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약해진 새끼 고양이를 입양했다

딱히 운명을 느낀 건 아니지만

by 여우토끼



22년 11월, 나는 오랜 고민을 끝내고 고양이를 입양하기로 마음먹었다.


돌이켜보면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은 근 사오 년 전부터 하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구독하기 시작한 고양이 관련 유튜브 채널이 하나둘씩 늘어났고, 고양이 입양에 필요한 조건이며 다달이 들어가는 비용 리스트를 체크하고 있었다.


잠깐의 관심인가 싶어 숙고했던 적도 있지만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다는 마음은 생각에 그치지 않았다. 나는 어느새 부모님과 친구들 앞에서 내 의지를 밝혔다.


"고양이 키우고 싶어. 독립하면 꼭 키울 거야."


말에는 힘이 있다는데 그 덕분일까. 나는 독립을 했고 드디어 그날이 왔다. 그럭저럭 생활력을 갖추게 되자 나는 세상 어딘가에 있을 내 고양이를 찾아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고양이를 어디서 데려와야 하지?


아마 반려동물을 데려오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첫 번째로 부딪치는 난관이다. 펫샵, 구조분양, 시동물보호소, 고양이 쉼터 등 고양이를 데려올 루트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나는 펫샵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루트의 가능성을 열어보고 고양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카페나 SNS에서 개인적으로 구조한 뒤 입양홍보를 하는 글을 읽어보기도 했고, 친구인 A양이 고양이를 입양했다는 쉼터의 링크를 받기도 했다. 틈틈이 포인핸드 어플에서 공고글을 읽어보았고 유명 사설 보호소 홈페이지에서 <입양중> 카테고리에 있는 아이들의 프로필도 모조리 읽었다.


예상대로 고양이의 입양조건이나 입양 방식은 천차만별이었다. 일부러 빡빡한 조건을 내세운 개인 구조는 다소 꺼려지긴 했지만, 마음먹고 구조한 아이를 쉽게 버릴까 봐 그러는 거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비슷한 선상에서 아이를 직접 만나고 나서 결정해 달라고 하는 동물 보호소들의 방침도 납득이 갔다. 나는 천천히 공고를 살폈고 시간은 훌쩍 흘렀다.


보호소나 구조자가 내세우는 조건이 있듯, 내게도 조건이 있었다. 대단한 건 아니었다. 가능하면 까만 친구를, 가능하면 가까운 곳에서 데려오고 싶었다. 그 모든 건 어디선가 주워들은 풍문 탓이었다.


검은 고양이는 입양이 어렵다고 한다. 하얀 고양이와 검은 고양이가 있으면 대부분 하얀 쪽을 입양한다던데, 실제 입양 과정에서 살펴 보니 하얀 고양이의 입양 완료 비율이 확연하게 높았다. 그 점이 한 번 신경 쓰이기 시작하자 자연스레 검은 고양이 쪽에 먼저 눈길이 갔다.


고양이가 겪게 될 이동 스트레스도 신경 쓰였다. 같은 권역에서 직접 데리고 온다 한들 최소 1시간은 걸릴 거리였다. 이동장에 넣어서 데려올 테지만 고양이를 옆좌석에 태운 채 운전하는 건 처음일 테니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포인핸드에서 한 고양이와 만난 건 그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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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고양이 입양 후기를 읽다 보면 '보자마자 내 아이인걸 알고 데리러 갔다.' '운명을 느꼈다' 같은 표현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런 운명론적 만남은 로맨스 영화에서나 가능한 것으로 치부하며 살아서일까. 포인핸드 공고에서 아이를 처음 보았을 땐 나는 그저 귀엽다는 감상을 끝으로 공고 특이사항을 습관처럼 읽어나갔다.


시보호소에 새로 입소한 고양이는 특별할 게 없었다. 특이하지 않은 특이사항이라면 혼자서 들어온 게 아니라 형제 고양이들과 함께 입소했다는 점이었다. 다섯 마리 중 한 마리. 어미는 보이지 않았고 생후 60일 전후의 470g이라고 적혀있었다.


당시 나는 이미 마음에 둔 고양이가 있었다. 그 고양이에게 입양 신청서를 냈을 뿐 아니라 쉼터에서 직접 만나본 뒤 입양 허가 통보를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 A양의 조언에 따라 초보 집사인 내게 잘 맞을 거라는 두 살짜리 성묘였고, 내가 원했던 대로 까만 털의 턱시도 였다. 입양이 결정되면 봉사자가 직접 데려다준다고 하니 운전이나 이동에 관한 걱정도 한시름 덜 수 있었다.


그런데 자꾸만 공고에 눈이 갔다.


딱히 운명을 느낀 건 아니지만, 시보호소 관리가 잘 되고 있을지. 보호 기간이 끝나고 나면 입양이 잘 되기는 할지. 어느새 나는 자꾸만 공고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입양에 관심 있다던가 데리러 갈 거라는 가벼운 댓글이 하나라도 달렸다면 좀 덜 신경이 쓰일 텐데. 공고의 조회수는 그저 그랬고 댓글에도 입양 희망자라고 할만한 사람은 보이질 않았다.


그러던 중 드디어 쉼터에서 연락이 왔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정말 죄송하지만 고양이를 내게 보내기가 조심스럽다는 대답이었다.






