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고만 Apr 01. 2022

지네 부부는 한 집에 산다.

산골에서 태어난 나는 어려서부터 산과 개울을 쉴 새 없이 쏘다녔다.

놀다가 실수로 먹어버린 곤충은 개미, 모기와 파리가 있다. 갈색 흙, 빨간 흙, 모래의 질감과 향을 감별할 수 있었던 흙믈리에였다. 물론, 흙수저를 물고 태어나기도 했다. 건강에 좋은 황토 수저.

출생이 이렇다 보니 유독 감이 좋았다.


내가 초등학교 이학년쯤 되었을 때였다. 겨울밤이었다.

안방에 다섯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이불을 덮고 토요 명화를 보고 있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오리털 이불을 발끝까지 덮고 있었다. 내가 참 좋아하는 이불이었는데 가끔씩 오리털이 삐죽 튀어나와 나를 찌르곤 했다. 따끔. 따끔. 어른들이 보는 영화는 지루하기 짝이 없어서, 나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발목이 따끔!


"앗, 엄마! 지네가 나 깨물었어!“


지금 생각해도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삐져나온 오리털이 발목을 찔렀을 거라 생각하는 게 자연스러웠을 텐데, 지네라니. 아무튼 나는 지네가 나를 물다고 주장했다.

역시나 엄마는 오리털이니까 신경끄고 다시 자라고 하셨다.


"아니야, 지네라니깐!“


물려본 적은 없지만 난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건 지네다. 아니나 다를까 발목이 조금씩 뻐근해 지기 시작했다. 시원하게 이불을  걷어제치고 일어나면 되련만, 어린 나는 잔인한 현실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이불속에서 덜덜 떨며, 지네가 나타났다고 외치는 수 밖에 없었다. 영화고 뭐고 맥이 끊긴 엄마는 형광등 불을 탁 키고 일어나셨다.


"지네는 무슨 지네야아아악"


이불을 확 제치던 엄마는 그대로 소리를 지르셨다. 거기에 동생들과 아빠도 화음을 얹었다. 오직 당사자인 나만이 입을 굳게 닫은 채 조용히 얼어있었다.

노란 장판 위에서 아주 빠른 속도로 꿈틀대는 빨간 지네, 허연 형광등 불빛을 받아 기름진 몸이 번들번들 댔다. 모두가 비명을 지른 그때야 비로소 나는 소리를 지를 수 있었다. 사실 그 이후로 그 지네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당직 병원에서 주사를 한 대 맞은 상태였다. 약 기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늦은 밤이여서 그랬을까? 몽롱했다. 그때 입고 있던 잠바는 애벌레의 머리, 가슴, 배 마냥 올록볼록 패딩이 들어 가 있는 잠바였는데, 하필이면 색이 팥죽색이었다. 인간 지네가 된 것 같아서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는 유리창에 얼굴을 한껏 뭉갠 채로 졸고 있었다. 아득해가는 정신 끝에 엄마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잠깐 멈췄다 흩어졌다.


"지네는 꼭 부부가 한 집에 사는데......."


그리고 나도 우리 가족도 모두 그 잊었다. 우리는 그 당시 신경 써야 할 곤충들도 매우 많았고, 내 팔뚝 만했던 성가신 들쥐들도 쫓아내야 했기 때문에 지네에게 오롯이 시간을 할애 할 형편이 못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중학생 때 일이다.

부모님은 집을 비우셨고, 나는 방에서 책을 보며 쉬고 있었다. 그날따라 들쥐도 집 곤충들도 모두 조용했다.

그리고 조용함은 금세 깨지고 만다.

안방에서 남동생이 비명을 질렀다. 끽해야 바퀴벌레가 나왔겠지.

나는 신경질적으로 책을 덮고 안방으로 갔다. 그리고 모양 빠지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 놈의 지네, 그 빨간 지네가 누런 장판(세월이 지나서 노란색에서 누런색이 되고 말았다.) 위에서 탭댄스 추고 있었다. 놈을 보니 발목이 따끔 아파왔다. 물론, 어릴 때 기억이라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아팠다. 아팠던 것 같다. 아마도 아팠었을 것이다.

그리고 머릿속을 스치는 엄마의 말.


"지네는 꼭 부부가 한 집에 사는데......."


영화와는 달리 현실에서는 깨달음의 순간도 찰나다. 몇 년씩이나 걸린 떡밥 회수를 음미할 새도 없이 귀를 찢는 비명소리에 얼른 정신을 차렸다. 끽해야 한 뼘 정도 되는 곤충을 두고 세명이서 소리를 지르는 꼴이라니. 정말 모양이 빠진다.

나는 침착하게 파리채 두 개를 가져와 놈을 마당으로 끌어냈다. 파리채로 지네를 후드려 패고 있던 나에게 옆집 아주머니가 조언을 하셨다. 삽으로 지네의 머리통을 '끊어'내야 한다고. 끊어내도 한 동안은 움직일 거라고 하신다. 웩,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삽으로 지네를 떠서 개울가에 던져주었다. 미안하지만, 새로운 집을 알아봐 주렴.


내 발목을 문 지네가 아내인지 남편인지 모른다.

내가 강제 이주 시킨 지네가 발목을 문 지네와 부부관계인지 모른다.

지네가 두 번씩이나 어떤 경로로 안방에 들어왔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후로 지네의 습격이 없었던 걸로 보아 그들은 딩크족이였나 보다.

만약 여러분의 집에서 지네를 만나게 된다면, 반려 지네는 어디에 있는지 괜찮으시다면 다른 집으로 가주실 수 있는지 공손하게 물어보는 것을 권한다.

그럼, 지네 이야기는 여기서 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