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가 카페에서 느긋하게 책을 읽고 있던 토요일 오후였다. 아내로부터 느닷없는 카톡이 날아왔다. 전날 절친한 지인들과 1박 2일 여행을 떠났던 아내가 여행지에서 출발했다는 연락을 받고 1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국물떡볶이 넉넉히 일찍 해놓으시지? 우리 30분 후에 집에 갈 건데.
이게 무슨 말이지 하는데 다시 톡이 하나 더 왔다.
-떡볶이 지금 해야 하는디? 손병일 떡볶이 먹고 간다고ㅎㅎ
K가 카페에 있다고 답신을 보내자 ‘어서 준비해’라는 아내의 명령이 떨어졌다.
-옴마~ 알겄슈.
K는 서둘러 자전거를 타고 시장으로 가서 떡집에서 떡국떡부터 만 원어치 샀다. 양배추도 큰 걸 사서 집에 돌아가 국물떡볶이 만들 준비를 했다. 양파를 까서 썰어놓고 파를 다듬어 큼지막하게 썰어 놓았다. 어묵을 뜨거운 물에 담가놓고 양배추를 썰어서 굵은 소금 뿌린 물에 담가 놓았을 때 아내와 세 친구들이 쳐들어왔다.
아내의 친구들이 쳐들어오게 된 연유는 이러했다. K의 집 근처에 다다랐을 때 운전하던 조 집사님이 화장실에 가야 할 상황이 되었다고 했다. K의 아내가 “남편이 국물떡볶이 준비해 놓는다고 했는데”라고 하자 “그럼 그걸 먹고 가야 되지 않겠느냐”, “어떻게 그냥 가냐”며 한마음이 된 것이었다.
K가 음식 재료를 준비하는 걸 본 남 권사님이 남편에게 보여주고 싶다며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물었다. K는 양배추 씻는 동작을 다시 취하며 마음껏 찍으라고 했다.
이번에도 L 요리연구가의 국물떡볶이 레시피였다. 5인분을 준비해야 했기에 양을 좀 늘여 웍에 물 2리터를 부었다. 간장 4술, 고춧가루 4술, 설탕 4술, 물엿 2술, 마늘 2술을 넣고 센 불을 올렸다.
양념국이 끓는 동안 기름기를 뺀 어묵을 삼각형으로 자르고 양배추를 씻어 놓은 뒤 넓적 당면도 준비해 놓았다. 국이 끓었을 때 양파와 파, 양배추를 넣고 어묵을 넣고 더 끓였다. 한 번 더 끓었을 때 떡국떡을 넣고 멸치가루와 새우가루를 퍼부었다.
완성된 국물떡볶이를 내놓기 위해 K가 거실의 탁자 겸 상을 헹주로 닦을 때였다. 남 권사님이 이 장면도 남편에게 보여줘야 한다며 다시 사진을 찍으셨다. 내심 이러다 남편 김 장로님께 미움받게 될까 봐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다.
여자 넷, 남자 하나가 둘러앉아 국물떡볶이를 먹으며 즐거운 수다를 나눴다. K의 아내는 모임에서 많은 걸 결정하고 온 듯했다. 올해까지 교직생활 32년을 채우고 명예퇴직하는 것, 내년에 이사를 하는 것, 이사할 지역의 아파트까지 정했다고 한다. 세 절친들이 아내 곁에 있다는 게 K는 너무도 든든한 지지대처럼 느껴졌다. 네 바퀴의 한 축처럼 서로를 떠받치고 감싸며 웃음과 행복을 나누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K에게 아내의 소중한 벗들을 정성껏 만든 음식으로 대접하는 일은 그리 특별할 것은 없으나 소소하면서 확실한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일이었다.
세 분이 떠나시며 떡볶이 너무 맛있었다고 했을 때 K는 자기도 모르게 이런 멘트를 날리고 있었다.
“아유, 감사해요. 다음엔 더 맛있는 메뉴를 준비해 놓을게요.”
그날 저녁 남편 장로님이 보내셨다는 카톡을 남 권사님이 보내 주셨다.
-아, 맛있겠다. 손집사님의 손맛과 정성이 담긴 떡볶이. 저도 언젠가는 손수 만든 것으로 대접할 일이 있을 겁니다.
K는 김 장로님께 미움을 받게 되진 않은 듯하여 안심이 되었다.
K에게 요리가 매력적인 건 레시피대로 만들기만 하면 확실한 맛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설거지가 좋은 건 아무리 더럽혀진 그릇이라도 주방세제로 박박 닦기만 하면 거짓말처럼 깨끗해진다는 것이었다. 갈수록 불확실성이 커지는 세상에서 확실하게 맛있는 결과물이 나오고 확실하게 깨끗해지는 것이 있다는 게 K는 ‘참 좋았다.’
떡볶이를 먹으며 K는 네 분의 여성과 ‘남자의 요리가 가족을 행복하게 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었다. 1)아내가 행복해져서 부부 관계가 좋아진다. 2)자녀에게 맛있는 행복을 안겨 주어 인기 있는 아버지가 되게 해준다. 3)사위나 며느리에게도 맛있는 행복을 전해 줄 수 있으므로 점수를 따게 된다. 등등.
얼마 전부터 호주의 사위가 요리를 하여 딸을 기쁘게 해주고 있다는 소식이 K에게 들려왔다. 전날은 사위가 장모님 오시기 전에 몇몇 요리를 시도해 보려 한다며 <호텔 레스토랑 연어 스테이크>를 만들었다는 카톡이 올라왔다. 그러면서 사위가 <요리하는 일의 좋은 점>에 대한 글을 이렇게 올렸다.
-이 요리를 나도 할 수 있다는 성취감 + 이 요리를 먹고 행복해 할 아내를 생각하며 오는 행복감 + 이 요리 재료를 같이 장보면서 대화하는 부부의 친밀감 + 외식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경제적이 면까지 참 좋은 점이 많다고 생각해요.
요리는 호주에 있는 사위와 장인을 이토록 긴밀하게 연결해 주고 있었다. K는 이런 사위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