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이상한 촉
해가 지도록 놀이터 지킴이를 담당하는 아줌마, 아저씨가 있다.
아줌마의 남편은 늘 늦는다. 아이 둘은 마지막까지 놀이터 죽돌이들이다.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고, 오는 아이들 가는 아이들을 다 만나고, 아줌마의 주요 일과는 다양한 동네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 안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정도로 친분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나도 처음에 그녀의 레이더에 들어왔다. 하지만 유독 친근하고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사람에게는 이상하게 낯설음이 생기는 나인지라 그녀가 몇번이나 커피를 마시자고 하는 요청을 거절하고 나서야 나는 그녀의 순번에서 한참 밀려났다는 것을 깨달았고, 한편으로 안도했다. 엄마들과의 만남은 아이가 크면 클수록 더욱 어렵다.
그렇게 몇 년여를 알고 지낸 그녀.
그녀 곁에 어느날부터인가 어떤 아저씨가 항상 붙어앉아 이야기를 한다. 아저씨의 아내는 사업을 한다. 새벽 3시는 되야 들어와서 겨우 잠이 들고 오전 내 잠든 아내를 대신해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사업하는 아내가 일터로 나가면 아이들을 전담하여 케어한다.
나도 그를 몇번이나 보았다. 하지만 아이 엄마들과도 친해지기 어려운 나는 아이 아빠란 그저 보고도 못본 사람, 어쩌나 눈이 마주치면 가벼운 목례정도 하면 많이 친해진 정도로 지나치는 사이였다.
아줌마와 아저씨는 오후 3시부터 놀이터 한켠에 자리잡고 앉아 해가 지도록 이야기한다. 아이들이 한번씩 부르면 자리를 뜨지만, 다시 돌아와 이내 했던 이야기를 붙잡고 계속해 하곤 한다.
나도 그 중에 끼어앉아있던 적이 있었는데, 둘 사이의 이야기를 파고들 틈 없어 그냥 듣고도 못 듣는 척 나의 아이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엉덩이만 벤치에 붙이고 앉아있었다.
그녀는 가끔씩 내게도 말을 걸고 물어보지만 빈 껍데기일 뿐이란 것이 느껴졌다. 유달리 친절하고 고운 그녀의 말투는 아저씨와 이야기할 때면 더욱 톤이 높아지고 칭찬이 늘어났다. 그들은 모르는 것 같다. 이야기를 이어가며 감정이 쌓인다는 것을. 아마 알고도 이미 그럴수밖에 없는 상태에 이르렀는지도.
그러던 어느날, 그들은 운동을 같이 시작했다고 한다.
각자의 배우자가 바빠 주말에도 공동육아를 하며 아저씨의 집을 드나들며 반찬도 같이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다는 것을 그녀의 딸을 통해 알게 되었다.
어느날은 그녀의 톤이 하이텐션이 되어 내게 나무라듯 이야기를 했다. 그녀의 그런 모습은 처음이라 놀라우면서도 내게 속으로 저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니, 솔직한 면이 있었네? 하고 생각했으나 이내 그것은 그녀의 술기운이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운동을 하고 막걸리를 마셨다고 한다.
물론 둘이서만 한건 아니다. 동네 아줌마 몇몇을 모아 운동을 같이 시작했다고 하나 글쎄.
물론 나의 생각이 너무나 불순한 시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낮에 각자의 배우자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 그 순간, 이성이 낀 모임에서 운동을 하고 술까지 먹고 그리고 그날 그 집에 가서 저녁 뒷풀이까지 했다는데 - 나는 그 수순이 흡사 이혼변호사 웹툰에서 보던 그 뻔한 패턴이 아닌가 싶어, 나까지 그 안에 혹시 끼어있게되면 언젠간 책임을 묻게 될 일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 슬슬 겁이 났다.
나에게도 운동을 같이 하지 않겠냐고 권유한 그들에게 나는 하지 않겠다고 하자 그럴줄 알았다는 듯 찬바람을 풍기며 돌아선 그녀의 모습. 불안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