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울 엄마 그녀
3여 년 전 귀농하여 터를 잡은 우리 마당에는 두 개의 가마솥이 걸려있다. 봉화 읍내에서도 차로 30여분 들어와 인삼밭과 논둑 사잇길로 처음 방문객들을 맞을라치면 내비게이션 실제 주소와 들어오는 길목의 밭 주소를 안내해 주고 때에 따라서는 손수 마중을 나가야 한다. 논둑 밭둑을 지나 끝집 두 집 중 오르는 시멘트길 위로 차량이 오르는 순간 보이는 첫 집이 우리 집이다. 보이지 않는 보이는 집이라는 점과 가마솥에 반해 집을 본 이튿날 짠돌이 남편에게 무조건 사야 한다고 했던 것이 몇 해 전 10월이었다.
세 번째 10월을 맞고 있다. 그는 9월 명절 전 대구공항에서 방콕으로 방콕에서 인도에 머물다 다시 방콕으로 해서 들어올 예정으로 여행을 떠났다. 왜 인도냐 물었고 죽기 전에 가봐야 한다길래..라는 대답이 돌아왔지만 그를 이해하기로 나는 여행경비가 싸서라는 심오한 1차원적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작년 동남아시아를 사랑하는 그와 코타키나발루와 베트남 여행을 2주간 다녀왔기에 이번에 인도 가니 어떠냐는 무심한 질문에 베트남이 개미면 인도는 코끼리란다. 내 남편은 늘 나에게 어이없는 웃음을 준다.
그가 없는 동안 엄마와 나, 성공이, 루비 우리는 이렇게 단조롭고 평화를 유지하며 지내고 있다. 모든 사람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의 소모적 일과 인간관계에 대해 반추해 볼 시간이 필요했다. 9월 2주간의 게으름이라면 게으름이고 여유라면 여유이고 몸을 곧추세우기 위한 움츠림이었을지도 모르는 날들을 보냈다. 울 엄마는 새벽형 인간으로 어둠이 다 사라지기 전 몸을 움직인다. 8시가 되지 않아 눈을 떴다. 이미 큰 가마솥 하나 물이 펄펄 끓고 있었고 햇살이 따뜻해 마당 끝 수돗가에서 머리 감기 딱 좋은 날씨였다. 울 엄마는 딸네집에 사는 것이 늘 미안한 사람이라서. 그런 사람이다 울 엄마인 그녀는. 기름값이라도 아낄 요량으로 날이 밝기 전부터 몸을 놀려 물을 긷고 나무를 옮기는 속상할 틈 없는 씩씩한 그녀다.
그런 그녀와 다른 이유로 가마솥 시골살이의 낭만으로 그뜩한 가을 정취에 취해 양동이 한가득 떠 일흔여덟의 그녀가 두 손 굳게 양다리에 힘을 주어 뒤뚱뒤뚱 옮겨놓은 가마솥 물 한 바가지에 찬물 두 바가지를 섞어 고개를 거꾸로 처박는다. 나의 열 살 열한 살 열두 살 열세 살 열네 살 열다섯 살... 청주로 고등학교 입학 전까지 성실한 그녀는 학교 가는 날이면 어김없이 물을 떠다 주었다. 나는 안다. 최소 내가 존재한 그날부터 그녀에게 주어진 그녀의 삶이 나의 엄마로서의 삶으로 오롯이 치환되었다는 사실을. 인생을 한 겹으로만 이해하면 나는 과잉보호를 받고 자랐다. 그녀는 오늘도 딸을 위한 물을 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