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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평살이 Jun 07. 2021

우디앨런의 <애니홀>을 보면서

관계가 부화하는 극복의 변증법


우디앨런의 애니홀을 보았습니다.


전반적으로 애니홀이란 영화의 특징은 지속적으로 펼쳐지는 플래쉬 백, 중간 중간마다 카메라를 향해 관객들에게 직접 호소하는 인터뷰들, 주인공인 우디앨런이 연기하는 앨런 싱어의 많은 대사량속에 발화하는 언어 유희들은 이 영화의 재기 발랄한 이미지들을 촉발시키는 주요한 요소들로 작용합니다. 처음 등장하는 오프닝인 앨런 싱어의 인터뷰와 고스란히 이어지는 어린 시절 플래쉬 백에서 어른이 된 그가 키스를 한 여자아이에게 성적 호기심을 표출한 것 뿐이라며 선생님께 변호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정체성에 대한 보고이기도 하지요. 영화는 끊임 없이 남자와 여자가 고정적으로 갖고 있던 남녀의 관계 맺기에 대한 탈피를 요청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앨런 싱어의 시점으로 주도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영화 쇼트는 오직 앨런 싱어를 향해 있는데, 이는 감독 자신인 우디 앨런이 연기를 하고 있는 만큼이나 그가 갖고 있었던 남성성에 대한 유희를 자신의 모습을 빌려 찌질한 방식으로 연기를 해냅니다. 사실 이는 앞으로 우디 앨런이라는 감독이 어떤 방식의 영화를 전개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주요한 힌트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로맨틱 코미디 장르로 구분되는 <애니 홀>은 코미디라는 영화의 방식이 줄 곧 그래 왔듯이 어느 한 쪽을 풍자하면서 전개 되었다는 것을 볼 때 이 영화도 그러한 관습에서 벗어난 것은 아닙니다만 여기서 우디 앨런의 영화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령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와 같은 영화는 "남자와 여자가 친구가 될 수 있을까"라는 주제의식을 끝까지 밀고 들어가 결말을 이끌어 내는 경우라면, <애니 홀>은 반대로 남자와 여자가 사귀고 헤어 진 상태에서도 친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물음에 답을 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결과론적으로 볼 때 남녀의 관계라는 건 점차 '극복'이란 각기의 변증법적인 충돌로 발생하는 것이고, 이는 마지막 대사처럼 '달걀'이라는 언제 부화할지 모르는 관계의 잠재성을 가르키고 있기도 합니다.  


분명히 이 영화에서 두 남녀의 관계는 이뤄질 수 없었지만, 결코 쓸쓸함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관계에서 더욱 주요하게 관철 되어야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상기할 수 있기 때문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애니 홀은 그러한 점에서 희망적이면서 고무적입니다. 성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 이상으로 남녀 관계는 멋진 것이자 즐거운 것이기 때문이죠. 


"애니를 다시 니 좋았어요. 애니는 역시 멋진 사람이고 애니를 알게 된 것도 정말 즐거웠걸 느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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