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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으면 깎인다”

임금피크가 만든 노후 빈곤의 구조

늙음은 죄가 아니다. 오히려 긴 시간 축적된 존엄의 증표다


“30년을 다녔는데, 왜 마지막 2년은 매달 임금이 줄어드는 거죠?”
수도권 중견 제조기업에서 일하던 59세 김 모 씨는 어느 날 회사로부터 ‘임금피크제 적용 통보서’를 받았다. 정년을 2년 앞두고 매달 10만 원씩 임금이 삭감된다는 내용이었고, 회사는 “정년을 보장하는 대신 점진적으로 줄이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 씨는 “같은 공정에서 같은 시간만큼 일하는데, 왜 노동의 가치는 해마다 줄어드는가”라고 되물었다.

임금피크제는 고령 노동자의 마지막 몇 해를 조용히 축소시키며, 퇴장의 순간을 점점 작고 초라하게 만든다.


이 제도는 2016년 이후 정부 권장 정책으로 확산되었고, 구조는 ‘정년 연장을 조건으로 일정 연령 이후 임금을 단계적으로 삭감하는 방식’이다. 겉보기에는 합리적이지만, 현실에서는 정년이 보장되지 않은 채 임금만 줄어드는 사례가 다수다.


공공기관과 대기업에서는 이를 적용한 이후 정년 전 명예퇴직을 권유하거나, 적용 시기에 맞춰 계약 전환 또는 재계약을 요구하는 일이 빈번하다. 게다가 대상자의 업무는 대부분 이전과 같고 노동강도나 책임도 줄지 않는데, 임금만 줄어들어 오히려 차별과 심리적 박탈감을 유발한다.

결국, ‘정년 보장’이라는 전제가 무너진 채 ‘임금 삭감’만 남았고, 제도 자체에 대한 신뢰마저 떨어지고 있다.

임금피크제는 한국의 노인 빈곤 구조와도 맞물려 있다.

2025년 기준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36.4%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으며(통계청·KDI, 2025), 60세 이상 고령자 10명 중 7명은 비정규직 또는 초단시간 노동에 종사하고 있다. 이들 중 다수는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소득으로 살아가고 있고, 임금피크제는 이 사다리를 더욱 낮추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제도가 고용시장 전반에 ‘고령자는 낮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관념을 확산시키며, 숙련과 경험이 축적된 시기를 ‘퇴장 준비 기간’으로 여기는 인식을 고착화한다는 점이다. 결국 고령자 스스로 자신의 노동 가치를 축소하게 만들고, 이는 단순한 고용문제를 넘어 존엄과 인간권의 문제로 확장된다.

임금피크는 단순한 급여 정책이 아니라, 고령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척도다.


해외 선진국은 이와 다른 접근을 택하고 있다. 일본은 2021년부터 ‘70세까지 고용연장 의무화’ 정책을 시행하며, 임금피크제를 점진적으로 폐지 중이다. 대신 ‘직무·성과 기반 탄력임금제’를 도입해 연령이 아닌 업무 내용과 기여도를 중심으로 임금을 결정하고 있다.


독일은 정년 이후 고용을 연장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고령 근로자의 경험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보너스와 재교육을 병행한다. 노르웨이와 핀란드는 ‘노인소득보장 하한선’을 국가 정책으로 운영하며, 고령 노동자의 소득감소 없이 고용을 지속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이들 국가는 “늙는다는 이유만으로 임금을 깎지 않는다”는 원칙을 공유하며, 연령을 감점 요소가 아니라 자산으로 간주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

첫째, 임금피크제는 직무와 성과 중심의 탄력형 임금제로 전환되어야 한다. 연령만을 기준으로 임금을 감액하는 방식은 차별에 해당하며, 근로기준법의 정신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둘째, 고령 노동자에게 임금 하한선을 설정하고, 생계유지를 위한 국가 지원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셋째, 임금피크 적용 시 고용계속 의무와 직무 재배치·재교육 계획이 함께 수반되도록 설계돼야 하며, 단순한 삭감이 아니라 능력 전환의 기회로 작동해야 한다.


넷째, 고령자 고용에 적극적인 기업에는 세제 감면과 국민연금 유예 등 다층적 보상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임금피크는 더 이상 제도가 아니라 관행이 되어버렸다.


정년을 보장하지 못하면서, 마지막 2~3년은 ‘임금 할인 기간’으로 취급하는 현실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 사회가 ‘고령자 천만 시대’를 맞이한 지금, 이 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 역시 늙는 순간 가난해지는 사회를 피할 수 없다.


“늙음은 죄가 아니다. 오히려 시간 속에 쌓인 존엄의 증표다.”

우리는 이제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왜 우리의 노동은 끝으로 갈수록 작아지고 초라해지는가. 구조를 바꾸어야 사람이 존중받는다. 그리고 존엄은 깎는 것이 아니라 지켜주는 것이다.


글/사진: 김한준 박사 【비전홀딩스 원장, Life-Plan전문가, 칼럼니스트】 경영·교육·생애설계 분야 명강사. 공공기관 책임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인생 후반기 생애설계 리더십과 미래사회 전략을 주제로 명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기사제보 charly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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