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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이 Mar 19. 2023

고양이의 복수


 


아주 먼 옛날, 경기도의 어느 시골 마을에 한 착한 부부가 살았는데, 그들에게는 6개월 된 아기와 아내가 시집올 때 데리고 온 검은 고양이와 검둥이 개 한 마리가 있었다.

복슬이라는 이름을 가진 개는 송아지만 했는데 영리할 뿐만 아니라 주인에게도 아주 충실해서 가난하게 사는 부부에게 커다란 위로가 되었다. 그런데 고양이는 이미 상당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말썽꾸러기였다. 저지레가 얼마나 심한지 매번 가족을 짜증 나게 했다. 문풍지를 찢고, 방 벽을 타고 올라갔고, 온갖 구석으로 끼어들어갔고, 아기를 할퀴었고, 눈에 띄는 음식은 모조리 먹어치우기까지 했다…… 새끼 고양이보다 훨씬 더 소란을 피웠던 것이다.

매번 고양이가 말썽을 피울 때마다 부부는 말타툼을 했다. 남편 박 씨는 더 이상 이 말썽쟁이 고양이를 집에 둘 수 없다고 했고, 아내는 절대로 고양이를 버릴 수 없다고 버티었다. 누가 뭐라고 하던, 고양이는 그들이 사랑하는 복슬이의 유일한 친구였던 것이다.

어느 날 저녁, 밭에서 하루종일 일하고 난 부부가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 준비를 위해 부엌으로 바로 들어간 아내가 갑자기 소리쳤다. 

—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람!

— 왜, 무슨 일인데 그래?

아내 뒤를 따라오던 박 씨가 물었다. 그리고 곧 문제의 광경을 발견하는 순간 너무도 화가 나 주먹을 움켜쥐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부엌이 그야말로 난장판처럼 어질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내가 밥상에 차려놓고 밥상보로 정성스럽게 덮어놓은 보리밥공기와 반찬들이 뒤엎어져 땅바닥에 흩어져 있고 상은 상대로 나뒹굴고 있었다. 아내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밭에 일하러 나가기 전에 저녁을 미리  준비해 두곤 했다. 그래야만 녹초가 된 몸과 허기진 배를 안고 일터에서 돌아오자마자 남편과 함께 바로 밥상에 앉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모든 음식이 너무 더러워져 있어 보리 한 톨도 건질 수가 없었는데, 설상가상으로 부부는 그날 저녁 이것 외에 다른 먹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가뭄이 몇 년째 마을을 휩쓸고 있어 보리 한 톨, 쌀 한 톨도 귀한 시절이었다.

—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야?

아내가 울고 싶은 심정으로 푸념했다.

— 정말 모르겠소? 그 말썽쟁이가 아니면 누가 그랬겠소? 이번에는 그놈이 정도를 넘었어. 내 이 늙은 괴물을 죽여버리고 말 거요! 도저히 이대로 놓아둘 수가 없소. 안 그러면 이놈이 곧 우리를 굶어 죽게 할 거요.

박 씨는 미친 듯 성을 내며 긴 막대기를 손에 들고 고양이를 찾아다녔다.

마침내 집 뒤에서 고양이를 발견하고 노여움을 애써 감추며 살그머니 그를 불렀다. 그러나 일단 그를 잡자마자 온갖 독설을 퍼부으며 막대기로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다.

고양이는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몸을 뒤틀고 몸부림쳤다.

아내가 부엌에서 나와 두려움에 새파랗게 질려 남편을 말리려고 애썼다.

— 여보, 멈춰요! 그러다가 고양이를 죽이겠어요!

— 당신은 입 다물고 있어요. 내가 당신 때문에 저놈을 지금까지 집에 놓아두었는데 그 결과가 이게 뭐요? 당신도 보고 있잖소. 아니 되오! 더 이상 이렇게 계속 살 수는 없소. 내 결심은 이미 섰소. 저놈을 없애야겠소. 저놈은 죽어야 마땅하오.

— 여보, 너그럽게 생각해요. 저놈을 아주 어릴 때부터 길러온 터라 지금은 정이 듬뿍 들었어요. 그리고 우리는 한 생명을 없앨 권리가 없어요. 안 돼요, 그렇게 할 수는 없어요.

아내는 애원했지만 남편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고양이를 때리면서 소리쳤다.

