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떡볶이가 된 "국민 떡볶이"
그야말로 콘텐츠 홍수 시대라 아니할 수 없다. 매일 새로운 영화, 드라마가 쏟아져 나온다. 나중에 봐야지 하고 미뤄뒀다간 새로 나오는 컨텐츠에 묻혀서 잊어버릴만큼, 하루 24시간을 투자해도 관심 콘텐츠들을 다 볼 수 없을만큼 보고 즐길 거리가 풍요로운 시대이다. 그 가운데 선택받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작품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창작자들의 고통이란. 극한직업에서 나온 것처럼 누구나 다 목숨 걸고 일하는 거라지만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소설이라든가 만화라든가 영화라든가 어떠한 작품을 창작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면, 세세하게 작법과 관련된 이론을 따르든 그렇지 않든, 어떠한 큰 변화나 사건의 발생을 중요한 장치로 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정 머리 없이 피도 눈물도 없이 살아가던 사람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따뜻한 사람으로 변한다든가, 착하게 살던 사람이 큰 어려움을 겪고 혹은 눈 밑에 점을 찍고(응?) 냉철하고 강력한 복수의 화신으로 변한다든가... 어떠한 변화, 사건을 담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픽사의 스토리보드 아티스트 엠마 코츠(Emma Coats)가 스토리텔링에 대해 조언한 내용 22가지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Once upon a time there was ___. Every day, ___. One day ___. Because of that, ___. Until finally ___." 그렇다. 어느 날에 무슨 일이 생겨버려야 이야기를 풀어나가기가 좋다.
단순한 신데렐라 이야기에서 벗어나, 성숙한 사랑과 자기 발견을 다룬 로맨틱 클래식 영화 "사브리나(1954)"를 떠올려본다. 데이비드는 자신을 짝사랑하는 사브리나에 관심을 가지지 않다가, 몇 년 후 세련된 모습으로 돌아온 사브리나에게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데이비드는 이미 부잣집 상속녀와 약혼한 상태이다. 가문의 사업을 중시하는 형 라이너스는 가족 사업을 지키기 위해 사브리나와 동생 데이비드가 가까워지는 것을 막으려 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라이너스는 사브리나에게 점점 끌리게 되고, 결국 라이너스와 사브리나 두 사람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 사브리나는 당대 최고의 선남선녀들이 출연하는 것은 별론(주인공들의 연령 차이가 조화롭지 못하다는 비판도 별론), 인물들에게 찾아오는 변화와 성장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영화이다.
"어떤 사람이 쭈욱 착하게 살아왔고, 지금도 착하게 살고 있고, 앞으로도 착하게 살아갈 것이다."라는 식의 서사가 관객을 쉽게 사로잡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어 보인다. 바람둥이동생은 계속 바람을 피고 살았습니다. 운전기사의 촌스러운 딸은 여전히 촌스러웠습니다. 워커홀릭인 형은 다른 데 아무 관심이 없었고 늘 열심히 일만 하고 살았습니다. 라고 서술하면서 이야기를 끌어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처럼 어떤 사람의 성격, 특징, 경제적 여건 등에 작더라도 적어도 기존에 겪지 못했던 고난이 찾아온다든가 혹은 어떤 기회가 찾아온다든가 그런 사건이 발생을 해야 이야기가 수월하게 만들어진다.
한편, 그런 것들이 없이도 사람들이 몰입하여 즐길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정말 축복받은 재능이다. 그리고 그것이 성공했다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걸작을 기대해봐도 될 것이다. 좋은 사건을 만들어내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런 사건 없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어려움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런 유형의 작품은 보통 "서사적 사건"보다 분위기, 감정, 일상의 흐름 자체가 중심이 되는 작품들이다. 이런 작품들을 "정적 서사(Silent Narrative)"라고 부르며, 이런 영화 작품에 대해서는 특히 "느린 영화(Slow Cinema)"와 같은 일컫기도 한다.
문득 무라카미 하루키의 "고양이를 버리다: 아버지에 대해"를 떠올려본다. 이는 하루키가 아버지를 회상하며, 가족의 역사와 일본의 전쟁 경험을 조용히 반추하는 작품이다.
