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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병일 Aug 21. 2024

25. 국물떡볶이, 토요일 그녀들의 습격

 

        

  K가 카페에서 느긋하게 책을 읽고 있던 토요일 오후였다. 아내로부터 느닷없는 카톡이 날아왔다. 전날 절친한 지인들과 1박 2일 여행을 떠났던 아내가 여행지에서 출발했다는 연락을 받고 1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국물떡볶이 넉넉히 일찍 해놓으시지? 우리 30분 후에 집에 갈 건데.

  이게 무슨 말이지 하는데 다시 톡이 하나 더 왔다.

  -떡볶이 지금 해야 하는디? 손병일 떡볶이 먹고 간다고ㅎㅎ

  K가 카페에 있다고 답신을 보내자 ‘어서 준비해’라는 아내의 명령이 떨어졌다.

  -옴마~ 알겄슈.

  K는 서둘러 자전거를 타고 시장으로 가서 떡집에서 떡국떡부터 만 원어치 샀다. 양배추도 큰 걸 사서 집에 돌아가 국물떡볶이 만들 준비를 했다. 양파를 까서 썰어놓고 파를 다듬어 큼지막하게 썰어 놓았다. 어묵을 뜨거운 물에 담가놓고 양배추를 썰어서 굵은 소금 뿌린 물에 담가 놓았을 때 아내와 세 친구들이 쳐들어왔다.     

  아내의 친구들이 쳐들어오게 된 연유는 이러했다. K의 집 근처에 다다랐을 때 운전하던 조 집사님이 화장실에 가야 할 상황이 되었다고 했다. K의 아내가 “남편이 국물떡볶이 준비해 놓는다고 했는데”라고 하자 “그럼 그걸 먹고 가야 되지 않겠느냐”, “어떻게 그냥 가냐”며 한마음이 된 것이었다.

  K가 음식 재료를 준비하는 걸 본 남 권사님이 남편에게 보여주고 싶다며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물었다. K는 양배추 씻는 동작을 다시 취하며 마음껏 찍으라고 했다.


  이번에도 L 요리연구가의 국물떡볶이 레시피였다. 5인분을 준비해야 했기에 양을 좀 늘여 웍에 물 2리터를 부었다. 간장 4술, 고춧가루 4술, 설탕 4술, 물엿 2술, 마늘 2술을 넣고 센 불을 올렸다.

  양념국이 끓는 동안 기름기를 뺀 어묵을 삼각형으로 자르고 양배추를 씻어 놓은 뒤 넓적 당면도 준비해 놓았다. 국이 끓었을 때 양파와 파, 양배추를 넣고 어묵을 넣고 더 끓였다. 한 번 더 끓었을 때 떡국떡을 넣고 멸치가루와 새우가루를 퍼부었다.


  완성된 국물떡볶이를 내놓기 위해 K가 거실의 탁자 겸 상을 헹주로 닦을 때였다. 남 권사님이 이 장면도 남편에게 보여줘야 한다며 다시 사진을 찍으셨다. 내심 이러다 남편 김 장로님께 미움받게 될까 봐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다.

  여자 넷, 남자 하나가 둘러앉아 국물떡볶이를 먹으며 즐거운 수다를 나눴다. K의 아내는 모임에서 많은 걸 결정하고 온 듯했다. 올해까지 교직생활 32년을 채우고 명예퇴직하는 것, 내년에 이사를 하는 것, 이사할 지역의 아파트까지 정했다고 한다. 세 절친들이 아내 곁에 있다는 게 K는 너무도 든든한 지지대처럼 느껴졌다. 네 바퀴의 한 축처럼 서로를 떠받치고 감싸며 웃음과 행복을 나누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K에게 아내의 소중한 벗들을 정성껏 만든 음식으로 대접하는 일은 그리 특별할 것은 없으나 소소하면서 확실한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일이었다.


  세 분이 떠나시며 떡볶이 너무 맛있었다고 했을 때 K는 자기도 모르게 이런 멘트를 날리고 있었다.

  “아유, 감사해요. 다음엔 더 맛있는 메뉴를 준비해 놓을게요.”     

  그날 저녁 남편 장로님이 보내셨다는 카톡을 남 권사님이 보내 주셨다.

  -아, 맛있겠다. 손집사님의 손맛과 정성이 담긴 떡볶이. 저도 언젠가는 손수 만든 것으로 대접할 일이 있을 겁니다.

  K는 김 장로님께 미움을 받게 되진 않은 듯하여 안심이 되었다.

  K에게 요리가 매력적인 건 레시피대로 만들기만 하면 확실한 맛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설거지가 좋은 건 아무리 더럽혀진 그릇이라도 주방세제로 박박 닦기만 하면 거짓말처럼 깨끗해진다는 것이었다. 갈수록 불확실성이 커지는 세상에서 확실하게 맛있는 결과물이 나오고 확실하게 깨끗해지는 것이 있다는 게 K는 ‘참 좋았다.’     


  떡볶이를 먹으며 K는 네 분의 여성과 ‘남자의 요리가 가족을 행복하게 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었다. 1)아내가 행복해져서 부부 관계가 좋아진다. 2)자녀에게 맛있는 행복을 안겨 주어 인기 있는 아버지가 되게 해준다. 3)사위나 며느리에게도 맛있는 행복을 전해 줄 수 있으므로 점수를 따게 된다. 등등.

  얼마 전부터 호주의 사위가 요리를 하여 딸을 기쁘게 해주고 있다는 소식이 K에게 들려왔다. 전날은 사위가 장모님 오시기 전에 몇몇 요리를 시도해 보려 한다며 <호텔 레스토랑 연어 스테이크>를 만들었다는 카톡이 올라왔다. 그러면서 사위가 <요리하는 일의 좋은 점>에 대한 글을 이렇게 올렸다.

  -이 요리를 나도 할 수 있다는 성취감 + 이 요리를 먹고 행복해 할 아내를 생각하며 오는 행복감 + 이 요리 재료를 같이 장보면서 대화하는 부부의 친밀감 + 외식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경제적이 면까지 참 좋은 점이 많다고 생각해요.     

  요리는 호주에 있는 사위와 장인을 이토록 긴밀하게 연결해 주고 있었다. K는 이런 사위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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