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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잡념이 글감으로 변하는 순간

잡념을 모르는 AI vs 잡념투성이 사람

by 윤채
잡념을 버려라.



글을 쓸 때 가장 자주 듣는 조언 중 하나이다.



하지만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금세 깨닫는다. 잡념은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잡념은 글을 살리는 연료다. 잡념을 없애려 애쓸수록 글은 말라버리고 그 잡념 속을 똑바로 들여다볼 때 비로소 글의 첫 문장이 태어난다.



예민해서 다행인 사람

우리는 흔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너무 빨리 '쓸데없다'라고 판단한다. 하지만 그 잡념 속에는 아직 문장으로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 숨어 있다.



"왜 그 말이 자꾸 마음에 걸리지?"

"아까 그 장면이 왜 이렇게 오래 남지?"



이런 사소한 질문들이야말로 글의 시작점이다.



한 번은 글을 쓰려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아 멍하니 앉아 있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문득 오전에 들은 말 한마디가 떠올랐다.



"요즘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별것 아닌 말이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찔렸다. 그 감정을 따라가다 보니 글이 나왔다.



'예민함이란, 사실 세상과 자신을 더 깊이 느끼는 능력이 아닐까.'



그 문장이 글의 첫 줄이 되었고, 그날 나는 의외로 괜찮은 글을 완성했다. 결국 잡념은 글감으로 향하는 감정의 입구다.



그 순간의 불편함, 서운함, 혹은 아무 이유 없는 생각의 덩어리를 외면하지 말라. 그 속에 당신의 문장이 숨어 있다.




AI는 잡념을 모른다

AI는 논리적 사고에는 탁월하지만, '잡념'이 없다. AI는 언제나 목표지향적으로 움직인다.



명확한 질문을 받으면 답을 내놓지만, 이유 없이 머무르거나 흔들리지 않는다. 반면 인간의 글쓰기는 정반대다. 우리는 쓸데없는 생각, 감정의 미세한 흔들림,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의 잔향 속에서 언어를 발견한다.



예를 들어, AI에게 "오늘 기분이 이상해"라고 입력하면, AI는 "기분 전환 방법 10가지"를 제안할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왜 이상할까?"를 묻는다.


"이상하다는 게 정확히 뭐지?"

"언제부터 이런 기분이었지?"

"이 느낌에 이름을 붙인다면?"



이렇게 질문을 이어가다 보면 어느새 한 편의 글이 완성된다. AI는 불필요한 것을 걸러내는 시스템이지만, 작가는 '불필요해 보이는 것'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존재다. AI는 데이터에서 패턴을 찾지만 인간은 혼란 속에서 이야기를 만든다. 그 혼란이 바로 창작의 원천이다.



잡념을 글로 바꾸는 3가지 방법

그렇다면 쓸데없는 생각을 어떻게 글감으로 바꿀 수 있을까?



복잡한 기법은 필요 없다. 다음 세 가지면 충분하다.



첫째, 잡념을 그대로 받아 적는 것이다. 떠오르는 생각을 판단하지 말고 문장으로 흘려보내라.


"지금 괜히 화가 난다."

"별일 아닌데 계속 생각난다."



그 문장 자체가 이미 글의 재료다. 중요한 건 '좋은 문장'을 쓰려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은 오직 '붙잡기'만 하면 된다. 고치는 건 그다음이다.



둘째, 그 감정의 근원을 묻는 것이다. "왜?"라는 질문을 반복하라.



"왜 이 말이 신경 쓰였지?"

"왜 그 장면이 불편했을까?"

"왜 자꾸 그 사람 생각이 날까?"



이러한 과정을 통해 생각은 감정으로 감정은 문장으로 변한다. 처음엔 "그냥 기분 나빴어"였던 감정이, '왜'를 세 번쯤 물으면 "사실 나를 무시당한 기분이 들어서"라는 문장으로 구체화된다. 그것이 바로 글의 핵심이다.



셋째, 문장 사이에 여백을 두는 것이다. 잡념은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다. 억지로 논리로 엮지 말고 문장 사이에 숨을 쉬게 하라.


"오늘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넌 너무 예민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집에 와서 계속 그 말이 맴돌았다. 예민한 건 나쁜 걸까?"



문장과 문장 사이의 공백이 독자에게 생각할 시간을 준다. 그 여백이 글을 인간답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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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내 안의 혼란을 통과하는 일이다.



잡념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의미를 건져 올리는 일이다.



때로는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생각이 한 편의 에세이, 한 줄의 시, 한 장의 소설이 된다.


"오늘 아침 커피가 식었다"라는 문장에서 시간의 무상함이 "왜 사람들은 다 바쁠까"라는 잡념에서 현대인의 고독이 태어난다. AI가 계산으로 문장을 만든다면 인간은 망설임과 잡념으로 글을 만든다. 그 혼란이야말로 인간만의 문체다.



지금 머릿속이 복잡한가?



괜찮다. 그 복잡함이 바로 글의 시작이다. 잡념을 지우려 하지 말고, 붙잡아라. 그 안에 당신의 문장이 있다.



오늘 당장 해보라. 지금 머릿속에 떠다니는 쓸데없는 생각 하나를 골라 그대로 써라.



"왜 자꾸 그 생각이 날까?"



간단한 질문에서 시작해도 괜찮다. 글도 딱 5분만 써도 된다. 짧은 시간이 쌓여 자신만의 작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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