— 어째서 내가 그럴 권리가 없다는 거요? 이 고양이는 내 거요. 내 마음대로 할 거요. 내가 몇 번이나 이놈을 여기서 쫓아내고 싶었는지 당신은 모를 거요! 단지 당신과 복슬이를 위해 지금까지 참아 왔는데, 이젠 진저리가 나요. 더 이상 일분도 이놈을 견딜 수가 없소.

그의 눈에서는 증오의 불꽃이 튀었고 고양이는 오랫동안 절망적으로 울부짖었다.

— 여보, 차라리 그 고양이를 이리로 찾아올 수 없는 저 먼 곳으로 갔다 버려요. 그러면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지 않을 거예요…… 그게 죽이는 것보다 나아요! 제발요……

박 씨는 아내의 말은 듣지도 않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 보자…… 이놈을 어떻게 죽인담? 그래, 이놈을 나무에 거꾸로 매달아야겠어. 그러면 훨씬 더 많은 고통을 느끼며 혼자 죽어가겠지.

박 씨는 여전히 그러나 힘없이 몸부림치는 고양이의 뒷다리를 움켜쥐고 밖으로 향했다. 아내가 대문까지 따라 나오며 계속 애원했다.

— 여보, 아주 늙은 고양이는 괴물로 변할 수 있대요. 그리고 자기에게 해코지하는 사람들에게 복수를 한대요. 그러니 제발 정신 좀 차려요. 무서워요……

아닌 게 아니라 아내는 동네 사람들이 이야기하던 것들이 생각났던 것이다. 그녀는 자기 고양이가 나이가 많고 심지어는 너무 늙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고양이가 복수를 할 것이라는…… 따라서 그녀는 목숨을 걸고라도 남편을 말리고 싶었다. 불행히도, 남편은 그녀의 말은 아량곳하지도 않았고 결국 집 뒤편의 언덕 꼭대기에 있는 큰 팽나무에다가 고양이를 매달았다. 그것도 왼쪽 뒷다리만 묶어서. 좀 더 많은 고통을 주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박 씨의 집을 덜썩거리게 할 정도의 찢어질듯한 고양이 울음소리가 온 마을로 울려나갔다. 이웃들은 고양이가 가여워 박 씨의 처사에 못마땅한 듯 혀를 찾고 몇몇 사람들은 심지어 박 씨를 찾아와서 놓아주라고 요구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늙은 고양이는 계속 울부짖다가 점점 더 힘이 빠져 결국에는 축 늘어진 채 더 이상 움직이지도 숨 쉬지도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아침 일찍, 아들의 울음소리에 잠이 깬 박 씨의 아내 가 기저귀가 젖어서 그런지 들여다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남편을 불렀다.

— 여보, 빨리 이리 좀 와봐요! 우리 아기 좀 봐요! 오 맙소사! 정말 끔찍스러워요.

— 무슨 일이오? 왜 그렇게 놀라는 거요?

남편이 억지로 잠을 깨며 물었다. 그리고 눈을 비비며 아이를 가까이서 살펴보았다.

— 저기 저 왼쪽 다리를 봐요! 오, 부처님! 어떻게 해요?......

아내가 아연실색한 얼굴로 탄식했다.

정말 소름 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기의 왼쪽 다리가 완전히 검은 털로 뒤덮여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죽은 고양이의 다리와 흡사했다. 박 씨는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제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그의 몸은 두려움으로 떨고 있었다.

— 이건 분명히 당신이 살해한 우리 고양이 짓이에요. 우리에게 복수를 하는 거라고요…… 이제 우리 아기를 어떻게 하면 좋아요, 여보? 오, 어떻게 이런 불행이! 그러게 당신을 그렇게 말렸건만! 그렇게 죽이지 말라고 애원했는데 당신은 내 말을 듣지 않았어요.

아내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녀의 한탄 소리가 아이의 울음소리와 섞이면서 마치 초상난 집 같았다. 박 씨는 대경실색한 채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아내와 아기를 번갈아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 갑자기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렸고, 소스라치게 놀란 그가 아내에게 물었다.

— 여보, 당신도 들었소? 방금 들은 게 고양이 울음소리가 아니었던가?

아내가 울음을 뚝 그쳤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들의 귀에 분명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박 씨와 아내는 그들의 아기를 바라보았다.

