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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충만 Oct 10. 2017

망막박리

그날 밤 갑자기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일요일 저녁 대훈이와 사우나에 갔는데 탕에서 목욕을 마치고 나오는데 갑자기 이상하게 왼쪽 눈이 보였다. 말로 표현하기는 힘든데 꼭 눈앞에 보이는 사물이 이제까지 와는 다르게 마치 각각 여러 가지 색깔과 맛을 가진 아이스크림이 섞여 있는 듯 휘어져 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목욕탕에 들어갔다 나왔는데 눈이 이상하게 보이니 깜짝 놀라고 뭔가 눈이 잘못된 건 아닌지 덜컥 겁이 났다.


집으로 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우나 가기 전 했던 축구가 떠올랐다. 배명고등학교를 다니는 친구들과 석촌초등학교에서 주말마다 자주 축구를 했는데 어김없이 그날도 친한 친구들과 모여서 축구를 했다. 나는 주로 왼쪽 윙백 자리를 선호하는데 그 날은 아마 오른쪽 수비수로 경기를 뛰었다. 공에 쌔게 맞은 적은 없는데 한 번 공의 낙하지점을 잘못 계산해서 공이 땅에 튀기고 얼굴을 살짝 강타한 장면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렇게 강하지 않았는데 그것 때문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동네에 작은 안과를 찾아가 치료를 받았지만 의사 선생님께서는 정확한 이유를 설명해주지 못했다. 그렇게 월화수목금까지 5일을 가도 원인을 알 수 없던 의사 선생님은 큰 병원으로 가보라며 진단서를 주셨다. 그리고 그다음 주에 아산병원으로 가서 진단을 받았다. 큰 병원답게 진단 절차는 꽤나 까다로웠다. 예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기자가 많아 기다리는 시간도 길었다. 진료를 위해서는 산동 약을 투여하는데 동공을 확대해서 보다 정확한 진료를 위해서 투여 후 30분 정도가 지나고 진료실에 들어가 전공의 선생님을 만났다. 그렇게 몇 번 진료를 받고 나서 밝혀진 병명은 망막박리였다. 


생물 시간에 안구 구조에 대해 배워서 망막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망막박리는 생소하기 짝이 없었다. 망막박리는 안구 가장 안쪽을 덮고 있는 투명한 신경조직인데 빛에 대한 정보를 전기적 정보로 전환해서 뇌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이 망막이 찢어져서 구멍이 생겨서 원래 역할을 하지 못해서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의사 선생님께 축구공에 맞은 사실을 말씀드렸는데 축구공이 원인은 아니고 자연스럽게 그냥 떨어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밤새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TV나 컴퓨터는 일정 시간만 하고 꼭 최대한 멀리서 보려고 노력했는데 의사 선생님이 말씀한 이유를 듣고는 그저 할 말이 없었다. 내가 나쁜 짓을 했나? 앞으로는 착하게 살아야겠다 이런 생각만 들었다.


수술 날짜가 정해지고 2박 3일 첫 입원을 했다. 왠지 모르게 병원은 가기만 해도 기운이 빠지는 곳이었다. 환자복을 입은 내 모습을 보니 낯설기 그지없었다. 수술 시간이 다가오고 3시에 전신마취를 하고 나서 깨어보니 7시가 넘었다.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마취를 하고 나서 어떤 어린아이가 급해서 수술 순서를 바꿔서 나보다 먼저 한 후 내가 수술대에 올라서 늦게 됐다. 

온몸에는 힘이 없었다.


다행히도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나서 바로 시력을 회복할 수는 없었지만 시간이 흐른 후 안경을 쓰면 대략 0.8 정도까지 시력이 올라왔다. 수술이 끝나고 얼마 동안은 왼쪽 눈에서 진물이 나와서 계속 닦아줬고 혹시나 모를 충격에 대비해서 플라스틱 안대를 사용했다.


어린 나이에 어쩌면 눈을 잃지 않을까 두려웠고 한편으로는 수술비 때문에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이 사고로 꼭 열심히 공부해서 부모님께 걱정 끼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서 꼭 좋은 모습 보여 드리겠다고 마음속으로 약속했으나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마음속 약속은 그저 아직 내 마음에만 남아있다. 그 사고 이후 부모님의 감사함과 건강함의 소중함을 더 느낀 계기가 되었다.


육체적 시력은 낮아졌지만 삶의 태도는 한층 더 성숙해진 사고였다.


#망막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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