나는 전화를 받고 놀랐다. 초보 집사이긴 하지만 내가 나름대로 괜찮은 조건과 입양 자세를 가진 예비 집사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쉼터는 내 어떤 점이 우려스러워 거절한걸까. 나는 조심스레 이유를 물었고 삼십 분 넘는 통화 끝에 자세한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사실 내가 입양 신청을 한 고양이는 젖먹이 때 구조되어 쉼터에서만 2년 넘게 살아온 친구였다. 이 고양이는 운 좋게 입양을 갔으나 환경 적응에 실패했고, 사흘 넘게 소파 밑에서 밥을 굶으며 울기만 했다. 결국 쉼터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이런 파양 경위는 자세히 써두면 '문제 있는 고양이'로 낙인찍혀 영원히 입양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다. 따라서 죄송하지만 초보 집사인 내게는 보내기가 조심스럽고, 만약 그래도 정말 아이를 원하신다면 우리 쪽에서도 다시 검토해 본 뒤 데려다 드리겠다는 연락이었다. 사정을 알게 된 나는 통화를 이어나가며 천천히 생각을 정리했고 전화를 끊을 무렵에는 입양 신청을 철회했다.


쉼터의 연락은 실망스러웠지만, 사실대로 말하면 나는 전화를 끊으며 조금 안심했다. 고양이에 관한 지식은 유튜브와 책으로밖에 본 적 없는 내게 사흘 내내 굶으며 우는 고양이가 왔다면 나 또한 두 번째 파양자가 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래서야 결국 원점으로 돌아온 셈이다.


펫샵이 아닌 곳에서 고양이를 입양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은 역설적이게도 펫샵을 이용하는 사람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나 또한 그랬다. 하나의 생명을 책임지기 위한 각오나 자격은 아무리 갖춰도 모자란데 입양 과정은 까다롭고 비체계적이다. 그렇다고 쉬운 방식으로 아무 고양이나 데려올 순 없다. 이 고양이를 아무나 키우라는 말이 안 되듯, 나도 아무 고양이든 키우겠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가 입양 신청을 철회한 고양이는 결국 좋은 보호자를 만나 무사히 입양을 가게 되었다.


하지만 그날 하루 내 마음은 복잡했다. 이렇게 되었으니 시보호소의 고양이를 데려올까? 아니야, 쉼터 고양이를 거절당했으니 시보호소 고양이를 데려온다니. 이건 마치 A가 품절됐으니 B를 사 온다는 마인드와 다를 게 없지 않나? 이런 자세로 괜찮은 걸까? 아니 애초에 난 정말 고양이를 키우고 싶은 게 맞나? 너무 빠르게 입양 의사를 철회한 게 아닐까? 내 의지가 그것밖에 안 됐나? 난 옳은 선택을 한 걸까?


생각은 좋지 못한 쪽으로 쉽게 부풀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포인핸드에 접속한 나는 공고에 있던 고양이를 입양하기로 마음 먹게 되었다. 함께 입소했던 형제 고양이 중 하나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자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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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고 끝에 악수 난다' 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한 가지 생각에 너무 깊이 몰입하다가 전체적인 흐름을 보지 못하고 판단력이 흐려진다는 뜻이다.


나는 악수를 많이 둬 본 사람이었다. 태생부터 즉흥적이고 기분파 기질이 강했기에, 즉흥적으로 결정하지 못할 만큼 중대한 일이라면 되려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판단력이 흐려지며 엇나간 선택을 하곤 했다.


겁도 없이 돌다리를 위를 폴짝폴짝 뛰어가거나, 돌다리가 깨질 때까지 두드리며 타이밍만 재거나.


이 두 가지 면모를 다 갖춘 내게 더욱 안 좋은 결과를 불러온 건 대부분 오래 고민하다가 내린 선택이었다.


함께 입소한 형제 고양이가 죽었다는 걸 알았을 때, 내 마음엔 돌덩이가 쿵 하고 떨어진 기분이었다.


허울 좋은 고민만 할 때가 아니었다. 며칠간 지켜보던 고양이가 마찬가지로 비슷하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기묘한 의무감과 함께 자신감이 일었다.


그래, 내가 초보 집사인 건 맞아.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한들 고양이 한 마리 마음먹고 데려와서 행복하게 못해줄까 봐?


물론 그때의 나는 한 마리의 고양이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노력과 인내가 필요한지 전혀 몰랐다. 하지만 모르기 때문에 얼마든지 용감할 수 있었다.


오래 고민하는 게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 것처럼 순간적인 판단이 반드시 나쁜 결과를 동반하는 건 아니다.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운명을 느낀 게 아니더라도, 계속 지켜보게 되고 전전긍긍하게 된다면 그 또한 한 생명을 책임지기에 충분한 사유가 아닐까?


다음 날 아침, 나는 시보호소에 전화를 걸어 공고 번호를 부른 뒤 입양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렇게 12월의 겨울, 허피스에 걸려 허약해진 새끼 고양이가 한 마리가 우리 집에 오게 되었다. 뽀송뽀송한 얼굴과 또랑또랑한 눈은 어딜 가고, 꼬질꼬질한 털과 오물 냄새를 잔뜩 풍기며 과연 공고 속 고양이가 맞는지 의심하게 될 만큼 딴판인 모습을 하고서.




KakaoTalk_20240825_112457442_02.jpg 이름은 체리로 지어주었다. 체리 콜라에서 따온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