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여행

2025년 8월 1일 금요일

by 곽예지나

2박 3일의 사물놀이 연수가 끝났다. 겨우 이틀 지났을 뿐인데 벌써 과거의 일 같고, 순간순간 나를 압도했던 감정의 파도는 발목을 찰랑이는 정도만 남았다. 그 사실이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다행스럽기도 하다. 계속해서 그 감정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면 일상생활을 이어나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추억 타령을 하지 못하는 건 아쉬워도 내 회복력이 빠르다는 것은 다행스럽다.


정말 이 일정만을 손꼽으며 기다렸다. 여름 방학을 기대한 유일한 이유가 이것이었을 정도로. 쇠에 질린 나를 새로운 길로 이끌어줬던 장구, 합주하면서 서로 맞춰나가던 소리, 단순한 악기 연습 이상으로 내 인생을 채웠던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 술, 대화. 내 젊음의 열정과 시간을 전부 쏟아부었던 곳이다. 그런 사람들과 거의 15년 만에 다시 만나서 악기를 치는 기분은 어떨까? 보나마나 너무 행복하겠지-라고 편안하고 단순하게 생각했다면 그것은 아마 나의 본심이 절대 아닐 것이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표현하지 못했지만, 나는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슬펐다. 이 장대한 이벤트가 끝나는 것이 슬펐고, 그 안에서 내가 찾고자 했던 예전의 향수를 찾을 수 없을 것을 알기에 슬펐다.


어떻게든 한 가락이라도 더 쳐보려고, 어떻게든 다른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어보려고 무리하게 유림이를 데려간 일정에서 나는 여러 번 현실의 벽을 마주했다. 언제 어디로 뛰쳐나갈지 모를 유림이를 감시하느라 곁에서 하염없이 앉아만 있을 때, 나는 특별 제작된 유리벽 뒤에 있는 느낌이었다. 밖에서는 안의 모습을 낱낱이 볼 수 있지만 안의 사람들은 내가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그런 벽. 분명 같은 공간에 있지만 전혀 사람들 속에 녹아들어 가지 못하는 나의 지나친 자의식의 벽이 나를 너무 힘들게 했다.


2시 무렵, 숙소에서 깜빡 잠들었다가 5시에 눈을 번쩍 떠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밤 사이에 유림이가 잘 자고 있는지, 어디론가 혼자 나가버린 건 아닌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자고 있는 유림이를 보고 안심하고 다시 잠을 청하는 게 아니라,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서 밖으로 나가는 통로 계단에 앉아서 망을 봐야 한다는 것이 좀 비참했다. 5시부터 7시 30분까지 2시간 넘는 시간을 딱딱한 시멘트 계단 위에 앉아있는 동안, 내가 도대체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질문을 100번도 넘게 던졌다. 역시 유림이를 데리고 이런 공간에서 하루를 묵는다는 것은 사치였나? 어제 적당히 놀고 집에 돌아갔어야 했나? 아니면 애초에 여기를 오지 말았어야 했나? 태어난 지 두 달도 채 안 되었다던 누룽지 색깔의 똥강아지 하나가 자신의 온기와 부드러운 털결을 나눠준 덕분에 그나마 버텨내었다. 반려 동물을 왜 키우는지 확실히 알게 된 순간. 그렇지만 이런 작은 강아지조차도 어디 안 도망가고 자기 집에 잘 붙어있는데, 우리 아들은 도대체 몇 살까지 이렇게 감시를 하면서 살아야 하는 걸까? 유림이보다 강아지가 나은 점은 물론 여러 가지가 있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한번 더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튼 두 시간 반 보초의 고통이 헛되지 않게, 7시 30분이 조금 넘자 등 뒤에서 일반 사람들은 내지 않는 특유의 반복어와 인기척이 들렸다. 유림이가 서 있었다.


나에게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함께 생활하는 이런 자리가 독 같다. 사회생활을 하며 상대방에게 맞는 여러 가지의 가면을 쓰는데, 개성이 뚜렷한 30여 명의 사람들 속에서 그 가면을 때에 따라서 맞춰 쓰는 것이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를 잊지 못하고 다시 돌아오는 이유는 분명히 있었겠지만, 어쩐지 이제는 정말 여기에 안녕을 고해야 하는 때인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추억을 찾으러 여기 왔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 현실을 자각할 수 있을 뿐이었다는 생각. 이곳은 내가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 이제 나에게는 아주 아주 작고 좁은 네모난 공간밖에 허락되지 않고, 그 안에서 만족을 찾는 법을 배워야 괴롭지 않을 거라는 생각. 더 넓고 밝은 세상은 나에게는 사치가 되었다는 생각. 그 안에서의 삶을 누리고 싶다는 욕심은 결국 나를 비참하게 만들 뿐이라는 생각. 그런 세계를 더 이상 보아서도 안 되고, 갖고 싶어 해서도 안 된다는 생각.


그러니까 이건 마치 이별 여행 같은 그런 거였다. 지나간 추억에 마지막으로 안녕을 고하는.

안녕.

안녕.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