ㄴr는ㄱr끔... 눈물을 흘린ㄷr...☆

[프롤로그] 어느 날 갑자기 굴러들어 온 충만함

by 도나윤

나는 가끔... 눈물을 흘린다...

주로 출근길 지하철에서...

환승할 때까지 여운이 가시지 않은 날엔 버스에서도...

유독 심 날엔 버스에서 내려 회사까지 걸어가는 길에서도...

그냥 시도 때도 없이 눈시울이 붉어진다.


처음 아침 지옥철에서 눈물샘이 고장 났던 날, 갑자기 눈물이 줄줄 새서 너무 당혹스러웠다.

'나 갑자기 왜 이러지?'

주변 사람들이 보기 전에 눈물을 멈춰보려고 애를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날 이후로 종종 그님이 찾아오셨다. 눈가가 뜨거워지고 이어서 습기가 차기 시작하면 마음의 준비를 시작한다.

'또 그님이 오셨구나'

재빠르게 촉촉한 눈깔을 잔뜩 치켜뜨고 습기를 말린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눈물이 그대로 마르면 참 다행인데, 가끔은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그렁그렁 고인 눈물이 후두둑 떨어진다. 이제는 그님이 찾아오시지 않으면 섭섭할 정도로 나는 눈물에 익숙해졌다. 가방에 휴지가 있는 날은 태연하게 눈가를 훔치고, 없는 날은 누가 보든 말든 그냥 당당하게 눈물을 흘린다.


당혹스러운 눈물의 정체

이 눈물의 정체 논하자면, 한마디로 어처구니가 없다. 지옥으로 향하는 출근길 늘 그랬던 것처럼 너무 우울해서, 화가 나서 흘리는 눈물이라면 차라리 납득이 되겠는데, 그 지옥 같던 출근길에 '삶이 너무 충만해서' 눈물이 난다. 매일이 너무 행복해서, 만사가 너무 감사해서, 그냥 감격스럽고 벅차올라서 눈물이 난다. 나에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축복이 찾아오다니, 너무 당혹스러워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갑자기 충만해진 썰을 풀면 몇몇 사람들이 나에게 종교인의 향기가 난다고 한다. 미리 밝혀두자면 '충만'이라는 단어 자체가 종교적인 향기를 풍길 수 있겠으나, 나는 여러 지인들의 전도를 좌절시킨 초신실한 무교인이다. 단지 행복, 기쁨, 쾌락 등으로 형용할 수 없는 더 높은 차원의 경지를 표현할 마땅한 단어를 찾지 못하여 충만함을 외치고 있을 뿐이다.


거친 파도를 버텨내다가 마침내 잔잔한 윤슬을 만끽하는 기분이랄까?




그님이 오시기 전

작년 여름까지만 해도 나는 나락에 빠져있었다. 단순히 회사 스트레스라고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었다. 잠들 수 없는 수준의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다 정신과를 알아보기 시작했고, 그 고통이 몸으로 전이되었는지 어느 날부터는 온몸에서 통증이 느껴져 병원을 돌아다녀 봤지만 통증의 원인은 찾지 못했다. 정신과에서 약물치료를 받아보라는 주변의 이야기를 실천에 옮기자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내 인생에서 회사만 도려내면 모든 것이 완벽한데, 회사만 벗어나면 나는 지극히 행복한데, 나를 환자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정신과 대신 바다로 뛰어들었다. 누구도 나에게 말을 걸지 못하는, 어떤 말도 할 필요가 없는 조용한 바닷속으로. 긴급 수중 치료로 죽었다 살아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 차례 고비를 겨우 넘겼고, 일상으로 돌아와 나를 구원해 줄 수 있는 인공호흡기들을 찾아다니며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작년 여름의 기록
내가 바라는 것이 그렇게 거창한 일일까. 그냥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한숨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인생에서 출근길 무거운 발걸음으로 땅이 꺼져라 푹푹 한숨 쉬는 날들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이 원인 모를 온몸의 고통들을 어떻게 떼어낼 수 있을까. 통증은 나아지질 않고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너무 잠들고 싶은데 수면유도 주파수도, asmr도 다 소용이 없다. 진짜 정신과에 가봐야 하나? 괴롭다. 자고 싶다. 통증이 제발 멈췄으면 좋겠다. 평소에 잠들면 들리지도 않던 핸드폰 진동소리마저 어찌나 크게 들리는지 짜증이 난다. 손가락, 발가락 마디마디, 온몸의 살갗과 근육껍질까지 불쾌한 통증이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 삶을 갉아먹어도 되는 것일까? 미치겠다.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가고 싶다. 병가를 내야 하나. 퇴사 카드를 내밀 타이밍인가. 한숨인지 날숨인지 알 수 없는 거대한 호흡, 유독 빠르고 강하게 뛰는 것 같은 심장박동, 잠을 잘 수가 없다. 눈물을 닦으러 몇 번을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욕밖에 안 나온다. 진짜 더 이상 못 버티겠다. 이 고통을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까. 너무너무 잠들고 싶다.
구사일생 수중치료 현장


어느 날 갑자기 굴러 들어온 충만함과의 첫 만남

괴로움에 시달리던 그 여름으로부터 불과 몇 달 사이에, 당황스러울 만큼 갑작스러운 변화가 찾아왔다. 처음 충만함을 알아챈 건 작년 가을, 충만함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눈물이 나기 시작한 건 작년 겨울부터였다. 아침부터 뭔가 이상했다. 지옥 같던 출근길, 회사 가기 싫어서 바위처럼 무거워야 정상인 발걸음이 날아갈 듯 가벼운 것이다. 나는 서서히 올라오는 충만함에 취해 구름 위를 걷는 기분으로 회사까지 춤을 추듯 걸어갔다. 뭐 가끔 신나는 음악을 들으면서 출근하면 리듬을 타며 걷기도 하니까, 오늘은 그냥 기분이 좋은 날인가 보다 했다. 그런데 회사에 도착해서도 충만함의 취기가 빠지질 않았다. 카페에서 모닝커피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회사를 향한 감사함이 불쑥 튀어나오더니 그만 충만함 만취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삶이 너무 감사해서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내가 드디어 돌아버렸구나...'


