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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슬 Feb 26. 2021

단비 같은 사람

- 비처럼 찾아오다.




후드득 후드득.


 며칠 동안 애타게 기다리던 비가 온다. 검은 구름이 낮게 깔리더니 한두 방울로 시작된 비는 채소밭을 적실 정도로 밤새 내렸다. 


 아침 일찍 밭에 가보니 푸성귀에 맺힌 이슬이 빛나는 구슬 같다. 밭의 한쪽에 지주대를 세워 재배한 빠알간 방울토마토가 조롱조롱 매달려 있다. 조그만 열매가 어찌나 탐스러운지 윤이 난다. 토마토를 하나 따서 입에 넣으니 싱싱하게 톡 터지며 단맛이 난다. 


 어제 내린 비를 감사하면서 밭농사 지어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사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은 하였지만 시간과 여건이 갖춰지지 않아 할 수 없었다. 아들 둘을 대학에 보내고 나니 시간 여유가 생겨 소일거리가 필요했다. 나의 마음을 아는 선배가 자신이 사용하던 밭을 일 년간 비워둘 생각이니 채소를 심어보라고 권했다. 

정작 시작하려고 하니 직접 재배해 본 적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밭을 빌려준 선배에게 하나씩 물어가며 텃밭 가꾸기를 시작했다. 


 봄이 지날 무렵 가뭄이 들어 농작물이 말라가기 시작했다. 때 이른 폭염으로 채소가 잘 자라지 못하고 비까지 내리지 않아 메마르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물을 퍼 올리는 펌프까지 고장이 나서 조리개에 물을 담아와 몇 번씩 반복해서 줄 수밖에 없었다. 땅의 열기에 비해 조리개에 담아서 주는 물은 턱없이 부족해서 채소 잎은 누렇게 변해가고 있었다. 메말라가는 농작물을 보며 내 마음도 같이 강말라갔다. 


 그즈음 때맞춰 단비가 왔다. 무척 기뻤다. 타들어가는 작물처럼 내 마음도 타들어가고 있었는데 그토록 기다리던 비가 내리는 것이다. 빗방울은 땅의 열기를 시원하게 식혀주고 고개 숙인 작물들이 생기를 되찾게 했다. 앙증맞은 호박꽃은 선명한 노란색을 드러낸다. 어디서 왔는지 청개구리 한 마리가 연초록 호박잎 사이로 뛰어든다. 내 마음에도 기쁨의 단비가 내렸다. 가뭄에 목말랐던 나도 한동안 비를 맞으며 젖어들었다. 그날 밤 비 오는 소리를 들으며 곤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작물을 둘러보고 잘 익은 토마토를 땄다. 옆에 있는 가지와 오이도 땄다. 어느새 한 바구니 가득 담겼다. 갓 수확한 푸성귀는 싱싱한 푸른 향이 물씬 풍겼다. 수확한 가지, 고추, 방울토마토는 선배에게 나누어주었다. 직접 재배한 수확물이라고 하니 무척 좋아했다. 나는 그녀의 배려에 감사하고 있다고 인사했다. 


 선배는 나에게 단비 같은 존재이다. 모임에서 만나 서로 알게 된 지 십 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같은 동네에 살기에 자주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의령에서 마산으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모든 게 낯설고 어색했다. 그때 선배가 맛있는 점심을 준비해서 나를 불러 함께 먹으면서 나의 이야기도 귀담아 들어주었다. 가끔 농사지은 채소를 나누어 주며 우리 사이는 친밀해졌다. 


 지금은 내가 멀리 이사를 와서 자주 만나기 힘들지만 몇 달 만에 만나도 어제 만났던 듯 반갑다. 그녀는 누구에게도 터놓고 말할 수 없는 이야기를 나의 입장에서 들어주고 조언을 해 준다. 혼자 감당하기 힘든 일은 같이 울어주며 다독여준다. 언제나 믿어주고 든든한 지원자여서 내 삶의 일부처럼 스며들었다. 


 살다 보면 단비 같은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몇 번 만나지 않아도 만날 때마다 변함없는 살핌에 감사함이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마른땅에 단비가 내려 갈증 난 농작물이 활기를 되찾듯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서로가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배려해 준다면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 텃밭 채소를 키우면서 비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듯이 나도 누군가에게 단비 같은 사람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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