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냄새는 어디서 오는 걸까?

비 온 뒤의 향 '페트리코'

by 두디


비 온 뒤의 향기.

젖은 아스팔트, 흙길, 풀잎 사이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냄새가 천천히 올라온다.

사람들은 흔히 "비 냄새가 난다”고 말하지만,
사실 비 자체에는 냄새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비가 지나간 뒤의 공기를 맡는 순간,
괜히 마음이 가라앉고
익숙한 감정을 느낀다.


이는 단순히 기분 탓이 아니다.

학자들은 이 향기를

'페트리코(petrichor)'향이라고 부른다.



이 향은 왜 나는 걸까?

박테리아의 향 분자 <지오스민>

페트리코는 비가 마른 땅에 닿을 때 일어나는

일련의 화학 반응이 만들어내는 냄새다.


땅 속에는 스트렙토미세스라는 박테리아가

풍부하게 살고 있다.
이 박테리아가 만들어내는 향 분자가

바로 지오스민(geosmin)이고,
빗물이 흙에 부딪히면서

지오스민이 공기 중으로 퍼진다.

소나기가 지나간 후

지오스민의 농도는 훨씬 높아지면서
우리가 “흙 냄새”라고 느끼는 향이 발생한다.


지오스민은 향이 매우 강하다.

극소량만으로도 사람의 원시적인 감각을 자극한다.

조향사 마리나 발세닐라는

이 성분을 아무리 희석시켜도

인체는 이를 감지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페트리코 향의 주성분인 지오스민은

향수 제작에서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1960년 초 인도에서는 이 향을 채취해

‘마띠 카 아따르’라는 향수로 판매한 기록이 있다.

흙 냄새를 그대로 병에 담아두려는 시도의 시작이었다.


박테리아의 향 분자 <2-메틸이소보르네올>

비 온 뒤의 흙 냄새를 만드는 물질은

지오스민만이 아니다.


'2-메틸이소보르네올'이라는 분자는
땅이나 물에 사는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성분으로,

지오스민과 비슷한 냄새를 가졌다.


지오스민은 비교적 맑은 흙 향을 풍기는 반면,

2-메틸이소보르네올은

더 강하고 폐쇄적인 흙과 곰팡이 향을 낸다.


작년 여름에는 수온 상승으로

한강에 2-메틸이소보르네올이 급증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수돗물에서 흙과 곰팡이 냄새가 난다는

민원이 인천에 수십 건 접수되기도 했다.


이처럼 2-메틸이소보르네올은

인체에 유해하지는 않지만

특유의 강한 냄새로 불쾌감을 줄 수 있어

먹는물 수질감시항목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러한 특성을 고려할 때, 향료로 활용할 때에는

배합 비율에 대한 세심한 조절이 필요해 보인다.


비가 내리고 마른 땅이 젖는 순간,
지오스민과 2-메틸이소보르네올이
함께 공기 중으로 올라오며
우리에게 익숙한 '비 온 뒤의 향'을 만든다.


식물의 향 분자 <테르펜>

여기에 식물의 향이 더해진다.


식물 역시 지오스민과 화학적으로 유사한

테르펜’이라는 화학물질을 만든다.


영국 큐 왕립 식물원 필립 스티븐슨 교수는
건조한 식물들이 비를 맞으면

잎 표면에 나있는 미세한 털이

손상되면서 향이 배출된다고 한다.

말린 잎을 갈고 빻으면 향이 진해지듯이,

건조한 풀이 비를 맞게 되면

독특한 냄새가 나는 것이다.


이렇게 비 내린 뒤에는

신선하고 풋풋한 냄새가 더해진다.



페트리코향

비 온 뒤의 향을 늘 좋아해왔다.


촉촉해진 땅을 천천히 걸으며
코끝에 닿는 향을 가만히 음미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비 오던 날의 기억이 스친다.


특별한 장면이 아니어도,

이 향과 함께 몽글몽글한 감정들이

조용히 되살아난다.

추억과 함께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향이다.


그래서 페트리코 향은
비가 그친 뒤에만 잠깐 나타났다가
아무 일 없다는 듯 사라지지만,
마음에는 오래 남는다.


감정과 기억을 향으로 풀어내는 일은
나에게 늘 즐거운 작업이다.


비 온 뒤의 공기와
그날의 감정을 떠올리게 하는 냄새처럼,
언젠가는 페트리코 향을
정확하게 구현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