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원고를 고르다 문득 떠오른 질문들
브런치북 공모전에 어떤 주제를 써야 할까 고민하던 어느 날, 책상 위에 무심코 쌓아둔 책 더미를 바라보다가 발걸음이 멈췄다. 표지마다 큼지막하게 새겨진 단어는 하나같이 'AI'였다.
이미지, 영상, 음악, 업무, 글쓰기까지. 이제는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이라 여겼던 창작의 자리까지 AI가 성큼 들어온 것이다. 자연스레 질문이 이어졌다.
"AI 글쓰기와 그림, 어디까지 발전할까? 그리고 나는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어떤 글을 써야 할까?"
지난 몇 년간 매일 쓰고 읽으며 살아왔다. 웹소설과 전자책을 꾸준히 집필했고, 브런치에서 에세이를 연재했으며, 출판사 서포터즈와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동시에 AI 글쓰기와 그림을 직접 실험해 왔다. 시 한 편을 입력했을 때 곧바로 화려한 이미지를 뽑아내는 AI 아트 툴 앞에서 경이로움을 느꼈고, 문장을 매끈하게 다듬어주는 AI를 보며 작가로서 섬뜩한 두려움도 맛보았다.
"내가 쓴 글보다 더 잘 쓰는 것 아닐까?"
이런 불안은 하루이틀 가볍게 느끼고 지나갈 감정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AI와의 동행이 길어질수록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해졌다. AI는 도구일 뿐, 나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는 점이다.
내가 겪은 실패, 내가 흘린 눈물, 내가 느낀 기쁨을 대신 기록해 줄 존재는 없다. AI는 문장을 만들 수 있지만, 그 문장에 ‘나’라는 체온을 불어넣는 일은 오직 인간의 몫이다.
결국 글쓰기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경험이고, 그림의 본질은 손끝이 아니라 시선이다.
그러다 오래전부터 품고 있던 브런치북의 기획안을 꺼냈다. 바로 『AI보다 더 잘 쓰는 사람입니까』(가제)인데, 이 문장은 단순히 책의 제목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는 인간과 기계의 경쟁을 묻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나만의 삶을 충분히 쓰고 있는가?'라는 자기 성찰에 가깝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은 결국 한 사람의 고유한 이야기를 살아내는 힘이기 때문이다.
『AI보다 더 잘 쓰는 사람입니까』는 AI를 배척하거나 대립하려는 선언이 아니다. 오히려 AI와 공존하는 시대에 인간 창작자의 의미와 가능성을 묻는 첫 번째 대화이자 기록이 될 것이다.
AI가 만들어주는 편리함을 기꺼이 누리면서도, 인간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을 끝까지 붙잡아 두려는 다짐이 담겨 있다.
나는 여전히 매일 글을 쓴다. 어떤 날은 원고가 술술 풀리고, 어떤 날은 커서만 깜빡인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쓰는 이유는 단순히 'AI보다 더 잘 쓰겠다'라는 다짐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AI가 고도로 발달하는 시대에 '조금 더 사람답고 즐겁게 쓰겠다'라는 의지 때문이다.
창작은 속도를 겨루는 경주가 아니라, 끝까지 살아내는 기록이다.
AI가 곁에 있더라도, 아니 오히려 곁에 있기 때문에 더욱 분명해진다. 결국 사람을 감동시키는 문장은 언제나 사람의 삶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