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직장인의 김치같은 오늘#
아내에게는 아무렇지 않다고 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런데 잠을 설쳤다.
직장인은 가슴에 사표를 품고 산다고 했던가. 나도 그랬다. 몇번이고 사표를 던져버릴 충동을 느끼며 오랜시간 회사를 다녔다. 실제로 사표를 던지고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내 감정이 좀 다르다. 왜냐하면 이번엔 회사를 관두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이 일을 관두려고 하니까. 난, 오늘 사표를 냈다.
요 몇달 스트레스가 많았다. 업무 스트레스는 늘상 겪어왔던 일이었기에, 그날그날 털어버릴 수 있었다. 요 몇달의 스트레스는 사람에게 받는 스트레스였다. 따지고보면 전 회사에서 이곳으로 이직하게 된 것도 업무 스트레스가 아니라 사람 스트레스였는데, 이곳에서 또다시 겪었고, 아니 더 한 것을 겪으니 이쪽 업계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더 나은 사회, 더 나은 회사를 다른사람이 아닌 내 자신이 만들어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나만의 착각이라는 걸 수천번을 곱씹으면서도 놓고싶지 않았지만, 결국에는 안되었다.
4층짜리 건물과 3층짜리 건물 2개를 갖고 있던 창립한지 20년이 넘은 회사에서 10년을 근속했다. 10년 근속의 대가로 금 세돈짜리 거북이도 받았다. 그러나 난 6년 전 이직했다. 이미 업계에 자리를 잡았고 자산규모도 튼튼했던 회사를 등지고 이제 막 시작하는 회사로 이직을 했다. 이유는 '사람'이었다. 회사에서 낭만을 찾는 시대는 아니라고 하지만, 난 우리딸이 말하는 '옛날사람'이었다. 회사에서 낭만을 찾았다. 투철한 직업윤리의식, 내가 찾아낸 유적에 대한 깊은 고찰과 논쟁,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논쟁. 끊임없이 생각하고 토론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차츰 그런건 중요한 시대가 아니게 되었다. 현장에 나가라니까 나가고, 나가서도 용역업체가 하는대로 그냥 내버려두고, 용역업체가 조사하는건지 고고학자가 조사하는건지도 햇갈려버리기 일쑤였다. 그런 직원들을 보며 앞에서 대놓고 신랄하게 비판해보기도 했고, 밤 늦게까지 팀장과 술잔을 기울이며 각각의 가치관에 대해 공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건 다 내 앞에서만 '그런 척' 했던 것이었다. 다들 회사에서 실력을 키우기보단 '줄 대기'에 급급했다. 그래서 나는 나왔다.
처음 이직한 스타트업의 회사에 직원은 총원이 8명이었다. 회사는 5층짜리 낡은 건물에 4층 한층을 임대해 월세를 주고 있었고, 그 공간의 크기도 전 회사에서 나 한사람이 사용하던 공간의 4배 정도 밖에 안되었다. 좁은 공간에서 작은 인원들이 옹기종기 모여 일을 했다. 겨울이면 화장실 하수구가 얼어 뜨거운 물을 부어야 뚤리는, 히터를 아무리 틀어놔도 코끝이 시리는 그런 곳이었다. '회사를 키우자. 그게 내가 크는거다.' 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했다. 야근이나 주말근무를 밥먹듯이 한건 아니었지만, 집에가면 그대로 쓰러져 누워있을 정도로 나의 모든 에너지를 근무시간내에 쏟아냈다. 회사는 4년만에 근처 번화가가 있는 곳으로 확장이전했다. 비록 여전히 월세를 내야 했지만, 모든 시설이 새것이었고 임원실과 회의실, 유물처리실, 유물수장고, 사진촬영실도 버젓이 마련할 수 있는 엄청 넓은 공간으로 이사했다. 그 좁은 공간에서 다같이 열심히 일한 결과였다. 지금 회사는 조금씩 성장기를 넘어 안정기로 가고 있는 중이다. 회사가 안정되니, 사람도 많이 뽑았다.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아직 목마른' 우리 회사의 모토에 맞게 각자의 방식으로 스며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 '줄 서기' 행태는 곳곳에서 보였다. 관리자급의 사람들은 대놓고 줄을 만들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쟤들이 먼저 줄을 만든다'라며 자기 합리화를 했다. 이 쬐그만 회사에서 줄은...내로남불이라 했던가....
