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상보다 끝인상이 중요하다

첫인상에 대한 깊은 오해

by 올리브나무


도서관에서 글쓰기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첫 시간에 자기소개를 하는데, 누군가 잘 보이고 싶어 새치 염색을 했노라고 말했다. 첫인상이 끝인상이라며.


그런데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누구누구란 첫인상으로 기억되거나 평가되지 않는다. 그 사람의 말과 태도가 완성해낸 끝인상이 그 사람에 대한 평가의 전부이다. 첫인상은 꾸밀 수 있지만, 끝인상은 본인의 의지로 어쩔 수 있는 게 아니다. 함께 흘려보낸 시간 속에서 경험치로 다져지기 때문이다. 끝인상은 단정한 용모나 일시적인 호의로 바뀌거나 지워지지 않는다.


연구소에서 여러 사람이 들어오고 나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첫인상은 다양했다.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강렬한 인상을 주는 사람, 시도 때도 없이 개그 욕심을 내는 사람, 연예인 뺨치게 잘 생긴 사람, 웬만해선 웃지 않는 사람, 말이 많은 사람, 표정부터 말투까지 조용조용한 사람, 웃음소리가 호방한 사람, 옷차림이 세련된 사람, 푸근해 보이는 사람, 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사람 등 각기 다른 인상을 풍기며 나타났다. 처음 한 달은 서로를 탐색하느라 자기 모습을 있는 대로 드러내지 않는다. 이른바 '척'을 하면서 그런대로 잘 지낸다. 그러나 첫인상이 끝인상이 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한 번은 나이 많은 신입이 들어왔다. 신입이라고 하기에는 나이가 많았다. 이공계 쪽 박사를 마치고 박사 후 과정까지 밟은 고급 인력이었다. 그의 첫인상은 사람 좋고 서글서글한 옆집 아저씨 같은 느낌이었다. 누구와도 격의 없이 잘 어울리고, 털털하고 솔직했으며, 술자리도 좋아했다. 술이 거나하게 들어가면 형, 동생 혹은 오빠, 동생 하자는 말도 쉽게 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솔직은 돌직구로, 격의 없음은 무례함으로, 서글서글은 안하무인으로 돌변했다. 나이는 연륜이 아니라 무기가 되었다.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콧방귀를 뀌어대는 모습이 어느새 그의 인상으로 굳어졌다. 회의를 하다가 갑자기 '나, 원, 참'을 외치며 나가기 일쑤. 이유도 변명도 없다. 아무 말 없이 회의를 지켜보다 이상야릇한 표정으로 모든 사람을 한큐에 깔아뭉개고 자리를 박차고 씩씩하게 나간다. 차마 더 봐줄 수가 없다는 듯이. 그러고는 한참 후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연구실에 들어와 콧노래를 불렀다. 그의 행동과 말은 거침없다기보다는 뜬금없다는 느낌을 주곤 했는데, 너무 어이가 없어서 무례하다는 표현도 아깝고 그냥 무식했다.

소장과 동석할 때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열변을 토하는 소장에게 수긍하거나 그렇다고 반박하지도 않다가, 갑자기 크고 오버스러운 목소리로 "아하, 그렇습니까!"를 외쳤다. 누가 봐도 불쾌한 반응이었다.


그렇게 몇 달을 지낸 어느 날, 그가 내 자리로 찾아왔다. 다짜고짜 수첩을 들이밀며 언제 시간이 되느냐고 물었다. 무슨 개수작인가 싶었더니, 자기가 모교의 무슨 교수로 가게 되어서 송별회 날짜를 정하고 있노라고 했다. 그는 연구원들의 자리를 찾아다니며 똑같은 말과 행동을 로봇처럼 반복했고, 어느 자리에서나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오버스럽게 말했다. 연구원들의 자리를 다 돌고난 후, 마지막 코스는 소장실이었다. 물론 송별회는 없었고, 그 역시 송별회를 기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직서에 준하는 퍼포먼스였음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끝인상을 남긴 인간이었다.


첫인상이 끝 인상이라는 말,

거기에는 깊은 오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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