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를 아세요?

by 드망

그리스인 조르바를 아세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인데, 넌 어떻게 알아?

너무 좋아서 샀어요.

읽어 보시라고 하려고 했는데 벌써 아세요?

누가 번역한 거야?

네?

번역한 분이 누구냐고?

아! 이윤기라고 쓰여 있네요.

난 안정효 님의 번역본을 제일 좋아해.


다른 사람이 번역한 것도 있어요?

이윤기, 안정효 님은 희랍어를 영어로 번역한 것을 우리말로 번역했고, 외국어대 희랍어과 유재원 교수님이 희랍어를 우리말로 번역한 게 있어.

다 읽어 보면 조르바의 느낌이 다 달라.

번역하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서 번역한 글이 다르거든.

그렇겠네요.

그래서 원서를 읽는 맛을 얘기하는 거야

작가의 글을 그대로 느낄 수 있으니까!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아이의 표정이 묘해진다. 영어 원서를 읽는 연습을 하고 있는 아이다. 문장 자체가 아주 어려운 경우가 아니면 상당히 잘 읽는다. 항상 원서를 읽는 맛을 이야기해도 그런가 보다 하던 아이다.

번역된 책들을 읽으면서도 당연히 그렇게 쓰인 글인 줄 안다. 영어공부가 시험이 목적이 되면 안 된다고 항상 말해 왔다. 외국어는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는 도구다.

나도 그렇게 알았었다. 마치 작가가 처음부터 우리말로 썼던 것 같은 착각으로 책을 읽었다. 내가 읽는 글이 원래 저자의 글이 아니라 번역가의 시선이라는 것을 깨달은 책이 그리스인 조르바다. 언젠가부터 그리스인 조르바를 원서로 읽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내 영어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저 꿈일 뿐이었다. 내 살아생전에 이룰 수 없는 꿈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꿈을 향해 매일 걸어가고 있다.


처음 그리스인 조르바를 만난 때가 고등학교 2학년 때다. 지금 이 아이의 나이다. 오빠가 읽어 보라고 준 책이었다. 그렇게 조르바를 처음 만났다. 그리고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팬이 되었다. 오빠도 한 때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팬이었다. 2년 전 엄마의 생신에 만난 자리에서 그리스인 조르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오빠는 이제는 조르바를 놔주었다고 말했다. 한 때 그리스인 조르바에 푹 빠져 있던 오빠였다. 당연히 아직도 조르바에 대한 감정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다시 조르바를 읽으며 나도 조르바를 놔줄 때가 되었구나 싶다. 이제는 그렇게 삶에 대한 열정도 없고, 뜨겁던 피도 식어버린 것을 느낀다. 죽는 순간까지 삶에 열정으로 넘쳤던 조르바에게 미안해서 이별을 미리 고하는 거라고 하면 변명일까? 아마 오빠도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 젊은 날의 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그리스인 조르바

이제 그 조르바와 헤어질 시간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