"아버지는 그다지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분이 아니었고, 나 역시 특별히 질문을 많이 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우리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법을 익혔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하면, 내가 좀 더 많은 질문을 했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하루키의 이 구절을 곱씹어 읽게 되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의 그 미묘한 거리감, 그리고 그 거리감에서 오던 어려움, 돌이켜 생각해보면서 더하는 뒤늦은 후회를 담담하게 써내려 가고 있다. 아버지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지만, 이미 그럴 기회가 사라졌다는 아쉬움이 잔잔하게 전해져 온다.
무한 경쟁 중인 떡볶이 시장에 대해 생각해 본다. 기존에 자리잡은 전통의 명가들, 그리고 전통의 명가를 토대로 해서 만들어지는 프랜차이즈와 밀키트들, 이미 성공한 다른 음식들을 토대로 해서 떡볶이까지 끼어 팔고 있는 업체들... 이런 극한의 경쟁 환경 속에서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떡볶이 세계에 큰 변화를, 어떤 큰 사건을 만들어 내야만 하는 것이다.
촌스러운 붉은 색, 일밖에 모르는 매콤함, 게다가 영양학적으로도 따스하지 않은 그렇지만 매력적인 우리의 떡볶이는 마치 사브리나에 나오는 라이너스, 험프리 보가트를 연상케 한다. 그러한 그의 맛과 색을 순하게 바꾸는 로제 소스라든가, 마음을 흔들어놓는 마라 소스라든가, 그의 영양학적으로 개선시키는 곤약사리 등의 등장은 파리에서 돌아온 사브리나, 오드리 헵번을 연상케 한다. 유행하는 소스를 첨가하는 것은 진부한 사건이지만 사건이 없는 것보다는 손쉽게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다. 다소 진부하더라도 끊을 수 없는 러브스토리 속 클리셰처럼 그렇게 떡볶이 속에 어떤 사건을 일으키는 것이다.
한편,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명작인 떡볶이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국민떡볶이이다. 그 안에서는 어떠한 변주도 변화도 발견되지 않는다. 가게의 외관도 떡볶이 집이고, 메뉴 구성도 떡볶이 집이고, 시켜서 나오는 음식들도 떡볶이와 튀김이다. 떡볶이 하나를 입에 넣고 씹어본다. 얼큰함과 달달함 사이에서의 그 미묘함, 그 미묘한 사이에서 나오는 짭짤함, 또 다음 떡 하나를 입에 넣게 만드는 자연스러운 연결... 그 안에는 새로울 것이 없지만 나는 새로움을 떠올릴 겨를이 없고, 익숙함과 익숙함 그 자체에 대한 갈망이 찬찬히 차올라 이내 충만해진다.
국민떡볶이에서 굳이 어떤 "사건"을 찾아보자면 하나의 떡볶이 안에서 쌀떡과 밀떡을 모두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쌀떡과 밀떡이 다른 식감을 가짐에도 모두가 하나의 소스 안에서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보니, 그러한 특별한 구성이 어떤 사건이라기 보다는, 떡볶이의 이름 아래 하나되는 "마치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조화 같이 느껴진다. 떡볶이라는 국가 안에서 살아가는 쌀떡과 밀떡이, 각자의 이념과 이익에만 사로잡혀 대립하지 아니하며, 이성과 진실에 기초하여 서로에 대한 관용과 배려로써 통합해나가는 과정이란!
아, 그래서 국민떡볶이는 감히 국민이라는 이름을 쓰나보다. 대중적 인지도나 신뢰, 보편적으로 받고 있는 팬덤, 오랜 기간 검증된 어떤 영향력이 갖춰지지 않으면 국민이라는 말을 붙일 수 없다. 서로 다른 이들이 모였지만 서서히 스며든 냥 통합된 그런 공동체 같은 맛이 없다면 국민이라는 이름을 내세울 수 없다. 담담하게 써내려 가는 떡볶이에 대한 위대한 서사. 이를 경험한 모두는 국민떡볶이가 왜 "국민"떡볶이인지 납득하게 된다. 여태 국민 떡볶이를 몰랐던 당신이라면, 왜 국민떡볶이인지 한 번 찾아가보면 어떨까. 정적이지만 답답하지 않고 무던히 잘 읽히는 담백한 이야기 한 편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