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란 벌거벗은 인간이 되는 소중한 체험터다
나와 아내는 1년에 한번은 가족 여행을 가는 편이다. 아내와 사귀기 시작할 때부터 여행이나 음식, 대화의 코드가 참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우리 두 사람은 특별히 걷는 것을 좋아했다.) 그것은 두 사람이 만나 부부가 될 때 아주아주 중요한 요소다.
아이가 태어나고 여행객은 넷이 되었다. 챙길 게 많아지고 호텔을 고를 때도 여행지를 선택할 때도 충족시켜야 할 조건이 까다로워졌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땐 두 아이를 업고 안고 여행을 다녔고 아이들이 걸어다니면서부터는 네 명의 뚜벅이조가 되어 이곳저곳을 걸었다.
-로마의 골목길
올해는 큰맘 먹고 유럽 3개국을 여행했다. 여행기간만 23일이니 돈도 들고 에너지도 그만큼 소요되는 긴 여행이었다.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물론 여행은 훌륭했다. 다만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크게 절감한 것은 내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는 끝없이 걸을 수 있었고 그것이 좋았는데 이제 마흔다섯이 넘으니 몸이 확연히 달라짐을 느꼈다. 아침에 일어나면 활력이 예전만 못하고 왠지 덜 걷고 싶고 앉고 싶고 쉬고 싶었다. 이게 늙는 것이구나, 절감했다.
아내는 나보다 4살이 젊은데 그런 나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는 듯했다. 이해하는 것 같으면서도 내가 게을러졌다거나 여행에 소극적이라거나 가족여행의 의미를 평가절하하고 있다고 보는 것 같았다. 실제로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오빠는 가족끼리 다닐 때는 열심을 다하지 않잖아!
그게 아닌데.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어쩌랴. 아무리 말을 해도 어떤 것을 잘 와 닿지 않고 공감이 안 되는 것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는 대부분 생활 속에서 만들어진다. 즉 생활 속에서 내가 아내에게 믿음을 그만큼 충분히 주지 못한 것이리라.
파리에서도 매일을 걸어다녔고, 지하철을 탔다. 융프라우나 인터라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밀란과 베네치아를 거쳐 드디어 로마에 도착했을 때 아내는 폭발했다.
-로마 판테온에서
그날 우리 가족은 콜로세움 일대를 관광하기로 했고 중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나서 느즈막히 호텔을 나왔다. 날은 뜨거웠고, 갈 길은 멀었다.
갑자기 아내가 입을 열었다.
가기 싫으면 오빠는 그냥 호텔에 있어!
나는 가기 싫다고 말한 적 없는데.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렇게 화가 나지 않은 상태였다.
아니야, 진짜야, 억지로 갈 필요 없어. 그냥 우리끼리 갔다 올게.
이 말이 불씨가 됐다. 아내는 진심이었다. 여기서 나도 폭발했다.
나는 충분히 안다. 아내가 그렇게 말한다는 것은 오늘 지금 당장의 즉흥적인 발언이 아니다. 오래 산 덕분에 나는 아내의 화법을 잘 파악할 수 있다. 며칠, 몇 주를 참고 나서 아내는 지금 폭발한 것이 틀림없다. 아내는 내가 이번 여행 내내 게을렀고 소극적이었던 데다 가족여행의 의미를 크게 두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던 참에 바로 지금 그 문제가 폭발한 것이리라.
나는 어디부터 이야기를 설명해야 할지 깜깜했다. 우선 나 자신이 화가 나서 더더욱. 우리 부부는 모두 화가 나 있었고 날은 30도가 넘어 후텁지근했다. 아이들은 어쩔 줄 몰라 슬금슬금 엄마 아빠의 눈치를 살피고 있을 뿐이다.
너무 지나치다. 지금까지 몇 번을 짜증내 왔는데 오늘 만큼은 좀 심한 것 같아. 분명히 말할게. 나는 콜로세움 안 간다고 한 적 없고 그런 낌새조차 풍긴 적 없다고 생각해. 도대체 어느 지점에서 내가 가기 싫어한다고 확신하는 거지?
오빠가 그랬잖아. 몇 군데만 보자고.
아내가 응수했다.
그게 뭐가 어때서?
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여기까지 와서 몇 군데만 보고 가는 사람이 어딨어, 오빠. 그건 가기 싫다는 말이지. 길 가는 사람들한테 물어봐. 오빠처럼 여행하자는 게 정상인지.
내가 비정상적이니?
몰랐어?
그래? 그럼 나는 호텔로 갈게. 난 이런 기분으론 도저히 못 가겠어.
나는 폭발해 버렸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들은 완전히 얼음이 됐다. 아내가 화장실에 가려 테이블을 떴을 때 아이들이 내게 말을 건넨다.
엄마 왜 저래?
이런 순간에 아이들이 나 대신에 엄마를 비난하다니! 이런 감사할 때가. 나는 안도했다.
그러게.
오늘은 엄마가 좀 심한 것 같아. 신경증이 폭발한 건가?
첫째는 심드렁한 투로 말했다.
나도 모르겠다. 굳이 저런 식으로 짜증 내면서 말할 필요가 있을까? 가족 전체의 분위기를 망치는 거잖아. 아빠는 그게 화가 나.
나는 아이들이 더 나를 두둔해 주기를 은근히 바라며 말했다.
오늘은 엄마가 잘못했어.
하늘이 돕는 건지 고맙게도, 둘째까지 동의했다.
그날, 우여곡절 끝에 우린 무사히 콜로세움을 여행했다. 아내가 절반쯤 양보했고, 나도 절반쯤 양보해 가족 모두가 만족하는 코스를 결정해 돌았다.
지금은 즐거운 기억뿐이다. 아내와 심각한 상태까지 간 말다툼마저도 행복하게 남아 있다.
여행을 가면 민감해지고 갈등이 생긴다. 나는 이것이 여행의 신비에 해당한다고 보는데, 여행길에 오르면 인간의 본연의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이리라. 싸우지 않는 관계는 건강하지 않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것은 거의 대부분 깊고 진실한 관계가 아니거나 (피상적 관계) 사실상 무관계에 해당한다. 아내와 나는 자주 다투는 편은 아니지만 종종 부딪힌다. 특히 최근엔 여행을 가거나 이동 중에 다툼이 생기는 편이다. 가장 큰 문제는 내 체력이리라.
끝으로, 아내는 여전히 의심중이다. 내가 가족을 최우선에 두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게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