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실나무에 푸른 열매들이 탐스럽게 열렸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초록잎들만 무성하다. 매실나무를 보면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가 더욱 그리워진다.
어머니는 해마다 6월이 되면 매실 진액을 담갔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나서 숙성되면 매실들을 건져서 물기를 뺀 후 고추장에 묻어 놓았다. 이렇게 하면 고추장의 맵고 짠맛이 매실의 단맛과 어우러져 입맛을 돋운다고 했다.
난소암 수술을 받은 어머니는 2년 동안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병원 생활이 길어지다 보니 매끼 나오는 반찬은 싱겁고 맛이 없다면서 입맛을 잃었다. 그래서 무슨 반찬을 가져가야 할까 고민하다가 엄마가 담가준 매실 장아찌를 챙겨갔더니 점심 한 끼를 다 드셨다. 그 후부터 일요일마다 매실 장아찌를 챙겨가게 되었고 1년이 지나자 언니네와 우리 집에 있던 매실 장아찌가 동이 났다. 그래서 지인들에게 부탁하기도 하고, 반찬가게에서 사서 가져갔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어머니는 어린 자식들을 위해 혼자 생활고를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많은 업을 거치면서 지치고 힘들게 살았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은 고단한 마음과 몸을 내려놓고 짧은 휴식을 취했다. 돌아가시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 시간이 어머니 인생에 있어서 처음이자 마지막 휴가였던 것 같다.
처음 어머니의 병명을 들었을 때 몇 십 년 동안 고통을 감내한 어머니 생각에 가슴이 저려왔다. 자신의 일생을 희생하면서 자식들에게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었던 어머니, 힘든 일이 있어도 얼굴 한 번 붉히지 않고 안으로 아픔을 새기더니 몸속에 큰 고통덩어리를 키웠나 보다. 지금도 어머니를 생각할 때면 뼈저린 후회와 죄책감으로 회한에 젖는다.
그해 6월 언니들과 매실 장아찌를 넉넉하게 담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것을 다 드시지 못하고 가을바람이 스산하게 불던 날, 우리들에게 자신도 좋아하는 음식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해 주고 먼 곳으로 떠나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10년이 되어 간다. 그동안 한 번도 매실장아찌를 담그지 않았다. 매실을 보기만 해도 어머니 생각에 울컥울컥 마음 깊이 숨겨둔 울음이 올라온다
오늘, 푸르름으로 가득한 매실나무를 보면서 내년에는 매실장아찌를 담거야겠다고 생각한다. 언니들과 매실장아찌를 나누면서 우리의 그리운 어머니를 한 번 더 떠올려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