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가 K의 인생에 미친 영향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이렇다.
“요리를 통해 나는 페미니스트(여성성)에 가장 가까워졌다.”
요리 행위는 K로 하여금 책으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여성성을 일깨워주었고 그것을 체득하게 해주었다.
오십여 년 인생에서 K가 가장 잘한 선택 두 가지를 꼽는다면 글쓰기와 요리이다. 이십대 중반에 시 쓰기로 시작된 K의 글쓰기는 여러 권의 책의 저자가 되게 해주었으며, 그를 정신적 영적으로 크게 성장시켜 주었다.
오십이 넘어서 시작한 K의 요리는 아내와의 관계뿐 아니라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누군가를 위해 조리하여 음식을 내놓는 것은 ‘생명을 주는’ 행위였다. 다른 생명체가 그러하듯이 인간 역시 먹지 않으면 죽는 존재다. 음식을 만들어 주는 건 존재를 살리는 행위다. 이때 몸만 살리는 것이 아니다. 관계도 살아난다. 반려동물들이 그러하듯이 인간도 자신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제공해준 이에게 고마움과 호감, 친밀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아내도 그렇고 아이들도 그렇다. 남자의 요리는 인생을 리부트하는 최적의 행위다.
K의 첫 요리는 딸과의 관계에서 시작되었다. 고교 졸업과 동시에 딸은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외롭고 힘겨운 학기를 보내고 겨울방학을 맞은 딸이 귀국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K는 낯선 이국에서 혼자만의 전투를 치르고 돌아온 딸을 위해 뭔가 해주고 싶다는 열망이 솟아올랐다.
무엇으로 딸을 맞이하면 좋을까? K는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돈을 살 수 있는 것은 딸에게 진정한 위로를 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가 최후에 선택하게 된 것은 딸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요리를 해주는 것이었다.
딸의 귀국 며칠 전부터 유튜브에서 음식들을 찾아보던 K는 ‘해물치즈떡볶이’로 메뉴를 정했다. 딸이 도착한 다음 날 아침에 K는 조개와 홍합, 오징어에 꽃게까지 듬뿍 넣은 떡볶이로 딸을 기쁘고 행복하게 해줄 수 있었다.
딸을 위한 K의 요리는 몇 번 더 이어졌다가 토마토스파게티와 김치계란덮밥에서 멈췄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벤트성 요리에 불과했다.
한국 사회의 남자들은 가부장적 문화의 영향력 아래 살아왔다. 가부장의 공기를 자기도 모른 채 마시며 살아온 것이다. 가부장 문화에서 가장 강력한 것은 “살림은 여자가 하는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부부의 맞벌이가 보편화되면서 청소와 빨래, 설거지 정도는 남자가 맡는 것으로 조금씩 변화돼왔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유리벽이 하나 남아 있다. 그것은 “요리는 여자의 몫이다”라는 것이다. K 역시 오십에 이르기까지 그 유리벽에 갇혀 지내왔다.
K로 하여금 오십에 유리벽을 깨게 해준 것은 다름 아닌 그의 아들이었다. 대학을 다니던 아들이 어느 날 뜬금없이 요리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맛있는 요리를 뚝딱뚝딱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아들이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으며 K에게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왜 이렇게 맛있지? 뭐야?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였어!’
설거지와 빨래, 청소를 수십 년간 해온 K는 자신도 못할 리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 확신은 여지없이 들어맞았다.
오십에 K의 인생은 조용하고도 획기적으로 변했다. 가족과의 관계가 이전보다 훨씬 더 친밀하고 따뜻해졌다. 호주에서 결혼한 딸이 사위와 함께 들어왔을 때 K가 차린 된장찌개와 만두전골로 융숭한 대접을 해줄 수 있었다. K는 딸과 사위에게 설거지도 시키지 않았다. 사위는 장인에게 ‘엄마’ 같은 느낌을 받고 큰 기쁨을 느낀 듯했다. 그런 남편을 보는 딸 역시 행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덧 K의 아들도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이제 그의 꿈은 며느리에게 ‘친정엄마 같은’ 시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요리에 입문하지 않았다면 결코 꿀 수 없었던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