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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로롱도로롱 Feb 24. 2024

우리 '정치와 법' 선생님이 미쳤어요

민주주의와 에반게리온. 그리고 마기 컴퓨터.


삶이 무료해서 자극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대학을 다닐 적에 우리 과에선 사회문제에 관한 수업을 많이 진행했었다. 성함이 특이하신 교수님께서 늘 주제에 관해 칼럼을 써오라는 과제를 내셨는데, 잡생각이 많으며 글을 빨리 쓰는 재주밖에 없는 나에게는 너무나 꿀 같은 수업이었다. '반골 필자의 발칙한 상상' 제목도 지어 여러 주제에 관해 힙스터같이 글을 써오곤 했는데 오늘이 마침 이것을 다시 써볼 때가 아닌가 싶다. 특히나 자극적인 주제인 '정치'에 관해 말이다.


대학생 때 만났던 연인중 한 사람이 나에게 '착한아이 컴플렉스'냐는 말을 했었다. 정확히 뜻은 모르지만 미움받을까 봐 할 말도 못 하는 좀 소심한 사람? 을 뜻한다고 생각해서 얼추 맞는 거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정치와 관련한 이야기는 나에게 피로감을 준다. 정치는 여러 이해관계를 조절하는 일이고, 당연히 누군가에게 이로우면 누군가에겐 해가 된다. 그렇기에 정치인들은 자신의 편에게 이익을 주고 자신의 반대세력에겐 해를 끼치는 쪽으로 말하고, 행동하고, 정책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정치적 결정을 '민주주의와 다수결'이라는 원리에 따라 진행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다양한 헌법적 가치(평등, 평화, 인권 등등) 이 있지만 그래도 지지하는 사람이 더 많은 사람이 결정권을 갖고, 선출된 사람이 자신을 지지해 준 세력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는 아주 당연한 원리가 있다. 그렇기에 정치인은 모두에게 사랑을 받을 수 없다. 니편내편이 확실할수록 인기가 있고,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누군가에게 미움받는 것이 당연하므로 정치인 같은 건 나에게 시켜줘도 안 하고 싶은 직업이 되어버렸다.


근데 어느 날부터 이런 민주주의에 대한 반감이 점차 생기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의 결정은 '더 옳은' 쪽으로 이뤄지기보단 '더 많은 사람이 지지하는' 쪽으로 가기 때문이다. 더 많은 사람이 지지하는 게 더 옳을 가능성이 높을걸?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했다고 하는데, 과연 이게 맞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령 국민연금 개편을 보면, 몇십 년 전부터 누구나 인구감소로 인해 재원이 부족해질 것을 알며, 몇몇 통계에서는 정확히 몇 년 뒤에 어떤 문제가 생길지도 술술 말하는 마당에 그것을 개편하는 것이 수많은 지지자들에게 불편한 마음을 들게 할 것이기 때문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다수의 판단력에 대한 믿음도 점차 약해지고 있다. 이것은 대중이 합리적인 판단을 할 능력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정확히는 대중이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더라도 판단의 근거가 될 자료가 터무니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가령 자신이 투표할 정치인을 정할 때, 그 정치인의 행적과 인품을 보고 판단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게다가 이 사람은 정치에 관심이 유독 많아 정치인의 핵심 공약과 계획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이는 나름 합리적이고 설득력이 있는 '모범 시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사람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은 대부분 매스컴이다. 그 사람의 행적은 대부분 '매스컴에 드러난 부분'에 대해서만 판단할 수 있고 인성의 경우는 더욱이 그렇다. 어떤 뉴스가 새롭게 나올 때, 상대 집단에서 그 사람의 인성을 폄하하기 위해 자극적인 뉴스를 퍼뜨린 것인지 진실인지 신이 아닌이상 정확히 알 수 없다. 그의 핵심 공약과 계획의 경우는 어떠한가. 경제학에서 '도덕적 해이'라고 하는 점처럼 이 사람이 그것을 얼마나 이행할지는 '일단 뽑혀봐야 아는' 것이기 때문에 선택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즉, 대중은 능력이 있어도 정보가 부족해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기가 힘들고, 그러다 보니 가장 간단하고도 강제성을 가지는 그 인물이 속한 '당'을 보고 인물을 결정하게 된다. 정치인들 역시 당선이 되고 싶다면 원하는 부분을 매스컴에 드러내고, 원하지 않는 부분은 가리며, 자신의 정치 경쟁자의 치부를 최대한 드러내는 것이 좋은 전략이 될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운영되는 정치가 우리의 아버지 세대가 피를 흘려가며 지켜온 민주주의의 말로라고 생각하면 허탈할 지경이다.


