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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안 쓰면 영영 사라질 이야기

"내 이야기는 별거 없어요"라는 착각은 그만

by 윤채
우리가 글을 쓰지 않는 동안, 세상은 수많은 이야기를 잃는다.



아무도 기록하지 않으면 그 기억은 사라진다. 누군가가 그 순간을 적어두지 않는 한 그때의 감정과 표정, 그 공간의 공기는 금세 희미해진다.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사라짐에 맞서는 숭고한 행위다.



시간이 흘러 모든 것이 변해가더라도 글은 그 순간을 붙잡는다. 그렇기에 글을 쓴다는 건 존재를 지워지지 않게 하는 일이며, 세상과의 연결을 다시금 확인하는 과정이다.



"내 이야기는 별거 없어요"라는 착각

어떤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내 이야기는 별거 없어요."

"이런 건 누구나 겪잖아요."


하지만 진실은 정반대다. 누구나 겪는 일 같아 보여도, 그 일을 바라보는 당신의 시선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비를 맞아도, 어떤 사람은 우울함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설렘을 느낀다. 그 차이가 바로 당신만의 이야기다.



글의 힘은 대단한 경험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일상을 포착하는 데서 시작된다. 우리가 '좋은 글'이라 부르는 것들의 대부분은 화려한 사건보다는, 작고 사소한 순간을 담아내는 힘에서 비롯된다.



어느 날의 하늘빛. 잠들기 전 생각난 한 사람. 서운함을 억누르며 한숨처럼 내뱉은 문장. 이 모든 건 누구나 겪지만, 아무도 기록하지 않은 순간들이다. 그 순간을 기록하는 사람이 바로 작가다.



작가란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지나쳐버릴 일을 붙잡을 줄 아는 사람이다.



기억은 불완전하고, 기록만이 진실을 남긴다

기억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우리가 "그때 참 좋았지"라고 말할 수 있는 건, 누군가 그때를 기록해 두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모든 장면은 마치 꿈처럼 흩어진다.



글을 쓰지 않는다는 건 결국 '없었던 일'로 남는다는 뜻이다. 당신이 느꼈던 감정, 당신이 목격한 세상의 한 조각은 당신이 쓰지 않는 한 영원히 사라진다.



10년 전 일기장을 펼쳐본 적이 있는가? 그때의 나는 그런 생각을 했구나, 그때는 그게 그렇게 중요했구나. 글을 통해 우리는 과거의 나와 다시 만난다. 그 기록이 없었다면, 그때의 나는 영영 사라졌을 것이다.



AI가 대신 써줘도, 우리의 삶은 대신 살아줄 수 없다

AI 시대는 이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이제 묻는다.



"AI가 글을 다 써주는데, 굳이 내가 쓸 필요가 있을까요?"



하지만 그 질문 속에는 한 가지 중요한 오해가 있다. AI는 문장을 대신 쓸 수 있을지 몰라도,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AI가 아무리 뛰어난 알고리즘으로 문장을 만들어도 새벽 세 시의 외로움이나 이별의 온도를 결코 알 수 없다. AI는 정확하지만 살아 있지 않다. 반대로 인간의 글은 서툴지만 숨을 쉰다.



완벽하지 않지만, 진짜로 느낀 사람이 쓴 문장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세상에 같은 글은 단 하나도 없다. AI가 수천 개의 문장을 조합해 글을 만들 수는 있지만, 그 글에는 작가의 체온이 없다. 기계는 데이터를 재조합할 뿐, 진심을 경험할 수 없다.



반면, 당신이 쓴 글에는 당신이 살아온 시간과 감정의 결이 자연스레 묻어난다. 그것이 글을 살아 있게 만드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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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읽히기 위한 게 아니라, 발견하기 위한 것

글을 쓰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런 글을 누가 읽을까"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글의 가치는 읽히는 사람의 수에 있지 않다. 진짜 가치는, 그 글을 통해 나 자신이 변화하는 데 있다. 글쓰기는 자기표현이 아니라 자기 발견이다.



쓰는 동안 우리는 자신을 다시 본다. 분노의 근원, 슬픔의 결, 기쁨의 진짜 모양을 마주한다. 누군가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할 때, 글은 '읽히는 글'을 넘어 '살아 있는 글'이 된다.



한 문장이라도 좋다.



"오늘은 이상하게 마음이 울컥했다."

"퇴근길에 들은 노래 한 곡이 나를 붙잡았다."



그런 문장들이 모여 당신의 하루가 되고, 결국 당신의 이야기가 된다.



존재의 증명은 글로 완성된다

글을 쓰는 일은 결국 존재의 증명이다. 누군가의 눈에 띄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이 세상에 살았다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다.



누군가 언젠가 당신의 글을 읽고 말할 것이다.



"이 사람도 나와 같은 감정을 느꼈구나."



그 짧은 공감 하나가 또 다른 사람의 하루를 지탱하게 만든다. 글을 쓴다는 건 바로 그런 일이다.



당신이 쓰지 않으면, 당신의 이야기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 대신 써줄 수도, 대신 느껴줄 수도 없다.



그러니 오늘, 완벽하지 않아도 써라.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다.



당신이 쓰는 그 한 문장이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 한 문장은 당신 자신이 사라지지 않도록 붙잡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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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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