'너는 좋겠다. 대학 전공도 살리고, 니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월급을 받으니까.' 친한 형님이 하신 말이었다. 난 내가 좋아 하는 것을 일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이 일을 좋아했던가?... 사실 난 사람이 좋았던거다. 대학 2학년 때 처음 '발굴장'이라 불리우던(탄광 막장도 아니고... 발굴장이라니...) 고고학 조사현장에서 1년 반이라는 긴 시간동안 휴학을 하며 고고학을 배웠다. 고고학이란 거창한 건 사실 배우지 못했고, 지루하지만 긴 시간 유적과 유물을 찾아내기 위한 마음가짐, 유적과 유물을 찾기 위해 익혀야할 삽질과 곡괭이질, 호미질 등등을 배웠다. 아침 6시에 일어나 7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필드에 나가 삽질을 하고, 저녁 9시부터 밤 12시까지 찾아낸 유물을 닦고 그날 찍은 사진을 정리했다. 밤 12시부터 새벽 3시까지는 술자리를 열어 그날의 회포를 풀며 오늘 찾은 유물과 유적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는 선배들을 보며 배웠다. 낮엔 밭을 갈고 밤엔 책을 읽는 말 그대로 '주경야독'이었다. 난 이런게 좋았다. 아니, 이렇게 유적과 유물을 대하는 선배들이 좋았다. 사람이 좋았다.
어느 순간 내가 좋아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하나 둘씩 없어지기 시작했다. 찾아진 유적에 대해 그 중요도의 경중을 매기기도 하고, 이 유적을 조사하면 얼마가 남는지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차츰 유적을 순수하게 바라보는 '학자'는 사라지고 '업자'가 득세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었다. 돈이 있어야 유적도 조사할 수 있으니까 이해는 하지만, 그런건 운영진이 짊어지고 실무자에게는 온전히 완전하게 유적을 찾아내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하는데, 유적을 조사하면서 돈과 시간을 아끼고 단축하라고 지시하는 시대가 되었다. 난 나대로 '옛날사람'인지라, 회사의 요구를 무턱대고 뿌리치기 어려웠다. 이런 요구가 들어오면 인력을 줄이고 내가 앞장서서 2~3명 몫의 삽질을 했다. 이럴때마다 같이 일하시는 인력 어르신분들은 부담스러워 했지만, 난 했다. 호미 하나를 쓰더라도 날을 갈고 고쳐 썼으며, 삽이 부러져도 온갖 테이프를 칭칭 동여 감아 재활용했다. 운영진의 요구를 들어줘야 내가 바라볼 수 있는 유적의 이쁜 얼굴을 모두 볼 수 있기에.
나의 시간, 나의 체력을 갈아 넣으며 일했다. 오로지 원래 그대로의 이쁜 유적을 보고 싶어서. 동시에 시간과 돈을 단축하고 아껴 회사에 도움이 되고자 했다. 회사는 점점 커갔다. 그러나 나의 시간과 체력은 점점 줄어들었다. 회사는 점점 커가는데, 난 점점 늙고 병들어갔다. 이런 와중에 사람에 대한 마음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아닐거야. 다 좋은 사람들이야. 아니, 그래야만 해!' 라며 생각하고 나 스스로를 세뇌했었다는걸 깨달은 순간, '맨붕'이 왔다.
그래서 몇 달을 고민했다. 고민하면서 살짝 우울증과 공황장애도 온 것 같다. '내가 좋아해서 시작했고, 그 시간이 20년이 훌쩍 넘어버린 지금. 난 이걸 그만둘 수 있을까? 그만두면, 뭘하지?' 나에게 긴 고민은 시간적 사치다. 아내와 딸아이가 있는 가장이기에. 결정을 내렸고 사표를 바로 던졌다. 과거를 고민할 시간에 미래를 생각해야 했다. 난 결정했다. 나의 다음 인생을.
오늘 내가 던진건 사표이다. 받은 사람도 사표겠지만, 내 마음으로는 출사표를 던졌다. 난 내 다음 인생의 출사표를 오늘 던졌다.
결단을 내려야 할때는 단호해야 합니다. 단호하기까지 충분한 고민과 계산을 해야겠지요. 좁은 우물에 나 스스로 갇혀 있던 모습을 발견했다면, 우물 밖으로 나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오면 어딜 가야 하는지, 가는 동안 어떤 위험이 있을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그 시간동안에도 우물 안에 있는 겁니다. 저는 우물 밖으로 나오기 위해 처음 시도했던게 '다른 글 읽기'였습니다. 다른 글을 읽고, 다른 글을 쓰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매일 씁니다. 글을 쓰며 깨달았습니다. 좋아하는 일은 해야 하는 일과 분리할 수 있었다는 걸.
나의 오늘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어제가 됩니다.
오늘을 사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