민주주의의 반대말은 보통 '독재'이다. 듣기만 해도 정의롭지 못하고 지지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이번글은 의도적으로 안티테제를 자처하기 때문에 좀 더 이야기해 보겠다. 플라톤은 철인정치라 하여 독재를 이상적으로 보았다. 아마 그때는 지금보다도 대중의 교육 수준이 떨어졌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철인'이란 것은 세상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비합리적인 방법이다.  그럼 '철인'을 '성군'이라는 말로 바꾸면 어떨까? 세종은 오늘날로 치면 독재자다. 그것도 대놓고 모든 권력을 가지며, 대중의 신임 같은 절차는 전혀 받지 않은 독재자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좋은 편인 것 같다. 독재는 나쁜 것이지만 '좋은 독재'는 그래도 좋은 것일까? 나는 좋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적어도 한 인간의 도덕적 성품에 나라의 운명을 맡기는 것은 너무도 비합리적이다. 차라리 대중이 잘못된 선택을 해서 대중 전체가 그 대가를 치른다는 납득할 수 있어도 말이다.


하지만 만약에 인간이 아니라면 어떨까? 플라톤이 꿈꾸던 '철인'이 사실은 철로 된 인간, 아이언 맨, 즉 AI라면? 우리나라에 대한 모든 정보를 종합하고, 이를 이용해서 판단할 수 있는 AI가 있다면 그것은 철인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세력을 만들지 않고, 자신의 연임을 위해 헌법을 개헌하지 않으며,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에 대한 가족 리스크도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자신의 판단의 이유가 명확히 제시되어 있기 때문에 누가 의혹을 제시해도 그저 결정의 로그파일을 보여주면 그만인 것이다. 얼마 전에 본 '에반게리온'이라는 애니메이션에 '마기 컴퓨터'라는 슈퍼컴퓨터가 존재하는데 세 개의 인공지능이 만장일치로 판단을 하는 컴퓨터다. 이런 마기 컴퓨터 같은 것에 정치적 결정을 맡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대충 주체를 세대나 소득 등을 기준으로 나누고 그 주체들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물론 그 판단을 국민들이 납득하고 지지하겠다는 어떤 약속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오늘날과 같은 정치행태와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가 악화되고 AI기술이 더욱 발전해서 엄청난 신뢰를 얻는다면 가능해질 것도 같다.


이렇게 되면 사실 가장 큰 문제는 국민이 참정권이랄 게 없어지는 것이다. 또한 정치인들의 이익이 사라지며, 그들에게 유착되어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익이 사라진다. 정치집단은 역사 이래 가장 큰 이익집단이기 때문에 이렇게 쉽게 AI에게 자신의 기득권을 양보할리가 없다는 것을 안다. 당장에 뜯어고쳐야 하는 헌법이 한두 개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만큼 오늘날의 민주주의와 정치행태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에반게리온 같은 재미난 만화를 보면서도 이런 씁쓸한 생각을 할 만큼 말이다. 올해는 참 세계적으로 선거가 많다. 부디 운이 좋게도 좋은 후보들이 많이 선출되어 좀 더 적은 갈등으로 좀 더 희망적인 성과를 이뤄냈으면 좋겠다.


https://youtu.be/SlhRsSJw2KQ?si=YvlUEhlL-X3P4N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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