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이야기의 핵심은 뉘앙스다!
‘연기의 신’이라 불리는 영화배우 메릴 스트립이 몇 년 전 유명 토크쇼에 나왔을 때 일이다. 진행자가 메릴 스트립에게 오트밀 레시피·교통정보·위키피디아 정보가 적힌 지문을 주고 섹시한 셰프, 방송 중 진통이 온 캐스터, 짜증 난 10대 아이 버전으로 각각 연기해달라고 했다. 메릴 스트립이 요청에 응하자마자 침이 꼴깍 넘어가도록 섹시한 오트밀 요리와 지금 당장 아이를 낳아도 이상하지 않을 숨 가쁜 교통정보 캐스터, 엄마의 질문에 귀찮고 짜증 나 죽겠다는 듯이 위키피디아 정보를 읽어대는 10대 아이가 연달아 ‘뿅뿅뿅’ 나타났다(뿅뿅뿅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짧은 연기였지만 재치 있고 생생한 캐릭터 표현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개인적으로 섹시한 셰프 연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아니, 아무것도 아닌 오트밀 레시피가 이토록 야하고 농염하게 들릴 필요가 대체 무어냔 말이다. 그 뒤로 오트밀을 보면 가끔 기분이 묘해질 때가 있는데 내 탓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교육 빨리 했다가 애가 조기 성애화되면 어떡하죠?” “솔직하게 섹스에 대해 알려주면 아이들이 호기심에 따라 하지 않을까요?” “성교육 동화책에 적나라한 성기 결합 그림을 애들이 봐도 될까요?” 양육자들과 성교육 이야기를 할 때 꼭 나오는 질문들이다. 정말 하나같이, 빠짐없이 이해가 되는 질문이다. 그간 우리 사회는 제대로 된 성교육 시스템을 갖춰본 적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지만 여전히 성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사회 분위기다.
사실 성 자체가 특별하다기보다 사회가 성을 유별나게 여긴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몸, 정체성, 타인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정치·법 등 사회 전반과 관련 맺고 있는 성은 일상적이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성에 대해 말하기를 금기시한다. 특히 ‘성=섹스=성기 결합 섹스=포르노에 묘사된 섹스’로 이어지는 도식 탓에 성과 관련된 어떤 주제든 참 껄끄럽고 민망해져버렸다. 좋든 싫든 ‘성=포르노에 묘사된 섹스’ 이미지에 오염된 우리는 우려 섞인 질문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러나 동시에 성을 금기시하는 태도와 왜곡된 통념들이 뒤엉켜 부정적 영향을 미쳐왔다는 사실 역시 우리는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성범죄 가해자의 대다수 성별인 ‘남성’의 성적인 본능과 욕구를, 피해자 대다수의 성별인 ‘여성’의 그것보다 크고 당연하게 여기는 통념이 성범죄자들에게 너그러운 면죄부로 작용되어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그 면죄부가 어린 아이들을 ‘조기 성적대상화’하는 범죄자들에게 적용된다는 사실도.
다시 ‘연기의 신’ 이야기로 돌아가서, 양육자들이 우려 섞인 질문을 할 때마다 나는 메릴 스트립의 저 에피소드를 이야기한다. 특히 그의 말투와 뉘앙스가 평범한 오트밀 레시피를 얼마나 섹시하게 들리게 만들었는지 최선을 다해 재연해본다. 왜? 때로는 메시지의 내용보다 그 메시지를 전하는 태도에 듣는 사람이 더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전달하고 싶어서다. ‘성’은 잘못이 없다. 생물학적인 성기 결합과 그것을 설명하는 그림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성을 자극적으로만 소비해온 우리의 ‘태도’와 ‘뉘앙스’가 문제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성을 음란하고 부도덕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건 결국 누구의 시선인가.
오트밀 레시피 연기에서, 다른 경우는 어떨까? 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 최대한 담담하게 표현해보자. 뉘앙스가 메시지의 본질을 흐리지 않도록 말이다. 일상적이고 평범하게 성에 대해 알려준다면 아이들도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어렵다면? ‘연기의 신’을 기억하라. 대신 반대다. 성을 오트밀 레시피 이야기를 하듯 해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