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로(Faro)라는 포르투갈의 소도시에 가는 길이다.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인 버스역에 가서 이스트미들란드(East Midland) 공항에 가는 공항버스를 탔다. 레스터(Leicester) 시내에서 공항까지 버스로 딱 1시간 정도 걸린다. 어제저녁에 가방을 싸면서 파로 날씨 검색을 해봤더니, 기온은 영국보다 훨씬 높은데 (10도 정도 높음) 비가 온단다 (헐). 원래 매일 혹은 하루 건너 하루 비 오는 영국 우리 동네도 지금 비가 안 오는데, 내가 왜 굳이 비싼 돈 주고 고생하며 비행기까지 타고 날아가서 비를 맞고 와야 하는가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미 오래전에 비행기표도 사버렸고 호텔 예약도 해버렸으니 그냥 간다.
집 나서며 이미 집에 가고 싶음
사실 파로의 비 오는 날씨가 아니어도 그다지 여행을 가는 것이 신이 나는 건 아니다. 언젠가부터 (아마도 30대 후반) 어디든 여행을 간다고 막 엄청나게 신이 나본 적이 딱히 있었던 거 같지 않다. 막상 가면 기분 전환도 되고 즐거울 것을 알지만, 가는 길은 언제나처럼 귀찮고 고생스럽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거 같다. 운동을 더 열심히 해서 체력을 더 키워야 하는데 말이다. 여행을 시작하면서부터, 공항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이미너무 피곤하다. 어서 호텔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침대에 눕고 싶다. 여행을 다 하고 집에 돌아가서 침대에서 뒹굴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공항버스 안에서 한다.
유럽 생활 15년 만에 포르투갈은처음
네덜란드에서 살았던 것까지 합치면 유럽에서 총 15년 가까이 거주를 했는데, 포르투갈은 처음이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포르투갈은 스페인이랑 비슷한 거 아닌가, 좀 더 못 살고 별로인 버전의 스페인인 거 아니야,라는 이상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어서 스페인 여행은 열 번은 한 거 같은데 포르투갈은 한번도 간 적이 없었다. 뭐, 오늘이라도 가보니까 되었지 싶다. 역시 내 선입견이 맞았구나라고 생각하게 될지, 아니면 '어머,이렇게 좋은 데를 내가 왜 안 왔었지', 하고 깜짝 놀라게 될지모르겠다. 일단 해안가니 생선 요리나 해산물 요리만 맛있으면 다른 구경들이야 어떻든 큰 상관은 없을 것도 같다.
공항 펍 음식은 그냥 배를 채우는 것
공항에 도착했는데 이미 에너지가 다 떨어진 느낌이라 일단 급한 마음에 레드불(Red Bull)을 사서 원샷했다. 카페인과 당이 들어가니 좀 살 것 같다. 체크인이랑 할 것들을 다 해놓고 펍(pub) 식당에 왔다. 큰 고민 안 하고 단백질을 시켰다: 핫윙(Kacper's Hot Wings). 이게(아래 사진) 13.99파운드(한화로 2만 5천 원 정도)다. 맛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감동을 주는 맛있음도 없다. 영국의 펍에서 파는 음식들이 대부분 이런 식인 것 같다. 큰 기대를 하지 말고 그냥 배를 채워야 한다. 같은 돈이면 한국에서는 더 맛있는 치킨이나 치킨윙을 온 가족이 다먹을 수 있었을 것인데 안타깝다.
파로는 인기 관광지는 아님
거의 언제나 그렇듯이 저가 항공 라이언에어(Ryanair)는 또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보딩이 늦어졌다. 비행기를 타니 운이 좋게도 세명 앉는 자리에 혼자 앉았다. 그렇더라도 저가 항공이란 앞뒤 좌석 간격이 좁아서 옆에 사람들이 없다고 그렇게 대단히 좋을 것도 없었다. 그래도 양 옆에 거구의 서양인 둘 사이에 껴서 오지 않아서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내가 앉은자리만이 아니라 여기저기 빈 좌석이 많은 걸로 보아 파로는 영국인들에게 그렇게 인기가 있거나 유명한 관광지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파로 공항에서 시내는 엄청 가까움
구글맵에서 찍어보니 파로 공항에서 시내까지 버스로 20분 정도고 호텔까지 10분 걸으면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저녁 7시 반인데 가장 빠른 버스가 오기까지 30분이나 기다려야 하고, 배도 고프고 피곤하기도 해서 우버(Uber)를 찍어봤다. 택시는 15분이면 호텔 앞까지 가고 안 걸어도 되고, 버스비는 2.5유로(3,600원)인데 택시비는 9유로(만 3천 원) 정도로 합리적인 가격이라 우버를 불러 호텔에 갔다. 버스든 택시든 공항과 시내가 이렇게까지 가깝다니 주말에 짧게 여행 오기에 참 적합하지 않나 싶다.
물고기가 너무 맛있음
짐을 던져 놓고 호텔 앞 제일 가까운 식당에 들어갔다. 원래는 정어리 구이를 먹고 싶었는데 정어리가 다 떨어졌다고 해서 농어 구이(grilled sea bass)를 시켰다. 해안가니까 생선이 맛있겠거니 생각하긴 했지만 생각한 것보다 더 맛있었다. 가장 최근에 생선과 해산물을 맛있게 먹고 왔던 곳이 그리스였는데, 그리스보다 더 맛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양도 많고, 본 재료의 맛이 거의 그대로 느껴지며, 생선도 야채도 감자도 다 너무 신선하고, 어떻게 이렇게 조미료 없이 건강하게 조리했는데 심심하지가 않고 이렇게 맛이 있을 수 있지 신기했다. 왜 똑같은 감자인데 더 맛있는 것 같지. 감자가 종이 다른가. 야채랑 감자는 맛만 보고 남겨야지 생각했는데 맛을 보니 남길 수가 없었다. 배가 고파서 더 맛있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지만, 별 기대 없이 먹었는데 평균 이상으로 맛있으니 기분이 좋다. 가격도 아주 착했다. 요리가 15유로(2만 2천 원)고 하우스 와인을 한 잔 같이 곁들였는데 말도 안 되게 1.5유로(2,200원)였다. 영국에서는 보통 농어구이 두 조각이 아니라 한 조각을 주면서 같은 가격이나 더 비싼 가격을 받고, 와인 한잔에 아무리 싸도 5파운드(6유로, 9천원)는 받는다. 포르투갈 시골 인심인 건가. 아까 영국에서 점심 먹었던 것과 너무 비교된다. 건강하고 맛있는 밥을 싸게 잘 먹고 났더니 관광이야 아무래도 좋을 것 같다. 내일은 또 얼마나 더 맛있는 것들을 먹을 수 있을까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