듯하게 잡아 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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