— 오, 끔찍해라! 우리 아들이 이제 고양이 소리를 내다니! 아이고, 우리 가엾은 아기……

이렇게 탄식하며 아내가 아이를 안으려 하다가 갑자기 놓아버리고 무섭게 소리 지르며 뒤로 나자빠졌다. 아이의 두 귀가 점차 고양이의 귀로 변해갔던 것이다. 박 씨는 아내를 일으켜 세우며 죄책감에 짓눌려 탄식했다.

— 여보, 당신 말을 듣지 않은 걸 정말 후회하오…… 한낱 작은 짐승에 불과한 이 늙은 고양이가 우리에게 이런 식으로 복수하리라고는 전혀 짐작도 하지 못했소. 내가 크나큰 실수를 저질렀구려.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박 씨 부부는 하루하루를 걱정과 공포 속에서 보냈다. 아이의 흉측스러운 모습을 볼 때마다 그리고 아이가 내는 고양이 울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두 사람은 소름이 돋았다. 그들은 아이를 점쟁이 집에도 데려가보고 그 지방에서 가장 명성이 높다고 하는 모든 의원들을 찾아가 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 어떤 의원들은 미리 겁을 먹고 아이를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석 달이 흘러갔다.

어느 날 한 늙은 스님이 그들의 대문 앞에 와서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을 외웠다. 박 씨 아내가 보리쌀 한 줌을 바가지에 담아 스님에게 가져갔다.

— 죄송합니다, 스님. 이것밖에 바칠 게 없습니다.

박 씨 아내가 발길을 돌리는데, 스님이 그녀를 불렀다.

— 부인, 제가 보기에 이 집에 불길한 그림자가 뻗쳐 있군요. 무슨 근심거리라도 있는지요?

그러자 박 씨 아내가 곧 눈에 눈물을 글썽거리며 대답했다.

— 잘 보셨습니다, 스님! 아닌 게 아니라 커다란 재앙이 우리 가족을 덮쳤습니다.

박 씨 아내가 스님을 집 안으로 초청했고 부부는 그들에게 일어난 일을 모두 이야기했다. 다 듣고 난 스님이 아기를 오랫동안 살펴보더니 혀를 차며 말했다.

— 쯧쯧 쯧! 불쌍한 아이! 당신들로 인해 죄 없는 아이가 고통을 받는군요.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당신들과 아이의  생명이 위급한 상황이 곧 닥친다는 점이오.

그러자 박 씨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 모든 게 제 잘못입니다, 스님. 전 지금 갈피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아들을 살릴 길이 있다면 제 목숨이라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스님, 제가 어찌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박 씨는 애원하는 눈으로 스님의 입을 바라보며 초조하게 대답을 기다렸다. 반면 스님은 눈을 감은 채 염주알만 굴릴 뿐이었다. 그러더니 긴 침묵 끝에 이윽고 탄식했다.

— 쯧쯧! 가엾은 짐승이구나! 아무 죄도 없는데 이런 죽음을 당하다니! 이 놈이  없었다면 당신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닐 것이오. 이 짐승이 당신들을 구한 은인이오. 그런데 당신들은 그 은인에게 고마움은커녕 그를 처참하게 죽였을 뿐이었소. 당신들을 향한 원한이 너무도 커서 그 영혼이 편히 쉬질 못하고 있소.

박 씨와 아내는 스님이 한 말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윽고 남편이 물었다.

— 스님, 왜 그 늙은 고양이가 우리의 은인이라고 하시는지요? 솔직히 말해서 스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좀 더 설명해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 당신들이 그날 저녁 일터에서 돌아와 준비해 놓은 그 음식을 먹었더라면 둘 다 죽었을 것이오. 왜냐면, 오래전부터 당신들의 부엌 천장에서 살고 있던 천년 묵은 지네가 그날 아주 치명적인 독을 몇 방울 떨어뜨렸는데 공교롭게도 그것이 당신들이 차려놓은 저녁 식사에 떨어졌어요. 그런데 그 독 냄새를 맡은 고양이가 의도적으로 밥상을 뒤엎고 음식을 모조리 짓밟았지요. 당신들이 그 독을 삼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요. 이게 실제로 그날 저녁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런데 아뿔싸, 당신들은 그것도 모르고 그 고양이에게 너무도 몹쓸 짓을 했습니다.

— 아이고, 우리 불쌍한 고양이! 그 모든 게 우리를 구하기 위해서 했는데. 제가 천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박 씨는 한숨을 푹 쉬며 통탄했다. 그러자 스님이 위로하며 달랬다.

