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딸 뺨을 수시로 때린 아이를 집에 불렀다.

세상의 모든 아이는 나의 책임 하에 있다고 생각하라

by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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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제라가 환하게 웃고 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둘째 딸애가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어렵게 그 일을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이유도 없이 그냥 때려. 아이는 말했다.


이유가 없어?


어떤 땐 시끄럽다고 때리고 어떤 땐 거슬린다고 때려.


몇 번이나?


열 번 이상?


아이가 느꼈을 상처에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다음날 일찍 담임 선생님에게 전화를 했다. 상황을 설명하고 정중하게 부탁해 그 아이 부모의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아이의 아버지란 사람이 전화를 받았다. 그는 내 이야기를 듣자마자 사과를 했다.


부모님이 함께 아이를 데리고 우리집으로 오세요.


나는 최대한 분노를 가라앉히고 말했다.


지금은 아내가 외국에 나가 있습니다. 한 주 뒤쯤 아내가 돌아오면 찾아뵙겠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마침내 그 날이 왔다.


약속된 시간에 정확히 맞춰 세 사람이 우리집을 방문했다.


두 부모는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니요, 그렇게 하지 마시고 편하게 앉으세요.


아닙니다.


두 사람은 자세를 고쳐 앉지 않았다. 나는 아이를 응시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네가 그 아이구나. 이름이 뭐니?


-- 요.


아이의 표정은 복잡한 제 심경 그대로를 드러내고 있었다. 열 번 이상 맞았어. 제라의 말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아 분노가 삭혀지지 않았다. 이 아이는 어떻게 그런 심각한 폭력성을 갖게 됐을까?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내 아이를 때린 애에 대한 분노와 함께 그러한 끔찍한, 빌어먹을 폭력성을 갖게 된 아이에 대해 측은함이 느껴졌다. 이 아이는 어떻게 이 지경까지 이른 거지? 이 부모란 사람들은 그동안 뭘 한 걸까? 아이를 어떻게 기른 거지?


나는 말했다.


우선은 여기까지 오게 해서 미안하구나. 하지만 오늘 나는 널 이곳으로 불러야만 했어. 넌 아주 큰 잘못을 저질러 왔더구나. 맞지?


아이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먼저 아이를 통해 사실 확인을 했다. 아이는 제라의 뺨을 며칠에 걸쳐 여러 번 때린 것을 처음엔 부인했다. 그리고 나중에야 어렵게 어렵게 그 사실을 시인했다.


네가 제라를, 제라의 뺨을 한 번도 아니고 그렇게 여러 번 몇 날을 때려 왔다는 사실에 화가 나는구나. 네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알고 있니?


나는 우선 내 감정을 밝혔다. 아이는 미동 없이 내 얼굴을 바라보고만 앉아 있다.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면서.


너는 무엇보다 제라의 기억에 큰 상처를 남긴 거야. 이 다음에 제라가 컸을 때 그리고 이 시절을 회상할 때 제라는 너와의 기억을 무척이나 아프게 되새기게 될 거란 말이야.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아니?


나는 말을 이었다.


그점이 가장 슬프고 마음이 아프다. 제라가 내 딸인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너 역시 내 딸이라고 생각하고 싶구나. 너희들은 밝고 깨끗하고 따뜻한 기억을 만들어가야 하는 친구들이야. 서로에게 상처가 될 만한 말이나 행동을 하는 건 상대방에게 매우 큰 잘못을 저지르는거란다. 넌 이미 제라의 기억을 상당 부분 망가뜨리고 슬픔으로 얼룩지게 만들어 버렸어. 맞아?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 수 있어. 아저씨는 네가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제라든 누구든 어느 누구에게도 그런 행위를 하면 안 돼. 과거를 바로잡아라. 그리고 좋은 친구가 되어라. 서로에게 좋은 기억을 만들어 주는 존재가 돼야만 해. 그게 너희들이 할 일이야. 할 수 있겠니?


네.


아이는 작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부모와 아이가 돌아가고 나서 나는 방 안에 홀로 앉아 생각에 잠겼다. 그 아이의 눈빛과 표정, 얼굴, 손짓이 계속 머리속을 맴돌았고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제라는 앞으로도 이런 경우를 만나게 되리라. 폭력이든 무관심이든 억울한 경우든 제라는 자기 앞에 놓인 문제를 헤쳐 나가야 한다. 세상의 고통을 인지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가져야 한다. 나는 제라가 충분히 그럴 수 있으리라 믿는다.


오늘날 우리사회 어린 세대가 학습만을 폭력적으로 강요받고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와 놀이, 인간관계의 기회 등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데 가슴이 아프다. 인간성을 배우고 인격적으로 성장해야 할 세대가 서로를 경쟁상대로 인식하고 행복하지 않으며 억압적인 환경에서 자라나고 있다는 데 화가 난다. 기성세대는 왜 이 문제를 바로잡으려 하지 않을까? 언제까지 이러한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환경에서 아이들을 키우려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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