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몽골반점

by 윤기환


몽골반점


빗길 라이딩은 행군과도 같았다. 기진맥진한 몸이 샤워를 하고 나니 한결 가볍다. 양고기 내장과 구수한 된장찌개로 허겁지겁 주린 배를 채웠다. 이곳에 와서 벌써 몇 끼니 째 식사를 했는데 음식에 거부감이 전혀 없다. 외국 여행을 와서 먹는 것이 편하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우리의 라이딩을 지원하는 여행업체는 승마 체험을 주업으로 하는 업체이다. 이곳 몽골에 여러 번 승마를 위해 왔던 열이 형과의 인연으로 우리의 자전거 투어를 맡게 되었다. 자전거투어 전문업체에 비해 준비는 다소 미흡하지만, 음식은 그만이다. 몽골인 주방장의 솜씨가 김치는 물론, 깍두기, 파김치까지 우리 입맛에 딱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비가 그쳤다. 그리도 내리더니 이제야 그치는 비가 야속하다. 앞마당 잔디밭에서 계집아이 셋이 놀고 있다. 두어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언니가 타고 있는 세발자전거를 빼앗으려고 징징거리며 떼를 쓰고 있다. 아이는 자전거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듯 잔디밭을 뛰어다니고 있다. 새까만 얼굴, 작은 눈, 납작한 코에 동그란 얼굴이 우리 어릴 적 모습을 떠올리게 할 만큼 오목조목 닮았다. 우리나라 어느 시골에서 이 아이들을 봤다면 국적을 전혀 의심하지 않을 모습들이다.


내 어릴 적 빛바랜 흑백사진을 떠올린다. 나 어릴 적에도 저랬다. 성별만 다를 뿐, 시커멓고 촌스럽던 내 모습을 똑 닮았다. 아이들을 보면서 문득 몽골반점을 생각한다. 삼신할미가 어미의 뱃속에 있는 아기의 엉덩이를 때리며 '빨리 나가라'해서 갓난아기 엉덩이에 푸르스름한 자국이 생겼다고 믿었던 몽골반점. 저 아이들도 나와 같은 몽골반점을 가지고 태어났을 것이다. 같은 몽골계 민족인 이곳 사람들은 우리와 많이 닮았다. 특히 아이들은 닮아도 참 많이 닮았다.


아이들의 환심을 사려고 사탕을 보여주니, 자전거를 팽개치고 졸졸 따라온다. 막대 사탕 하나씩 받아 물고 해죽해죽 웃다가 천진스레 깔깔댄다. 내 어릴 적 모습을 닮은 아이들이 더없이 이쁘고 사랑스럽다.



문명과 비문명


배를 채우고 나니, 문득 문명세계의 일들이 궁금해진다. 문명세계로 돌아온다는 건 불편함을 더는 일이지만, 생각을 번잡하게 한다. 아무 걱정 없이 자연을 즐기던 몸과 머리가 또다시 복잡해진다. 모두들 핸드폰을 들고 잘 잡히지도 않는 화면에서 눈을 뗄 줄 모른다. 지금 문명세계는 파리 올림픽으로 난리일 것이다. 나도 이곳에 오기 전까지 몇 날 밤을 올림픽 경기와 함께 살았다. 몽골초원에 오니 올림픽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대자연만 있을 뿐이다. 잠시 문명세계는 잊기로 했다.


하늘은 서서히 구름을 걷어내고 빼꼼히 햇살을 쏟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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