— 당신이 모르고 한 일이니 너무 자책하지는 마십시오. 하지만 한 가지 교훈은 깨달아야 합니다. 비록 한낱 벌레와 같은 작은 미물이라도 살아있는 생명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요.

스님은 다시 눈을 감고 염주 알을 굴리다가 물었다.

— 이 집에 검둥이 개가 있지요?

— 예, 있습니다.

— 그 개만이 당신 가족의 불행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오늘로부터 정확히 보름 후 둥근 보름달이 뜨는데 그때가 바로 고양이 귀신이 당신들을 공격하게 되는 운명적인 밤이 될 겁니다. 이 날짜까지 당신들의 개를 잘 먹여서 건강하고 튼튼하게 만드십시오. 당신들이 해야 할 일은 그게 답니다. 그다음은 그냥 지켜보십시오. 개가 알아서 할 거니까요.

박 씨와 아내는 스님을 대문까지 바래다 드리고 깊이 고개 숙여 감사했다. 그런데 고개를 들어보니 스님은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분명 평범한 스님은 아니었다. 부처님이 그들 부부를 불쌍히 여겨 잠깐 현신한 것인가? 어쨌든 그들은 오로지 스님 말 만을 믿고 그때부터 복슬이를 튼튼하게 먹일 온갖 음식을 찾는데 전력을 쏟았다. 그들은 심지어 자신들도 아까워서 감히 먹지 못하는 귀한 닭 몇 마리를 개 먹이로 바치기까지 했다. 며칠이 지나자 복슬이는 눈에 띄게 힘이 세어졌고 그의 털은 건강이 넘쳐 기름이 자르르 흘렀다.

드디어 보름달 밤이 왔다. 박 씨와 아내는 두려움에 떨며 방 한구석에서 서로 얼싸안은 채 밤이 이슥할 때까지 앉아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고 도무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자정이 다가오자 복슬이가 갑자기 땅을 파헤치며 짖어대기 시작했다.

아내가 남편의 팔에 매달리며 말했다.

— 여보, 밖에 뭔가가 일어난 게 확실해요.

— 그럴지도 모르오…… 가만있자, 밖을 한번 내다봅시다.

박 씨는 문풍지에다 구멍을 뚫고 바깥을 살피다가 소리쳤다.

— 저… 저게 뭐지? 불덩어리가 아닌가? 저게 우리에게로 다가오고 있소!

그 말을 듣고 아내가 와서 얼른 구멍에 눈을 대고 들여다보다가 탄식했다.

— 아이고, 부처님! 이를 어찌할꼬?

두 사람은 아무런 해결책도 찾지 못한 채 안절부절, 초조하게 왔다 갔다 할 뿐이었다. 마당이 점점 더 환해지자, 그들은 결국 방문을 열었다. 그러자 너무도 끔찍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불덩어리가 점점 더 커지더니 고양이로 변신했고, 거센 불길에 휩싸인 고양이는 여러 번 공중돌기를 하더니 나무 울타리에 불을 놓았다.

— 아이고, 맙소사! 우리 집이 몽땅 다 타버리겠네!

— 여보, 저놈이 우리 방으로 와요! 얼른 달아나요.

박 씨 부부는 황급히 바깥으로 내달렸는데, 너무도 공포에 떤 나머지 아기를 잊어버린 줄도 모른 채 나왔다. 고양이는 한 맺힌 울음소리를 냈고 곧 방향을 틀어 그들을 쫓아왔다. 그때 복슬이가 사납게 짖어대며 화염에 싸인 고양이에게 달려들어 목덜미에 강한 이빨을 찍었다. 인정사정없는 싸움이 시작되었다. 박 씨와 아내는 좀 떨어진 곳에서 복슬이가 이기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초초하게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아내가 주저앉으며 외쳤다.

—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우리 아기! 우리 아기를 데리고 나오지 않았어요. 여보, 우리 아들이 아직 방에 있어요…… 지금 찾으러 가야겠어요……

아내가 집으로 막 달려가려고 하는데 남편이 말렸다. 불길이 이미 초가집을 거의 반이상 삼켜가고 있었던 것이다. 지붕과 문 그리고 도처에서 화염이 솟아올랐다.

아내가 울며 몸부림쳤다.

— 저를 놓아줘요. 우리 아기를 구해야 해요. 저렇게 죽도록 내버려 둘 수 없어요! 안 돼요!

