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만 딱 걸렸다

2023년 아르코창작기금 발표지원 선정작 (동시) 황영선

by 황영선


2023년 아르코창작기금 발표지원 선정작


따뜻한 감옥

황영선




문을 활짝 열어 놓아도

아빠는 갇혀 있습니다

아빠가 갇히자

엄마도 갇히고

나도 갇혔습니다.

집에만 있을 아빠 생각에

마음이 종일 무겁습니다

회사가 문을 닫던 날

아빠도 닫혀 버렸습니다

잘 웃던 아빠가 무겁습니다

어깨가 축 처져 있습니다

문이 있어도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아빠!

아빠가 일을 쉬는 동안

우리 집이 따뜻한 감옥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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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꽃

황영선




하늘하늘

날아오르고 싶어

꽃은 나비가 되었을 거야

한들한들

흔들리고 싶어

나비는 꽃이 되었을 거야


눈 감으면

아롱아롱

떠오르는 네 생각







경숙이

황영선





이 지구상에 아는 사람이라곤

할머니밖에 없다던 그 친구

아빠는 위암으로 돌아가시고

할머니마저 하늘나라로 간 뒤

문구점 하는 고모집에서

아기를 등에 업고 있던 경숙이

경숙이를 돌봐 주던 할머니도 아빠도

다 하늘나라로 간 뒤부터

경숙이는 경숙이를 돌보면서 산다

경숙이가 외로워서 울면

우는 경숙이를 다른 경숙이가 달래 주면서

빨리 돈을 벌고 싶다던 경숙이

나를 보니까 공연히 눈물이 난다던 경숙이

경숙이랑 경숙이가

밥상머리에서 얘기를 주고받으며

경숙이는 아직도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잠을 잘까

경숙이랑 경숙이가 이불 속에서

토닥토닥 잠을 재워 주며

꿈나라로 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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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왜 왜

황영선





오늘도 나만 딱 걸렸다

나만 복도에서 축구 한 것 아닌데

나만 공부시간에 떠든 것 아닌데

왜 나만 불러 세우실까?

왜 유독 내 이름만 자꾸 부르시는 걸까?

-전병주!

-왜요?

-전병주!

-예.

-아직도 모르겠니?

-뭘요?

선생님은 자꾸 내 이름만 부르신다

차라리 매 한 대가 낫지

일주일 복도 봉사 청소라니!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 친구들은 친구도 아니야

속으로 중얼거린 소리라도 들은 것일까?

친구들이 남아 청소를 거들어 준다

책상을 밀고 청소기를 돌리고

마음 가득한 먼지들이 다 빨려 나간다

선생님,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복도에서 공 차지 않겠습니다

얼굴 표정 바꾸고 말투도 바꾸라던

선생님 말씀도 뻥 차 버렸던 하루

왜왜왜······?

맴돌던 질문에 대답하듯

앵앵 돌아가는 청소기 소리






나비

황영선




속상해하지 마

나도 예전엔

못난이 애벌레였어

내가 다가가면

다들 징그럽다고 오지 말라며

소리 지르며 달아났어

나도 너처럼 외톨이였어

그런데 지금은 쟤들이 먼저 나랑 놀자고

내 이름을 불러 주잖아

조금만 더 기다려 봐

너의 꿈을 향해

힘들어도 참고 나아가는 거야

지금은 ‘나비’라는 예쁜 이름을 얻었지만

이건 비밀인데 나도 예전엔

너처럼 주름투성이 번데기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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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경이의 일기 쓰기 숙제

황영선




오늘 일기는 뭐라고 쓰지?

선생님께서 중요한 일 하나만 골라 쓰면 된다고 했는데

오늘은 너무 평범한 날

중요한 일 하나도 없는데

‘그냥 심심했다.’라고 썼다

한 줄은 너무하다 싶어서

‘하루 종일 심심했다.’라고 고쳐 썼다

그러자 정말 심심해졌다

뭘 할까 궁리하는데 배가 고파졌다

부엌에 가 달걀 프라이를 하기로 했다

냉장고 속에 있는 달걀은 병아리가 되긴 틀렸구나 싶었다.






아빠의 무릎 의자

황영선



우리 집엔

오래된 의자가 있어요

무릎 관절에서 삐걱삐걱

소리가 나지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그 의자

내가 아플 때면

나보다 더 아파하고

나를 받쳐 주던 그 의자

내가 슬플 때면

동그란 나이테가 물결처럼 떠밀려 와

어루만져 주던 등받이가 따뜻한 그 의자

누나도 앉았다 가고

내가 앉았다 간 그 자리에

오늘은 어린 동생이 앉아 웃고 있어요

이다음에 나도 아빠처럼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따뜻한

무릎 의자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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