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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슬 Feb 26. 2021

동피랑에서

- 바닷마을 이야기

- 동피랑의 모습



 여행을 다니다보면 그 곳만의 특유한 느낌이 있다. 그래서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 통영의 강구안은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고 길 건너 중앙 시장은 파닥거리는 활어들로 인해 분주하고 활기차다. 


중앙 시장 옆 골목길을 올라가다보면 ‘동피랑마을’이 있다. 동피랑하고 부르면 왠지 푸른 휘파람 소리가 나는 것 같다. 원래 동피랑은 동쪽에 있는 벼랑을 뜻하는 통영의 방언이라고 한다. 방언조차도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곳이다.     


 동피랑에 올라서니 소담스런 은방울꽃이 반긴다. 담벼락에는 푸근한 인상을 가진 가족들의 그림과 소녀가 동피랑마을을 짊어지고 어디론가 가고 있는 벽화가 있다. 길 위에는 ‘마음이 바르게 서면 세상이 다 보인다’라는 소설가 박경리의 ‘마음’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 쓰여 있다. 길을 따라 가면 천사의 날개가 그려져 있고, 길 건너에는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가 적혀 있다.


 발길을 돌려 마을로 들어서면 골목의 굽이굽이마다 담벼락에 아기자기한 벽화가 있다. 가장 인상적인 벽화는 ‘어미가 품에 안은 내 사랑 동피랑’이란 글귀와 함께 어머니가 온화한 표정으로 강구안과 동피랑을 안고 있는 것이었다.


 담벼락에 그려진 형형색색의 벽화를 보다보니 담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진을 찍기에 바쁜 관광객들 때문에 하루 종일 문을 닫고 사는 이들은 얼마나 갑갑할까. 그들의 집은 어릴 적 우리가 살던 모습이었다. 낮은 담과 낮은 창문, 마당을 들어서면 대청마루가 보였다. 하지만 더운 날씨에도 방문과 창문은 닫혀 있었다. 마당에 널려진 옷가지들만이 주민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동피랑은 예쁜 이름과는 달리 낙후된 마을이라 철거의 위기까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민단체가 공공미술을 통한 마을 살리기 사업을 하여 마을의 낡은 담벼락에 벽화를 그렸기에 문화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한 곳이라고 한다. 비탈진 언덕길마다 그려진 벽화를 구경하다 보니 할머니 바리스타가 운영하는 작은 카페가 보였다. 카페 안에는 두 개의 작은 탁자가 놓여있었고, 밖으로 나가니 난간에 야외탁자가 있었다. 강구안이 보이는 야외탁자에 앉아 시원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푸른 하늘과 바다, 신선한 바람이 잠시의 휴식을 주었다. 구멍가게, 기념품점도 있어서 쉬엄쉬엄 힘들지 않게 누각이 있는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마을 꼭대기에서 내려다 본 통영항은 눈부시게 푸른 하늘과 바다가 어우러져 ‘동양의 나폴리’라 불릴만했다. 바다의 잔잔한 물결에 정박해있던 어선들이 너울거렸다. 맑고 푸른 바다를 품은 강구안은 엄마의 품속처럼 편안했다. 일찍 올라 온 관광객들은 누각에 앉아 쉬거나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동포루라 불리는 누각 앞에는 젊은 남자 두 명이 통키타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란 노래를 불렀는데, 때마침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노래의 감흥을 더했다. 


 언덕을 내려오며 찬찬히 보니 손대면 부서질 것 같은 낡은 창살, 담 위의 녹슨 철조망까지도 옛 모습 그대로였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동피랑의 시간은 멈춘 듯 했다. 뜻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없었다면 동피랑 마을은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외국 작가들, 미술전공 학생들, 복지관 직원들과 장애우들 등 다양한 이들이 공감하고 소통하여 벽화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동피랑을 찾는 이들은 벽화를 그린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지기에 위안을 받고, 이 곳을 추억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마음이 있기에 동피랑은 우리에게 와서 꽃이 된 건 아닐까. 

  동피랑을 내려오면서 김춘수 시인의 ‘꽃’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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