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통사관 외전
1950년 5월 2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전국최다득표로 당선된 조소앙의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을 지향한 삼균주의는, 이승만의 제3의 길인 일민주의(민족사회주의)와 많이 닮아있다. but 한달뒤에 발발한 6.25전쟁으로 사회민주주의(제헌헌법에 다수 반영됨) 코리아는 반공자유주의로 역사적 전환을 하게된다!
‘전쟁책임에도 대다수 농민들의(토지개혁 성공, 친서민정책) 압도적 지지로 2대 대통령에 당선된 이유가 이것일 터이다.’
(네이버) 일민주의는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대한국민당(大韓國民黨)이나 대한청년단(大韓靑年團)과 같은 친이승만 계열의 정당과 단체들이 결성되는 과정에서 점차 모습을 드러냈으며, 초대 문교부 장관이던 안호상(安浩相)이 그것을 체계화하는 데 기여했다. 아울러 1949년 4월 20일 이승만이 서울 중앙방송국을 통해 〈일민주의 정신과 민족운동〉이라는 제목의 담화에서 4대 정강(政綱)을 발표하면서 국시(國是)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 담화에서 이승만은 공산주의와의 싸움은 무엇보다 사상적 싸움이지만 민주주의는 “사상이 너무 평범해서 … 공산주의에 대항하기 어려울 것이므로 일민주의 하에서 4대 정강을 정하여 한 정당을 세워 일변(一邊)으로는 공산화(共産禍)를 배격하며, 일변으로는 민주주의에 영구한 토대로 삼기로 한 것”이라고 일민주의의 의의에 관해 밝혔다. 그리고 “1)문벌(門閥)을 벽파(劈破)해서 반상의 구별을 없이 하므로 등급이나 계급은 물론하고 동등의 복리와 동등의 권리를 누리게 하자는 것”, “2)빈부가 동등으로 구별 없이 천조(天造)한 물질을 발전시켜 … 다 같은 복리를 누리자는 것”, “3)남녀 동업(同業)을 주장하는 것”, “4)지방 구별을 삭제해서 남북이니 경향(京鄕)이니 하는 차별적 습관을 버리고 … 한마음 한뜻으로 국가의 행복을 도모하며 서로 도와주고 함께 제휴하여 민족 전체가 하나가 되는 것”을 일민주의의 4대 정강으로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