그때 회사 동기 언니가 카페에 등장했다. 황급히 천장을 쳐다보며 눈물을 말렸다. 눈물은 감춘다 쳐도, 이 요상한 경험을, 이 벅차오르는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언니, 나 이상해. 갑자기 삶이 너무 충만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아. 나 왜 이러지???"

그녀는 마치 명의처럼 곧장 진단을 내려주었다.

"야, 그거 호르몬이야."

그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곧바로 전날 밤 비트코인 시세로 화제를 전환하여 신나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 보였다. 안구에 낀 눈물 코팅 때문에 뿌옇게 번진 회사 카페의 풍경이, 고소한 커피 향기가, 커피 내리는 소리가 더욱 예술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이미 영화 속 주인공이었다. 상상 속에서 들려오는 영화 ost 때문에 그녀의 코인 쇼핑 후기 따위는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살다 보면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선물이 어느 날 갑자기 굴러 들어올 때가 있다.


그님이 오신 후

그렇게 취업 직후부터 약 10년간 나를 옭아맸던 거대한 분노가 어느 날 갑자기 완전히 소멸해 버렸다. 분노가 떠난 자리에는 몽글몽글한 설렘이 피어났다.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건, 여전히 같은 직장, 같은 부서, 같은 팀원들, 같은 업무, 분노의 원인이었던 회사는 물론이고 개인적으로도 아무런 신상의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갑자기 삶이 너무 충만해졌다. 출근길에는 본래 차에 살짝 치여 회사 말고 병원에 실려가고 싶어야 정상인데, 매일 출근길마저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하루는 출근길에 내 뒤를 따라오던 회사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뒷모습이 왜 이렇게 신났어요?'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 주제에 발걸음이 가볍다 못해 거의 춤을 추는 수준이라니. 나는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뇌가 고장이 난 것 같았다.


겨울의 기록
어제 아침, 견딜 수 없을 만큼 충만함이 차올라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OO언니한테 얘기했더니 그거 다 호르몬 때문이라며 판을 깼다. 호르몬보다는 오히려 주말 동안 뮤지컬 연습하면서 도파민이 터져버린 후폭풍이지 않을까?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한 이 기분... 아무것도 집중할 수가 없다. 마약은 안 해봤지만, 그냥 뇌를 마약에 절인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이 충만함의 근원은 무엇일까? 어젯밤엔 이 원인 모를 충만함에 불안하기까지 했다. 이러다 내가 죽어버리면 어떡하지? 이 충만함을 이제 막 느끼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면? 하는 오묘한 두려움까지 드는 것이다. 정말 일시적인 호르몬의 영향일까? 아니면 30대의 안정감이란 것을 느끼기 시작한 걸까? 아니면 좋아하는 일, 재밌는 일, 잘하는 일을 다 하고 있어서 충만해진 걸까?


드디어 세찬 파도를 헤치고 달빛이 반짝이는 먼바다까지 나아간 느낌이랄까?




충만함의 수명

나도 높은 확률로 호르몬 때문일 줄 알았다. 며칠 그러다 말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이상한 상태가 몇 달이나 지속되어 더 이상 호르몬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분노의 마스코트와도 같았던 내가 "나 아직도 삶이 너무 충만해서 미치겠어!"라고 잔뜩 흥분한 채로 떠들어대면, 주변에서는 여러 가지 다른 이유들을 찾아주었다.

"너 얼마 전에 공연해서 그래"

맞다. 공연 직후에도 일시적으로 짜릿한 도파민 때문에 가끔 뇌가 미친다. 이때도 가끔 눈물이 나는데, 대신 꾸준히 줄줄이 아니라 일회성으로 콸콸 난다. 근데 뭐 공연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이 눈물은 그 눈물과 좀 다르다는 것을.

"10년 만에 드디어 회사에 적응한 거 아닐까?"

아니다. 최근에도 회사에서 정신병이 왔었다. 그런데도 충만함은 빠지지 않았다.

"사주 대운이 바뀐 거 아니야?"

여태껏 들은 가설 중 가장 신빙성 있는 썰이다. 이것만큼 이 사태를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정답은 아니다. 그럼 대운이 다시 바뀌면 또 나락으로 간다는 말인가? 싫다. 나는 이 충만함을 오래오래 유지하고 싶다. 나도 궁금하다. 이 충만함의 수명은 과연 몇 년이나 될까?



내 삶을 충만하게 만드는 것들

내 충만함이 반년이 넘도록 빠지지 않자 이제는 주변에서 묻기 시작한다.

'아직도 충만해? 도대체 어떻게 하면 충만해져? 나도 좀 알려줘'

문제는 나도 명확히 모르겠다는 것이다. 누군가 비법을 물으면, 복합적인 사건들의 시너지가 폭발했다고 뭉뚱그려 설명하는 것이 최선이다. 왜 갑자기 내 삶이 충만해진 걸까? 도대체 약 10년간 나를 지독하게 괴롭혔던 분노는 모두 어디로 사라진 걸까? 뇌가 잠시 고장 나서 찾아온 일시적인 변화가 아니길 간절히 바라며, 이 충만함이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 '내 삶을 충만하게 만드는 것들'을 추적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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