그러는 동안 복슬이가 드디어 괴물을 멸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몸은 화염과 피투성이로 엉망진창이었지만. 고양이는 한줄기의 연기로 변하더니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복슬이는 재빨리 물이 담긴 세숫대야에 뛰어들어 몸을 완전히 적실 시간도 없이 다시 나와 집을 향해 달려갔고 집 안쪽으로 몸을 날렸다.

— 여보, 복슬이가 우리 아기를 구하려고 하나 봐요!

— 그래요, 정말 용감한 동물이오! 아주 영리한 개라는 건 알았지만 저토록 용감할 줄은 몰랐소.

박 씨 부부는 다시 희망을 가지고 복슬이가 그들의 아기를 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빌었다. 어쩌면 하늘이 그들의 기도를 들었는지 검은 구름이 보름달을 뒤덮었고 천둥이 쳤다. 곧이어 소나기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남편과 아내는 비를 맞으며 계속해서 빌었다.

— 부처님, 이렇게 비를 내려줘서 한없이 감사합니다. 우리 복슬이가 아기를 구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부처님, 제발 우리 아기와 너무도 헌신적인 우리 복슬이를 보살펴주세요.

아내가 기도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어디선가 박 씨 부부의 아들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내가 남편 팔을 잡으며 외쳤다. 

— 여보, 이게 우리 아기 울음소리가 아닌가요? 당신도 들었지요? 더 이상 고양이 울음소리가 아니었지요? 오, 그렇다면 우리 아이가 살아있고 자신의 본 목소리도 되찾았다는 말이지요?

박 씨 부부가 울음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이리저리 주변을 살폈는데 남편이 먼저 내달리며 외쳤다.

— 여보, 저쪽이요! 빨리 와요!

아기는 마을 뒤편에 죽은 고양이가 아직 매달려있는 팽나무 아래에 있었다. 아이 옆에는 화상을 입어 만신창이가 된 복슬이가 쓰러져 있었다. 정말 눈뜨고 볼 수 없는 처참한 광경이었다. 박 씨가 개를 흔들어보았지만 복슬이는 이미 차디찬 시체가 되어 있었다.

— 우리 복슬이가 죽었소, 여보!

박 씨가 그를 뒤쫓아 오느라 아직도 숨을 헐떡거리는 아내에게 슬프게 전했다.

— 아이고, 아니 될 일입니다! 우리 불쌍한 복슬이가 이렇게 우리 곁을 떠날 수는 없어요. 아이고, 아이고, 그의 억울한 죽음을 어찌할까!

아내가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었다.

박 씨와 아내는 너무도 슬픈 나머지 아기를 구한 기쁨을 누릴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다.

— 저 불쌍한 짐승이 우리 아들을 구했소. 인간인 우리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한 일을 그가 해내었소…… 정말 훌륭한 개가 아닐 수 없소. 그가 우리에게 베푼 이 모든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소.

박 씨가 고마움이 담긴 목소리로 이렇게 중얼거리고 나서 나무에서 고양이 시체를 풀어 개옆에 정성스럽게 눕히고는 다시 말했다.

— 우리 가엾은 야옹이, 나를 용서해 다오! 네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지. 우리는 너에게 목숨이라도 바쳐야 하는데 그러기는커녕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했는지! 정말이지 너무도 끔찍한 일을 저질렀구나! 말해다오, 어떻게 하면 내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지를!

박 씨 부부는 온갖 정성을 다해서 개와 고양이를 팽나무 아래에 나란히 묻었다. 그리고 제사를 지내고 그들의 영혼이 편안히 쉬도록 진심을 다해 빌었다. 바로 그날로부터, 검은 털로 뒤덮였던 아기의 다리와 그의 두 고양이 귀가 점차 변하기 시작하더니 몇 주 후에는 완전히 본모습으로 돌아왔다. 그제야 드디어 박 씨 부부는 한시름 놓고 정상적인 삶을 꾸려갈 수가 있었다.

얼마 안 가 그들은 개 한 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를 새 식구로 맞아들였다. 그런데 이 고양이가 또 보통이 넘었다. 이전 것보다 훨씬 더 사고뭉치였던 것이다. 하지만 박 씨는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았고 고양이의 모든 저지레를, 심지어는 심각한 사고를 쳐도 아주  참을성 있게 견디었다. 죽은 고양이와 복슬이 덕분에 미물을 포함해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을 존중할 줄 알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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